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오름 5형제' 가운데 잘 생긴 맏형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42. 민오름 봉개

2013-07-10     김철웅 기자

▲ 큰지그리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민오름 봉개 북동면. 김철웅 기자

비고·면적 물론 표고 1위에 외형도 잘 보존
햇빛 차단하는 숲 있어 '여름형'…탐방 70분
 
민오름 봉개는 제주 '민오름 5형제' 가운데 맏형 격이다. 5개 가운데 키(비고)도 최고, 덩치(면적)도 최대다. 아울러 가장 높은 곳(표고 651m)에 위치, '동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잘 생기기까지 했다. 가파른 오름 경사와 원추형 분화구의 높은 안식각 등 오름 생성 당시 외형을 잘 보존한 아름다운 오름으로 평가된다. '제주의 허파' 가운데 하나인 교래곶자왈 생성에도 관여, 제주의 자연과 식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고 있다. 도심지에서 멀리 있지도 않아 방문에도 부담이 없는 민오름 봉개다.
 
민오름 봉개 소재지는 제주시 봉개동 산64번지 일대다. 번영로와 비자림로를 북~남으로 연결하는 명림로와 오름 서쪽 자락을 접하고 있다. 번영로 명도암교차로에서 5.7㎞, 비자림로 명도암 입구에선 1.5㎞ 지점이다.
 
비고는 136m로 368개 오름 가운데 38번째로 높고 면적은 51만8910㎡로 49번째로 넓다. 둘레는 3433m에 저경은 1042m다. 민오름 봉개는 언뜻 말굽형으로 보이지만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분화구 상단부, 즉 주봉의 안쪽 사면에 깊이 70m 정도의 원추형 화구도 가지고 있어 복합형으로 분류된다. 남쪽 봉우리를 주봉(표고 651.0m)으로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가 완만한 기복을 가진 등성이를 이루고 있으며 말굽형 화구 침식부는 형태가 잘 보존된 소위 '혀 내민 모양(tongue-like type)'을 하고 있다.
 
오름의 이름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에서 비롯됐다. 민오름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민악(敏岳)·문악(文岳)·독악(禿岳) 등으로 썼다. 앞의 둘은 한자의 음가자 표기이고 후자는 훈독자(대머리 독·禿) 표기다. 세모진 산머리가 승려들이 쓰는 고깔을 닮았다하여 '무녜오름', 조천읍 교래리 마을 뒤쪽에 있어 '뒷민오름'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시 종합경기장에서 거리는 15.6㎞다. 번영로를 타고 10㎞ 정도 달리다 명도암교차로에서 우회전, 명림로를 타고 5.7㎞ 더 가면 민오름 입구 주차장이다.
 
▲ 금새우란(왼쪽)과 쥐오줌풀. 김철웅 기자
주차장을 출발하면 들꽃들이 반긴다. 바위틈에서 탐방객의 발길을 피해 소담스레 꽃을 피운 들꽃들과 함께 보리수나무 꽃과 국수나무 꽃도 화사한 얼굴을 내민다. 타이어매트를 따라 걷다보면 덤불 사이로 민오름 왼쪽 능성이 눈에 들어온다.
 
탐방로가 조성된 지 시간이 꽤 지난 듯 타이어매트가 바닥에 밀착, 자연과 하나가 됐다. 입구까지도 숲인데 출발 7분후부터는 완전히 숲으로 뒤덮인 탐방로다. 언제 민둥산이었나 싶게 숲이 무성하다. 햇빛을 완전히 가려주니 영락없는 '여름형' 오름이다.
 
탐방로는 타이어매트와 돌다리처럼 놓인 목재계단이 번갈아 이어진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오르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출발 17분 정도를 지나면 오름 남쪽능선을 타고 말굽형 분화구 앞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으나 지금은 공식적으론 '출입금지'다. 분화구 아래쪽엔 늪지와 금새우란 군락지도 있다.
 
▲ <민오름 봉개 탐방로> A=주차장 B=개활지 시작점 C=정상부 벤치 D=탐방로 갈림길 E=정상 F=지그리오름 방향 G=분화구 H=목재형 데크 시작점 I=명림로와 만나는 점 J=명림로 K=절물자연휴양림 주차장 L=절물오름
정식 코스대로 따라 오르면 20여분 만에 정상부 개활지(〃B)가 나온다. 몇분 더 나아가면 정상부 개활지에 벤치(〃C)가 마련돼 있다. 동쪽 방향에서 큰지리와 족은지그리오름, 교래휴양림 등을 시작으로 민오름 최정상인 남쪽 봉우리와 남서쪽의 절물오름·견월악 등이 눈에 들어오고 북서쪽으론 4·3평화공원도 보인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동부지역 오름들이 군웅할거 하듯 서로 웅장함을 뽐내고 있다.
 
최정상으로 계속 전진하는 중간에 하산하는 탐방로와 연결되는 갈림길이 여러번 나오지만 오른쪽으로 빠지지 말고 직진하면 최정상(〃E)이다. 35분 소요됐다. 정상부에서 직진, 동쪽 능선을 내려가면 큰지그리오름 탐방로로 이어진다.
 
하지만 차를 세워둔 곳으로 하산하려면 '뒤로 돌아' 해야 한다. 최정상을 출발해 2분여면 올라왔던 탐방로와 내려가는 갈림길(〃D)이다. 하산 길은 경사가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7분여 계단을 내려오면 타이어매트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인공 목재데크 길이 길게 이어진다. 역시 7분여를 걷다보면 명림로(〃I)가 나온다. 노견을 따라 5분을 걸으면 절물자연휴양림 입구 맞은 편 출발했던 주차장이다. 하산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70분 정도면 탐방이 가능한 코스다.
 
민오름은 제주도 북동방향의 화산구조선, 이른바 '한라산-김녕선'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한라산 정상을 출발, 흙붉은오름·어후오름·쌀손장오리·물장오리·개오리오름·절물오름·민오름·큰지그리오름·족은지그리오름·바농오름에 이어 새미오름·묘산봉과 구좌읍 김녕리 해안가의 입산봉까지 거의 일직선상으로 19㎞에 걸쳐 형성돼 있다.
 
▲ 보리수나무꽃(위)과 노린재나무꽃. 김철웅 기자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민오름 봉개는 말굽형이 먼저, 원추형이 나중에 폭발했는데 오름의 전반적인 경사가 급하고 원추형 분화구의 안식각이 잘 유지돼 있어 오래되지 않은 오름"이라며 "말굽형 전면으로 펼쳐진 교래곶자왈을 만든 오름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오름 봉개는 주변의 산림형 오름들처럼 내외 사면에 때죽나무·비목나무·산딸나무·팥배나무·곰의말채나무·목련·층층나무·상산·국수나무·왕쥐똥나무·비자나무 등 낙엽활엽수 2차림이 형성돼 있다. 초본층에는 제주조릿대·관중·퉁둥굴레·복수초·십자고사리·제주조릿대·송악·새우란 등이 분포하고 있다. 하단부 곶자왈지역에는 섬까지수염·좀고사리 같은 희귀식물을 비롯, 변산바람꽃·꿩의바람꽃·복수초 등도 자라고 있어 이른 봄 사진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민오름 봉개는 분화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습지와 곶자왈이 분포, 식물다양성이 매우 높은 오름 중 하나"라며 "분화구에서 시작되는 교래곶자왈은 지그리오름을 지나 바농오름 인근까지 넓게 펼쳐진 흐름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이 흐름을 따라 형성된 숲은 곶자왈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식물상을 보유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인터뷰 / 김창집 탐라문화보전회장

"제주에 가장 많은 오름이 민오름이다"

김창집 탐라문화보전회장은 "도내에 비슷한 이름, 같은 이름의 오름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최다는 민오름"이라며 "하나의 이름, 민오름으로 불리는 게 5개나 된다"고 말했다.

도내 5개의 민오름은 제주시 봉개동(비고 136m·면적 51만8910㎡)과 오라2동(〃117m·〃47만4001㎡), 조천읍 선흘리(〃118m·40만724㎡)와 구좌읍 송당리(〃102m·41만2245㎡) 등 산북 지역에 4개, 산남인 남원읍 수망리(〃97m·〃37만1170㎡)에 1개가 소재하고 있다.

김 회장은 "봉개 민오름이 5개 민오름 가운데 큰 형님 격"이라며 "이는 봉개가 비고와 면적 모두에서 5개 민오름 가운데 가장 앞서고 표고도 651.0m로 최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고에선 봉개 민오름에 이어 선흘(518.3m)·수망(446.8m)·오라(362.0m)·송당(251.7m) 순이다.

그는 "민오름의 유래는 민둥산이었던 데서 비롯됐다"며 "지금은 조림사업 등으로 숲을 이루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민둥산들이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조선시대부터 국영목장이었던 곳은 해충을 없애고 풀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음력 정월 대보름 전후에 불을 놓아 나무가 자랄 틈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식목행사를 하고 불을 넣는 것까지 금하면서 점차 숲으로 전이,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봉개동 민오름의 경우 1990년대까지도 남·북쪽 능선이 풀밭이었으나 지금은 숲으로 바뀌었고 오라동 민오름은 1960~1970년대 소나무와 삼나무를 심어 시민공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송당리 민오름은 해방 후에도 목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민둥산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인공 조림한 삼나무 숲으로 변했고 선흘리와 수망리 민오름도 1970년대 삼나무와 소나무 조림으로 일부 사면을 제외하고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