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길에서 친구를 만나 초대받고 헤어지고

[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⑫ 이국땅 방비엥에서 친구 만들기

2012-09-21     양학용

▲ 잔디밭에서 부대끼며 공을 차는 KO-LAO 청소년들.
 라오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다. 방비엥의 중등학교 청소년들 10여명이 아침 일찍 '미스터 리'의 치킨하우스 앞으로 나왔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등학교 1~2학년들이다. 남자 녀석들 중에는 흰색 남방에 목걸이를 살짝 늘어뜨린 아이도 있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하늘위로 띄운 녀석도 있다. 여자 아이들의 머리스타일이나 옷매무새도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 좀 의외였다. 방비엥을 시골마을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는 애들'처럼 껄렁해 보여 무서웠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함께 온 두 명의 교사는 전형적인 시골뜨기의 얼굴이다. 한 분은 영어, 다른 한 분은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했다. 두 분 선생님은 내일이 시험 날인데도 아이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 그만큼 이곳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다려왔다는 뜻일 테다. 아내와 내가 라오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서로에 대해 탐색만 하고 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게 하고 오늘 소풍의 목적지인 '땀짱' 동굴을 향해 출발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다. 쭈뼛거릴 때는 언제고, 서로 영어가 서툰 처지인데도 동굴로 걸어가는 1시간 남짓의 시간 사이에 어느새 끼리끼리 친해진다. 동갑내기를 찾아내고,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확인하고, 두 나라 학교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다. 그렇게 두 나라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나 교육환경에서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을 잠깐의 시간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훌쩍 뛰어넘어 소통한다.  

 동굴 탐험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았다. 라오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락을 싸왔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음식을 맛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힘주어 세워준다.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입이 짧기로 유명한 유진이까지 숨을 꾹 참고 삼키는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은 히죽 웃어 보인다. 먼저 점심을 해치운 남자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끼어볼까 하다가 햇살을 좋아 잔디밭에 벌러덩 누웠다. 남자 아이들이 카르스트 봉우리를 배경으로 공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햇살에 눈이 부셔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어째 그들 모두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지내온 사이인 것만 같다. 사내 녀석들이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둥근 축구공 하나면 전 후반 10분씩에 친구가 되고 만다.    

▲ '로꼬냥' 라오스의 포크댄스(?).
   오후에는 모두가 둘러앉아 게임을 하기로 했다. 라오 아이들이 먼저 하자고 내어놓은 게임이 있어 설명을 들어보니 다름 아닌 '손수건 돌리기'다.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앉아 술래가 몰래 등 뒤에 손수건을 던져놓고 도망가면 이를 발견하고  쫓아가는, 내 유년시절에 했었던 그 단순한 게임에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땀을 흘리며 쫓고 쫓기면서 신이 났다. 또 라오의 민속춤도 배웠다. '로꼬냥'이라고 하는 라오 노래에 맞추어 둥글게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을 만들어 마주보고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민속춤을 추는 놀이였다. 그렇게 땀을 빼고 나서는 동굴 아래 작은 못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에 자신이 있는 희경이와 성호와 승현이와 윤미는 라오 아이들을 따라 동굴 입구로 통하는 수로로 들어가더니 한참만에 반대쪽에서 나왔다. 라오 아이들이 평소 탐험하는 동굴 안쪽으로 물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 동굴투어의 마무리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렇게 하루 소풍이 끝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게스트하우스 앞에 도착해서도 헤어질 줄을 모른다. 이미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교환하고도, 아쉬움이 남아 마냥 서성인다. 이국땅에서 친구를, 혹은 이국에서 여행 온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분명 특별한 경험이긴 할 것이다. 결국 옷이 물에 젖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된 내가 그만 헤어지자고 매정하게 미련의 줄을 끊어버리고서야 어려운 이별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음날 저녁 자기들끼리 또 만났다. 라오 아이들이 시험이 끝난 시간에 약속을 정해 저녁식사를 같이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은 녀석들은 그 다음다음 날 아침 라오 아이들의 학교에 놀러갔다. 라오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까지 오토바이를 몇 대씩 타고 와서 태우고 간 것이다. 그날 아침 친구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들 학교에 놀러갔던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상 깊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방비엥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의 아이들 일기에는 그곳 학교의 풍경이 잘 담겨 있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는데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공감대를 찾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써머, 키후, 콘, 설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너무 기뻤다.(방비엥 2일째) 어제 놀았던 라오스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 보고 내일 학교로 오라는데 정말 설레고 긴장된다. 라오스 학교는 과연 어떨까?(방비엥 3일째) 라오스 학교는 정말 자연과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교실 크기는 우리 학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운동장은 우리보다 100배는 더 넓은 것 같다. 학교 뒤에는 강이 흐르고 숲이 있어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점이라면 쓰레기가 많다. 친구들과 라오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시는 못 만난다는 생각에 많이 슬펐다.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메일을 보낼 거다.(방비엥 4일째)"(박성호·열일곱 살)

 두 나라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 라오 아이들 중에는 이미 한국어를 익히고 태권도를 배운 친구도 있고,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인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대한민국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곳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과 교실은 초라해도 운동장과 숲이 넓은 학교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낯선 타국에서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초대받고 헤어지고 못내 아쉬워했던 그 모든 감정들이 그들에겐 오랫동안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일기에 적었던 것처럼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 동안 라오 친구들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했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