열대우림에서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 아이들
[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⑩ 루앙프라방에서 자전거 타고 하이킹하기
꽝시 폭포까지는 32㎞. 고민 끝에 상훈이를 대장으로 아이들끼리 먼저 출발시키고, 생리 중이어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유진과 나운이는 나와 함께 '뚝뚝'을 타고 따라가기로 했다. 이 길은 폭포에 이르는 동안 라오스의 시골마을들을 자연스레 들여다볼 수도 있어 서양여행자들에겐 꽤 많이 알려진 하이킹 코스였다.
11명의 자전거 본대가 떠나고, 버스터미널로 나가 다음날 방비엥으로 떠날 표를 끊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와 '뚝뚝'을 잡아탔다. 먼저 떠난 아이들과는 두 시간 정도 차이가 났을 것 같았다. 전체 코스의 3분의 2 정도의 지점에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적당한 차이일 듯했다. 큰 도로에서 작은 길로 접어들자 곧 마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곧 길은 오르막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고도 얼마나 달렸을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유진이었다.
"삼촌, 저기 애들 있어요."
정호와 영준이, 도솔이다. 힘내라고 소리치며 지나쳐갔다. 다음에는 모퉁이를 도는데 윤미와 희경이와 또 몇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휙 지나쳐갔다. 한 참을 더 달려가자 수경이와 성호가 나타났다. 그런데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뚝뚝을 세우고 보니 아이들이 크고 작게 많이 다쳤다고 했다. 서희는 두 번이나 넘어져 아래턱을 갈아붙였단다. 수경이 말로는 넘어지지 않은 아이보다 넘어진 아이가 더 많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윤미였다. 자전거를 타고 붕 날아서 논두렁으로 처박혔단다.
"삼촌 만나려고 트럭 얻어 타고 폭포로 갔어요."
다시 폭포로 달렸다. 폭포 입구에는 다친 서희를 데리고 올라온 하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희는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젖어 있었다. 땅바닥에 갈아붙인 아래턱은 벌써 퉁퉁 부어올랐다. 그런데 윤미와 희경이가 없었다. 하영이와 서희보다 10분이나 먼저 출발했다는 열여덟 살 두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영이 말로는 그들이 타고 간 흰색 트럭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단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열대우림이 우거진 산골, 두 여자아이, 흰색 트럭과 두 명의 남자…. 난 급박하게 경찰을 찾았다. 하지만 이 유명한 관광지에 경찰은 물론 경찰 출장소 비슷한 것도 없었다. 왜 이런 공공구역에 경찰이 없냐고 따져 묻는 나에게 라오 사람들은 자신이 뭘 잘못이나 한 것처럼 미안해하면서도 반대로 왜 관광지에 경찰이 있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나는 폭포 관리사무소 겸 매표소로 달려갔다. 두 여자아이가 사라졌으니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매표소에는 전화도 없을 뿐더러 경찰서 전화번호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뚝뚝' 운전기사가 친구가 경찰이라면서 모바일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전후과정을 설명하고 신속히 주변을 수색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대목에서 그 경찰은 난감해했다. 친구의 부탁도 있고 하니 자신이 와보긴 하겠지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진정하라는 것이다. 화가 났다. 도착했어야 할 두 여자아이가 한 시간 가까이 오지 않는데 이곳 사람들은 하나 같이 진정하라고만 했다. 단 1%의 가능성만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이 경찰이 아니냐고, 만일 당신들이 주저하는 사이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전화기에 대고 따지는 나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였다.
저 멀리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두 녀석이 보였다. 틀림없이 윤미와 희경이었다. 유진이가 친 언니인 윤미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트럭의 두 아저씨가 윤미가 다친 것을 보고 마을 진료소 같은 곳에다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간단한 치료를 받고 뭘 좀 먹고 가라고 음식까지 내놓으신 모양인데 친구들이 걱정한다고 파파야만 먹고 왔다고 했다. 이쪽에서는 경찰에 전화를 걸고 생난리를 치고 있는데, 두 녀석은 그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라오 사람들이 나에게 진정하라고 위로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라오스라는 사실….
그날 윤미는 마취도 하지 않고 세 바늘을 꿰맸다. 수술할 동안에는 잘도 참던 윤미가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가만히 안아서 다독여 주는데 미안하고 대견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이 낯선 땅에서 부모도 없이 어수선한 응급실에 누워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으며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그날 아이들은 참 많이 울었다. 다쳐서 울고, 다치고 보니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사라져버린 언니가 걱정되어 울고, 서로 싸우느라 울고, 무사해 기뻐서 울고, 옆의 친구가 우니까 따라서 울고…. 많은 눈물을 흘린 만큼 아마 그날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 날일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란 존재는 참 신기하다. 루앙프라방에 돌아오니 그렇게 힘든 날이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논다. '완주'한 녀석들은 '꽝시폭포 1㎞'라는 이정표를 봤을 때의 그 희열에 대해 떠들어댄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섭도록 천둥치고 비가 퍼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더 파랗고 더 맑게 개곤 하는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