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공원

[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6.충청남도 금산군 '송알송알 무럭무럭'-아이창

2012-12-19     고 미 기자
▲ 무슨 이야기든 뚝딱 만들 수 있는 어린이의 손을 표현한 ‘이야기 뚝딱’

도시화 농촌 인구 유출 문제 해결 키워드로 '아이+환경+미래' 선택
상상력 채운 18개 작품 공원 색깔 바꿔…마을미술 숨은 요소 발굴

한 때 사람들을 밀어내던 버려진 땅이 녹지 공원에서 아이들의 꿈을 채우는 창작 섬이 됐다. 동화책에서나 봤던 것 같은 이야기지만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작가 발굴·육성, 일자리 창출이라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숨겨놓은 보석 같은 아이템 중 하나, 개발이란 이름이 만들어낸 지역 내 틈새를 통해 문화 숨통을 트는 일이다. 그것이 '아이'와 만나며 즐거워졌다.

# 쓰레기 매립장, 공원 그리고 꿈 창고로

충청남도 금산군이란 말에 인삼이 먼저 떠올린 것은 실수였다. 인삼조합의 대형 인삼 모형에 잔뜩 기가 눌리기는 했지만 이슬공원에 닿아서는 그만 자유로워졌다. '금산군 양전리 381-4번지'. 네비게이터의 안내 없이 마을 깊숙한 그 곳까지 어찌 찾아갔을까 싶었지만 생각과 달리 마음은 좀처럼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뭔가 그리운 것을 찾은 듯한 따뜻한 감정 때문이다.

이슬 공원은 과거 쓰레기 매립장이던 곳을 도시확장 사업 등으로 녹지 공원으로 재조성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외형만 바뀌었을 뿐 사람을 이끄는 데는 뭔가가 부족했다. 박지은 대표가 이끄는 아이창 팀(예술감독 조은정, 참여작가 도 원·김성훈·오세린·박성연)이 수혈을 결정한 아이템은 다름 아닌 '꿈'과 '생명성', 그리고 어린이였다. 이들 아이템은 환경과 생명, 미래라는 이슬공원의 취지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이후 작업들은 한창 때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탐험 소설 이상이었다. 아이들의 표현을 조형물화 한다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줄 세우기식 미술 대회나 정형화된 그림에 익숙한 아이들은 자신이 그린 것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했다. 몇 번이고 눈을 맞추고 속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이들 특유의 상상을 끄집어냈다. 5~10세 아이들 73명과 예술가 10명이 놀이와 설치를 연계한 워크샵을 통해 프로젝트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지역 내 국·공립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도서관 등에서 1900개의 꿈 타일을 모았다. 그것이 예술가들의 손을 거치며 공원 내 18개 작품으로 생명을 얻었다.

▲ 박지은·조은정·도원·오세린 작 ‘여행하는 바람’

# 어린이에 의한 미술공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총천연색에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게 현란한 테마파크가 아니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도시형 농촌도 마찬가지다. '송알송알 무럭무럭'이라는 프로젝트 명칭은 후크송같은 귀에 익숙한 의성어·의태어의 반복이 아니라 이들 지역이 품고 있는 꿈과 연결된다. 언젠가부터 드는 사람보다 나는 사람이 늘어나버린 마을에 인기척을 만들고 이를 통해 다시 일어나겠다는 희망이다.

때문에 작업 과정은 설렘의 연속이었다. '내 꿈이 현실이 된다'는 아이들의 기대감에 자신들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재구성한다는 작가들의 도전까지 설치물들이 쏟아내는 것은 실로 다양했다.

공원 입구 안내판을 겸한 '이야기 뚝딱'은 지역 어린이가 그린 도깨비 손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나비 날개를 단 기린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아이들을 내려다본다. 미래를 보는 공작의 거대한 몸체에는 조금은 빈약한, 하지만 화려한 색감의 앙증맞은 꼬리가 보는 이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 ‘송알송알 무럭무럭’의 안내판.

안내판 뒷면에는 처음 프로젝트를 신청한 작가 수를 훨씬 뛰어넘는 작가군이 이름을 올렸다. 누군가는 상상력을 나눠줬고, 누군가는 잊었던 기억을 찾느라 진땀을 흘린 이들이다. 또 누군가는 어린이공원으로의 변신을 위한 정성 가득한 간식을 만들었고 응원했다.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공원은 어김없이 어린이가 주인이다. 행여 다칠까, 길을 잃을까 아이 손부터 챙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이 뒤를 따라 다니며 작품 설명을 듣는 것이 속이 편할 만큼 모든 것이 아이들 위주다. 키 낮은 정자 아래 꽥꽥 오리 식구들이 둥지를 튼 모양새가 어색하지 않고 낯선 이름의 허브와 야생화가 작지만 향 짙은 꽃을 피워내는 것이 원래 약속이나 한 듯 어울린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놀이기구 하나 없지만 종일 헤집고 다녀도 지루하지 않은 '어린이 공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 금산주민과 어린이의 얼굴과 이야기를 담은 타일그림 ‘금산인의 얼굴’
▲ 박지은·조은정·오세린 작 ‘미래를 보는 공작’

# 지역과의 소통…모두가 작가

참가자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기울여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역작가 참여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송알송알…'은 참여 예술가 대부분이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시행착오도 적잖았다.

행정기관이 관리하는 공원이자 거점시설인 만큼 제약요소도 많았다. 이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지역과의 소통'이 주효했다.

표현하는데 서툰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굴해 내기 위해 준비기간 까지 장장 나흘간의 '창의미술워크숍'이 진행됐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면 더 굳게 닫히는 상상력의 문을 열기 위한 노력은 보다 더했다.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그리라는 것을 쪽지 시험보다 더 어렵게 생각하는 청소년기 학생들을 자극하고 또 뭔가 해야 한다고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영 못마땅한 어르신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모두의 것'으로 지켜지고 있다. 아직은 만족스러울 만큼 북적이지는 않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 다른 아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또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찾아오고'하는 지역의 꿈을 채운 채다.

지난 여름 세 차례 태풍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꿈 찾아 주는 일이 해법"
●인터뷰/박지은 아이창 대표

▲ 박지은 아이창 대표

아이들과 연계한 미술 프로젝트를 테마로 사회적 기업을 시작한 참이라고 했다. 의외였다. 대부분 참여 작가들이 후속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는 것과 달리 '어린이'를 만나고 난 뒤 욕심이 생겼다고 귀띔했다. 한참을 이슬공원을 누비다 만난 박지은 아이창 대표의 얼굴이 상기돼 있다.

박 대표는 "혹시 태풍에 망가진 곳은 없나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공을 들인 탓인지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곳곳을 살폈단다.

생각보다 작업이 힘들었지만 그것이 박 대표들에게는 새로운 의욕이 됐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리라고 하면 자유자재로 그려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어했다.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박 대표는 이슬공원처럼 아이들의 꿈을 현실로 끄집어내주는 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던진 숙제 중 하나라고 했다.

박 대표는 "지역과 소통을 하다 보니 마을미술 사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며 "아이들의 꿈을 찾아 주는 일을 지역 개발이나 경제사업과 연결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박 대표는 작가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부분 역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역 작가군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끌어가기도 지역에 맡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한꺼번에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결과에 다가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지켜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