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도시에 마법을 입히다
[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13. 요코하마 창조도시
'주민 편의'중심…40여 년 간 공공디자인 사업 펼쳐
민간기구 '뱅크 아트 1929'가 프로젝트 전반 수행
전통·현대 잇고 미래 들어 '지속가능성'고민 주문도
창조도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일본 오사카 시립대의 사사키 마사유키 교수는 '21세이 이후의 사회인프라는 문화'라고 말했다. 문화적 소비와 투자가 하나가 되는 사회,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사회 중심부에서 배제된 노인 등 소외계층을 사회 속으로 포섭해야 도시의 발전이 있다는 말이다. 어딘가 익숙하다. 문화자본과 지역민의 창조적인 활동 노력이 마을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와 비슷하다. 마을이 아닌 도시로,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것은 다시 다양한 형태의 공공미술·마을미술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제주가 고민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사사키 교수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는 일본 요코하마시에 그 답을 살펴봤다.
#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요코하마의 변화는 무려 40여년에 걸쳐 진행됐다.
1968년 발표된 후 불후의 명곡 반열에 오른 '블루라이트 요코하마'가 던지는 느낌이 그러하듯 줄잡아 150년이 넘은 뿌연 은청색의 낡은 항구가 연상되는 이 도시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세련된,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 배경에는 도시 디자인에 대한 요코하마시의 철학과 일관된 정책이 있다.
'요코하마만의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요코하마시는 공공 디자인에서 찾았다. 공공디자인에만 무게를 뒀다면 도시 전체의 변화를 유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 역할이 아니라 전체 도시 밑그림에 맞춰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은 하나의 도시 미술을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다.
사실 요코하마시는 30여년 전부터 도시디자인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이들 작업에 열성적이다. 최근에는 '요코하마시의 매력 있는 도시경관 창조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취재를 도와준 요코하마시 창조도시추진본부 관계자는 '살고 싶은 도시'라는 말을 강조했다. 경관으로 보이는 도시의 세련됨보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매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시가 내세우는 공공 디자인의 이념도 마찬가지다.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공간 △개방 공간과 녹지 △시민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확보 등 눈에 번쩍 뜨이는 무엇 대신 어우러져 하나를 만드는 직소퍼즐이 연상됐다. 실제 요코하마시 중심시가지 활성화 기본계획의 최우선 과제는 '요코하마다운 도시구조를 활용한 매력있는 공간 만들기'다.
# 젊은 예술인들, 도시를 바꾸다
지자체의 의지만으로는 모자란 부분은 문화가 채웠다. 무덤덤한 일상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예술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2000년대 들어 '문화예술 창조도시'로 급부상한 배경에는 '사람'이 있다.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경관 디자인에서 시작된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을 경제 활성화의 동력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 요코하마시는 개항 후 1900년대 초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을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개방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의 중심에는 '뱅크아트(BankART) 1929'가 있다. 일종의 비영리기구(NPO)로 요코하마시의 창조도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브레인이자 엔진이다.
신시가지 형성 등으로 칸나이, 야마시타마치 등 구 중심가가 쇠락하자, 시는 2002년 '문화예술과 관광진흥에 의한 도심부 활성화 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 '뱅크아트'라는 이름은 시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던 옛 은행 건물을, 이 NPO가 거점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뱅크아트는 시의 지원을 받지만 운영에는 일체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뱅크아트는 시가 제공한 건물을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스튜디오로 빌려주는 한편 각종 전시와 강좌 개최, 상점 및 카페 운영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뱅크아트의 자체 수익과 이들이 끌어들이는 관광 수입 등을 더한 금액이 한 해 60억엔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항당시부터 사용하던 건물을 활용한 '코끼리 코'는 현재 문화예술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토시호 미조하타 뱅크아트 디렉터는 "뱅크아트는 도시 건설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완전히 개방되고 자유로운 곳"이라며 "행위자와 지지자가 모두 생계를 꾸리고 살아가는 실험을 통해 예술가들이 육성되고 문화와 삶이 접목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요코하마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인 '요코하마트리엔날레'로 확인할 수 있다. 매년 8월 6일 개막해 11월 6일 막을 내리는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3년만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축제로 세계 예술가들을 요코하마로 불러들였고 이들의 창의성을 지역과 나눴다. 유명 작가들만이 아니라 요코하마를 찾은 젊은 예술가들이 아낌없이 재능을 풀어낼 기회도 제공된다.
# 역할론, '프로듀서' 중요성 부각
여기서 다시 사사키 교수의 조언을 인용한다면 "도시가 안은 문제를 예술과 문화의 측면에서 접근, 도시재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예술을 비롯한 문화영역과 산업정책, 도시계획, 복지계획이 융합될 수 있도록 행정기관의 조직문화부터 창조적으로 바꿔야"한다.
요코하마시는 이 사사키 교수의 말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이곳 역시 고민이 있다. '마을 만들기'와 '문화예술 진흥'에 있어서는 변화와 함께 일정 수준의 성과를 얻었지만 '산업 활성화' 부분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 요코하마시 자체 평가다.
사사키 교수의 말과 요코하마시 예를 정리하자면 문화와 지역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행정과 민간 영역의 역할분담과 함께 지역민들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상당 부분 지역의 호응을 얻으면서도 일부 지자체와의 불편한 관계로 당초 계획과는 다른 결과물을 내놓거나 이해부족에 의한 무조건적인 주거 환경 개선 요구로 마찰을 빚고, 일회성 사업 논란과 지역연계 및 연속성 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사키 교수는 '프로듀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코하마시의 창조도시 추진본부와 '뱅크아트 1929'처럼 각각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지속가능성'을 견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도시디자인사업에서부터 농어촌 마을만들기, 마을미술 프로젝트 등에 이르기까지 섬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사업들은 '제주'라는 하나의 도화지를 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에도 '자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