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인 '한림 용암동굴지대' 만든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38.느지리오름

2013-02-20     김철웅 기자

▲ 중산간서로에서 바라본 느지리오름 남면
무분별한 시설은 문제…바위굴·봉수대 파괴 가치 상실
사방 다 트인 정상부 전경이 위안…탐방 길어야 50분

느지리오름은 영욕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오름이다. 탄생과 함께 힘차게 용암을 분출하며 소천굴과 황금굴·협재굴 등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를 만들어 천연기념물의 근원지(source)가 된 오름이다. 조선시대엔 만조봉수가 설치, 제주 방어를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도 했다. 그런데 후세가 문제였다. 무분별한 시설 탓이다. 산책로 개설 사업으로 정상부 동굴이 파괴되고, 봉수대가 사라져버렸다. 탐방로는 '너무' 잘 정비돼 발에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탐방할 수 있다. 그런데 맛이 없다. 오름은 한식처럼 은근하고 깊은 맛이 있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느지리오름을 화학조미료 팍팍 친 인스턴트식품으로 만들어버렸다.

느지리오름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산5번지(표고 225.0m)에 위치하고 있다. 오름 동쪽과 남쪽 자락이 상명마을이다. 느지리오름은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중형에 속한다. 비고가 85m로 153번째이고, 면적은 33만2844㎡로 121번째로 넓다. 저경 832m에 둘레는 2609m다. 가장 높은 남봉과 건너편의 북봉, 제일 작은 남동봉 등 3개의 봉우리 사이 북서와 남동쪽에 2개의 원형 분화구를 가지는 복합형 화산체다.

이름은 '느지리(또는 니지리)'로 불렸던 상명리에서 유래했다. 일찍부터 느지리오름 또는 느조리오름 등으로 부르고 한자는 만조악(晩早岳)·만조리악(晩早里岳) 등으로 표기했다. 조선시대에 정상부에 만조망(晩早望)이란 봉수대가 설치됐던 연유로 망오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봉수대가 설치됐던 오름 모두가 망오름이 불리는 만큼 고유한 이름인 느지리오름으로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 <느지리오름 탐방로> 

A=주차장 B=둘레길 갈림길 C=중턱 갈림길 D=작은 분화구 갈림길 E=분화구 사이 갈림길 F=둘레길 만나는 점 G=정상 H=큰 분화구 갈림길 I=큰 분화구 J=작은 분화구 K=소천굴
느지리오름 가는 가까운 길은 일주도로다. 신제주로터리에서 32㎞가 채 안된다. 마리나사거리에서 일주서로를 타고 27㎞ 가면 나오는 명월교차로에서 월림 방면으로 좌회전, 명월성로를  4㎞ 직진하면 왼편에 십여대 주차가 가능한 느지리오름 주차장(탐방로 지도 A)이다.

오름이 크지 않아 '주마간산'으로 달리면 25분만에 탐방을 끝낼 수도 있다. 천천히 돌아도 50분이면 충분하다. 1번째 갈림길(〃B)에서 왼쪽은 능선을 타고, 오른쪽은 둘레길을 도는 코스다. 출발 후 여기까지는 물론 2번째 갈림길(〃C)과 3번째(〃D)·4번째(〃E)에 이어 둘레길 코스와 만나는 5번째 갈림길(〃F)까지 각 구간별 소요시간이 5분 내외다.

탐방로는 시멘트포장길·타이어매트·야자수매트·목재데크 등 다양한 재료로 정비돼 있어 일부 오르막을 제외하곤 오르기 어렵지 않다. 탐방로 좌우로 삼나무 등 목본식물들이 웃자라 주변 풍광 구경이 힘들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상의 전망대가 사방이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 무너진 궤터
▲ 느지리오름 정상부 무너진 궤흔적
4번째 갈림길(〃E) 바로 남쪽, 즉 작은 분화구 북쪽 정상부에 나무로 보호책이 설치돼 있다. 그 너머엔 아랫부분에 직경 30㎝ 가량의 구멍이 뚫려있는 용암괴가 있다. 여기 있었던 바위굴의 흔적이다. 2008년 오름 탐방로 설치 과정에서 파괴돼 버렸다. 분화구를 향해 남쪽으로 트인 동굴 입구는 좁으나 안은 7~8명이 앉을 만큼 넓고 키 큰 사람이 설 수 있을 만큼 높았다고 한다. '무지몽매한' 공무원들이 돈을 들여 자연을 파괴한 셈이다.

▲ 느지리오름 전망대
세금으로 파괴한 현장은 여기만이 아니다. 2008년 세운 전망대다. 탐방로 공사를 한답시고 천연기념물인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를 만든 오름 정상부의 '원조' 동굴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던 봉수대 밀어내고 그 위에 전망대를 세운 것이다. "헐~" 통탄할 일이다. 그래서 봉수대의 흔적은 안쓰럽다. 전망대 공사로 많이 훼손돼 버렸지만 북쪽엔 고랑을 파고 흙을 쌓았던 자리가 일부 남아 있다. "기록 속으로 사라질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듯하다.

만조봉수는 명월진 소속으로 동북쪽의 어도오름 서쪽 봉우리에 위치했던 도내봉수(직선거리 6.4㎞)와 남서쪽의 당산봉 서쪽 봉우리에 있던 당산봉수(직선거리 10.9㎞)와 교신했다. 중심부에서 반경 15m 거리에 둑을 돌아가면서 이중으로 쌓은 뒤 그 사이에 0.9m 깊이의 고랑을 만들고, 한 단 높이에 직경 18m, 높이 1.9m의 둥근 봉우리 모양을 토축(土築)했다고 전해진다.

▲ 느지리오름에서 바라본 비양도와 한림 시가지.
전망대의 풍광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사방이 트여 있어 산과 바다, 중산간 들녘까지 제주의 모두가 눈으로 들어온다. 남쪽으론 바리메·새별·북돌아진·폭낭·금·왕이메·정물·당·원물·도너리오름과 산방산 등 서부지역 오름을 배경으로 한라산이 우뚝하다. 북쪽으론 '천년의 섬' 비양도가 겨울 바다에 맞서 떠 있는 모습이 의연하다.

하산도 아주 쉽다. 짧게는 7분이다. 바로 내려오지 않고 큰 분화구 갈림길(〃H)에서 분화구 사이 갈림길(〃E)로 진행하면 분화구 2개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분화구는 북서쪽(〃I)이 크고 깊다(78.2m). 남동쪽 분화구(〃J)의 깊이는 49.8m다. 분화구 2개 사이에는 다리처럼 야트막한 안부가 형성돼 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2개의 분화구는 거의 동시에 형성, 쌍둥이(twin crater)로 볼 수 있다"며 "남동쪽의 작은 게 먼저 분출한 뒤 북서쪽의 큰 분화구가 본격적으로 크게 폭발하며 많은 양의 용암이 유출, 북서쪽으로 흘러가며 용암동굴군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 느지리오름 중턱의 자금우.
느지리오름의 식생은 해안과 인접, 까마귀쪽나무가 많고, 천선과·예덕·참느릅나무 등도 분포하고 있다. 초본층으론 별·가는쇠·선바위·돌토끼·잎도깨비고사리 등 양치식물과 봉의꼬리·큰봉의꼬리·자금우·주름조개풀 등이 있다. 분화구 내부엔 후박·참식·예덕·팽나무 등이, 화구벽 흔적을 따라선 쇠고비·콩짜개덩굴·곰비늘고사리 등 양치식물과 소엽맥문동·송악 등이 자라고 있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느지리오름의 식생은 해송이 우점하지만 경사가 급한 분화구와 화구벽 흔적들로 인해 주변 오름과는 차이를 보인다"며 "과거 오름 사면을 따라 분포했던 대흥란·보춘화 등은 장초형의 식물 증가 등 식생변화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용암류 해안선 따라 흐르며
천연기념물 동굴지대 형성"

●인터뷰/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느지리오름은 만장굴 등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만든 거문오름처럼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를 만들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제주 화산은 오름이라는 분석구에서 유출된 용암류의 흐름, 즉 용암류의 선(線)을 따라 일련의 용암동굴들을 형성한 특징이 있다"며 "도내엔 용암동굴군(群) 2개가 뚜렷한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와 '느지리오름 용암동굴계'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 소장은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가 해안으로 흐르며 벵뒤굴·만장굴·김녕굴·용천굴·당처물굴을 만든 것처럼 느지리오름의 용암류도 북서쪽으로 해안가까지 약 3㎞에 걸쳐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라는 4개의 동굴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오름 바로 북서쪽의 소천굴에서 한림공원에 황금굴·협재굴까지 포함하는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는 1971년에 천연기념물(제236호)로 지정된 국가 문화재"라며 "실제적으로 이 동굴들은 모두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강 소장은 "소천굴 안에는 양치식물은 물론 240m에 이르는 '동굴 속 동굴(tube-in-tube)' 등 다양한 동굴 지형이 발달돼 있다"면서 "하류의 협재굴·황금굴·쌍용굴은 상부에 두껍게 퇴적된 패각사의 영향으로 내부에 '황금처럼' 아름다운 석회동굴의 모습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천연기념물을 만든 용암류의 공급처인 느지리오름도 문화재 지역에 포함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가급적 빨리 현재 비지정인 쌍용굴까지 포함, 문화재를 확대 지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