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시장을 살게 하는 문화 호흡 흐르다
[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9.전남 화순 5일 시장과 연계한 성안문화마을 조성·'問·聞·門'-시화문화마을
전문 스토리텔링작가 참여…능동적 문화 향유 통한 '재생' 가능성 확인
소통 교집합 아래 '채움' 진행, 연속성 전제한 순차사업 지역만족도 높아
시장은 상품 외에도 사람과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다. 장이 서는 날의 에너지는 가히 원자폭탄 이상의 파장을 지니고 있다. 삶과 관련한 모든 것이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니 그랬다. '편한' 대형매장들로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시장은 고스란히 박제가 됐다. 시간이 멈추고 그대로 늙어가기 시작했다. 마을도 시장과 운명을 같이 했다.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모아지고 부활을 위한 긴급 수혈이 결정됐다. 여전히 좁고 구불구불한 시장안길과 마을을 누빈 것은 다름 아닌 '문화 호흡'이다.
# '다음'사업까지 밑그림 그려
2010년 늦중년 부부가 광주 시화문화마을조형연구소(대표 이재길)의 문을 두드렸다. 먼저 시화문화마을을 둘러본 아내의 손에 이끌려 황금같은 토요일을 헌납했던 이는 정병수 전 화순읍장이었다. 3시간에 걸쳐 주민공동체가 만들어낸 살고 싶은 마을에 대한 설명과 현장을 둘러본 정 전 읍장은 덥썩 하고 이재길 대표의 손을 잡았다. "몇 년 안 남은 정년 동안 마을을 위해 뭔가 해볼라는데요, 도와주실랍니까" 전남 화순군의 문화 명물 성안문화마을을 이렇게 탄생했다.
대부분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행정 주도 또는 작가그룹과의 결합을 통해 이뤄지는데 반해 성안문화마을 조성에 있어 행정은 말 그대로 '고리'가 됐다. 문화마을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을미술 프로젝트 참여가 결정됐고 최소 3년 이상의 사업기간을 염두에 둔 대규모 사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게 2011년 '5일시장과 연계한 성안문화마을 조성' 사업에 이어 지난해 '화순, 시장과 남산이야기 길-問·聞·門(묻고, 듣고, 소통하자)'이 진행됐다. 이재길 대표의 작업 파일에는 '다음'사업까지 미리 철해져 있는 상태다. 그만큼 밑바탕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 소통 화두 아래 마을·시장 묶다
첫 구상에서 시장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장과 문화의 연계를 통해 삶과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콘셉트는 '소통'이란 공통점으로 이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 사업의 특징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 작가의 배치다. 타 사업들이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갔다면 성안문화마을에 있어서는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 먼저 이뤄졌다. 사업 참여 작가들이 각자의 몫을 내놓고 스토리텔링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를 섭외, 그를 통해 '마을'을 구성했다.
화순 남산 자락에 위치한 열 개의 샘(十井) 중 하나인 성내천과 성내천을 중심으로 두고 있는 성안마을을 만들어낸 구전설화나 전설 따위가 고구마 줄기를 뽑듯 주렁주렁 따라 나왔다.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역시 소재가 됐다. 그 것들은 「화순 성안마을에 꽃이 피다」는 책으로 묶었을 만큼 넉넉하고 풍성했다.
왜 진작에 하지 못했는가 싶을 정도로 마을의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예쁜 것을, 우리집 담벼락도 부탁허우"하는 말에 예정에 없던 벽화가 그려지고, 밤낮없이 작업에 매달리는 작가들에게 늘 푸짐한 정(情)을 쏟아냈다.
# 예술과 통(通)하였는냐
설치작품 대신 벽화 등에 공을 들였던 첫 사업에 이어 두 번째 사업은 '채움'에 무게를 뒀다. 안 쓰는 마을 빈터에 꼬마동물원을 조성하고, 과거 망치질 소리 요란했을 용도 잃은 대장간은 어린이 체험공간이 꾸려졌다.
지난해 성안문화마을 조성사업 프로젝트의 작품과 스토리 연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예술 벨트는 어른에게는 과거의 향수와 시장의 추억을, 청소년에게는 문화체험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렇게 화순 5일 시장에 사람이 들게 하는 것, 그를 통해 지역이 살게 한다는 목표를 일정 부분 소화했다.
살짝 귀띔을 하자면 앞으로 남산을 끼고 문화예술이 타고 흐르는 '길'을 만드는 것까지가 성안문화마을이 계획한 꿈이다.
'시장통'이란 단어의 '통'이 '예술과 통(通)하다'는 의미란 해설이 있을 만큼 전통시장과 문화예술간 접목은 늘 주목받는다. 제주시오일시장 역시 전국 24개 특성화 대상 시장 중 평창 오일장과 함께 단 두 곳뿐인 '오일시장'이자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변신을 했다.
한 때 호남 지역 최대의 물류 집합지였던 전주 남부시장도 2000년 이후 늘어난 빈 점포를 청년 예술가들에 내주면서 '청년몰'이란 명소를 만들었고, 대구 방천시장은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테마로 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이를 통해 시장 유입인구가 예년의 3배 이상 늘어나는 등의 효과도 얻었다.
분명 과제도 있다. 이런 전통시장의 예술화 프로젝트는 정부나 해당 지자체의 지원으로 시작되다보니 지원이 끊어지면 시너지효과도 시들해지는 부작용을 드러냈다. 화순 5일시장과 성안문화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행정의 적절한 고리 역할, 그리고 참여 작가들의 단계적 사업 진행 의지가 접목되며 '연속성'을 담보했다는 데서 관련 사업들에 좋은 예가 되고 있다.
| "문화 통해 만드는 '살고 싶은 마을'" 전남 화순군 성안문화마을은 광주 시화문화마을을 모델로 하고 있다. 도시와 시골 등 기본 인프라에서 차이가 있지만 '문화'를 통해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든다는 기본 콘셉트는 같다. 이 두사업의 중심에는 지역 조각가이자 문화 활동가인 이재길 대표가 있다. '마을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촌로(村老)의 부탁에 인연을 시작한 이 대표는 날림이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승부를 걸었다. 참여 작가들의 협조를 얻어 자신들의 작품 활동비 일부로 전문 스토리텔링 작가를 채용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 훈 혼자 자식들을 키운 한 어머니가 낡고 허름한 집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물었어요. 잘 장성한 자식들만 보면 고래등 같은 집도 아깝지 않을 텐데. 아직 마음속에 남편이 있어서 재가도 할 수 없었고 그 남편이 손수 지은 집을 떠날 수도 없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마음을 담아 열녀문의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이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새로 마을을 흐르는 문화 호흡은 이렇게 마을사람들의 삶과 밀접하다. 마을과 살을 붙이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예우이자 이 대표들이 생각한 마을미술사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어떤 조형물이 설치되고, 벽화 재료가 뭐고 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며 "작업 하나하나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10년 넘게 광주 시화문화마을 조성을 이끌었던 노하우도 아낌없이 발휘됐다. 마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절대 한꺼번에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가능한 마을의 것을 활용하는 것 모두 시화문화마을 때 시도해 전국적인 모델이 됐던 사례다. 이 대표는 "작가들이 떠나고 난 뒤 그냥 볼거리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살아 숨쉬게 하는데 주안을 뒀다"며 "주민들로부터 얻은 한 보따리 넘는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다"고 다음을 기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