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시절의 맛' 추억에서 경쟁력으로
[제주음식이 경쟁력이다]
7. 강원도 정선의 음식
2013-09-26 김봉철·고혜아 기자
임야 80% 지역…정선 밥상의 주식·부식은 '산나물'
웰빙·건강식 아이콘 주목…산업화 방안찾기 진행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정선 아리랑의 노래 가락만 읊어도 정선이 보인다. 정선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 속이며 마을 안에서 주위를 둘러봐도 산뿐인, 그래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섬 땅에서 삶을 일궈내기가 척박했다는 제주와도 어딘지 모르게 닮은 듯하다. 정선 사람들 역시도 삶에 순응하며, 풍요롭진 않지만 산에서 강에서 식재료를 구해 '식(食)'을 준비했다. 그리고 배고팠던 시절의 먹을거리는 최근 들어 '웰빙' '슬로우푸드' '건강식' 아이콘에 맞물려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식재료 '산'으로부터
임야가 80%인 강원도 정선에는 고려 시대 학자 정추가 '이 고을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치는 것처럼 좁다'고 했을 정도로 산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랬던지라 쌀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산간 마을 여자들은 '평생을 먹어야 쌀 두 세 말을 못 먹고 죽는다'고 할 만큼 쌀은 지역에서 그야 말로 귀한 음식이었다.
정선의 음식은 잡곡을 이용한다는 게 특징으로 꼽힌다. 옥수수와 메밀, 콩, 감자 등으로 만든 음식을 주식으로 삼았고 이 밖에 곤드레와 취나물, 두릅 등 산 속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산나물 등을 밥상에 자주 올렸다. 황기, 당귀 등 산에 자생하는 약초 또한 풍부했다. 예전 의료서비스가 부족했던 산골에서 약용으로 썼던 것이 지금은 각종 음식에 첨가해 건강을 위한 음식 재료로 전국에서 찾고 있다.
삶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정선 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들이 이제는 정선의 독특한 음식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철따라 나오는 재료와 김치와 장 등 발효식품을 차려낸 밥상은 조촐하지만 넉넉함이 배어 있어 정선을 찾는 사람들에게 '별미'로 입맛을 돋우기엔 그만이다.
감자붕생이, 콧등치기,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황기닭백숙, 황기족발 등 정선을 대표하는 음식 리스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곤드레밥'이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곤드레는 이제 건강식재료로 명성이 자자한데, 특이한 것은 곤드레 나물이 '반찬'이 아닌 주식 대용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곤드레 나물과 쌀을 섞어 밥을 짓고 간장을 비벼 먹으며 정선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겼을 정도다. 정선 곤드레는 원활한 소화를 돕고, 단백질·칼슘·비타민A 등의 영양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도 좋아 조촐하지만 건강에는 그만으로 긴긴 겨울을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도 정선 시내에는 곤드레밥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곤드레밥'은 가난했던 시절을 버텨내게 했던 것과는 다르게 '지역 경제 활성화 주체'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곤드레밥을 맛보러 온 관광객들이 근처 정선장터에 들러 곤드레 등 정선 산나물을 한 아름 사가지고 가면서 이른바 '곤드레 경제'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0년에는 정선군이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추진해온 '정선 곤드레'가 산림청의 지리적표시제 품목 29호로 최종 등록되면서 법적인 보호와 함께 명품화 사업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 웰빙 음식 산업화 진행 중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선에서 나는 특산물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별다르게 '음식 문화'라 할 것 없다 여겼던 정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정선군은 '음식 산업'에는 못 미치지만 음식을 상품화 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5년 관광과 연계해 정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전통음식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 아래 향토음식연구회를 설립했고, 지역색을 잃을까 '우리맛 연구회'를 별도로 만들어 '진짜' 농가에서 먹는 음식들을 보전·연구하고 있다.
향토음식연구회에서는 음식 상품화에 주력, 옛 조리법을 따른 '장아찌'(산채 절임)를 정선장터에서 2년간 판매, 상품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사업으로는 연결하지 못했다. 정선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나가는 '물류비' 때문으로 정선군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소설 '양반전'을 스토리텔링화 해 코스요리로 상차림을 선보이기도 했다. 향토음식연구회 회원인 유명자·양주희씨가 '양반전' 속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을 분석, 가난한 양반인 이 진사의 밥상에서부터 부자 상민 김 부자의 밥상, 일품요리, 정선의 대표 면요리, 부침 등 다양한 향토 음식들을 이야기와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거의 모든 재료가 정선에서 나는 만큼 신선함은 물론,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 정선 지역의 조리법에 따라 식재료 본연의 맛까지 느낄 수 있어 '로컬푸드'로의 매력도 크다.
정선군은 이 밖에도 시내 식당가의 상차림 '표준화'와 명품밥상 인증을 통해 식당가 고급화·차별화 전략 등을 추진하며 경쟁력 강화 실험을 펼치는 중이다. 음식 산업화의 시작 단계를 지나진 못했지만 '음식에도 문화가 있다'라는 큰 틀 아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특별취재반=김봉철·고혜아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여진희 정선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정선음식 산업화에 가능성을 두고 '길'을 낸 건 정선군 농업기술센터 여진희 지도사다. 행정의 적극적인 관심을 끌어낸 것도, 지역 내 향토음식전문가들과 동행을 이끌어낸 것도 모두 여 지도사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여 지도사는 "고향은 아니지만 정선 음식을 맛보고 충분한 가능성을 내다봤다"며 "조리법이 단순하지만 정선 음식에는 문화가 있다"고 정선 음식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여 지도사는 "소박한 음식인 만큼 정선 음식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며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다른 지역의 화려한 음식들과 차별을 뒀다.
또한 "담백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한다"며 "정선 사람들이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정선 음식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여 지도사는 정선 음식의 전국화·세계화를 두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기대를 걸었다.
여 지도사는 "거리상으로 가까운 만큼 그 때까지 충분한 작업을 통해 정선 음식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며 "정선의 맛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자신했다.
이어 "음식 관련 산업이 시작 단계이지만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현재 진행중인 정선음식 축제, 학계와 연계한 음식 연구 활동, 농가맛집 선정, 인력 양성, 농산물 자체 판매 등도 이를 이뤄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