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마을유산 복원 지역주민 의기투합
[제주의 어업문화유산 '도대불'을 찾아서] 신엄리 도대불
2013-11-26 김경필·한 권·김하나 기자
2009년 5월 애월읍연청 주도 복원 작업
기록 없지만 지역주민 증언 토대로 축조
포구와 멀리 떨어진 언덕위에 설치 특징
복원전 사진자료로 일제강점기 건립 추정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는 해안과 접해있는 마을로 제주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16㎞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이 접해있는 만큼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는 농어촌마을이다. 1500년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수박과 양배추가 유명하다. 수산업도 발달했지만 신엄리 도대불에 대한 기록은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신엄리 도대불이 복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애월읍연청 주도로 복원
옛 북제주군이 1998년 1월 발간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서는 도내에 19개의 도대불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 책자에는 신엄리 도대불이 있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도시계획가인 이덕희씨가 1997년 펴낸「제주의 도대불」에도 16개의 도대불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신엄리 도대불은 빠져있다.
신엄리 인근 마을인 구엄리 포구에는 도대불이 있었으나 신엄리 포구에는 도대불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나 지난 2009년 5월 애월읍연합청년회가 신엄리 도대불을 복원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도대불의 축조방법과 시기, 형태, 사용방법 등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지역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복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엄리 도대불 옆에 세워진 준공 기념비에도 고증을 거쳐 복원됐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엄 도대불은 1960년대 이전까지 있었으나 훼손됐다는 내용이다. 그러다가 방치되는 도대불에 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하게 됐다고 했다. 도대불 복원에 사용된 돌은 현무암으로 2층 구조물을 만든 뒤 그 위에 호롱불을 밝히는 시설을 축조했다.
도대불의 용도에 대해서는 어부가 밤중에 고기잡이를 마치고 포구로 들어올 때 불을 밝혀 안전하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옛 민간 등대로 제주도에만 있는 중요한 해양 조형물이라고 평가했다.
언덕 위에 축조 특징
신엄리 도대불의 특징은 포구와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축조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도대불은 방파제 등 포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신엄리 도대불은 달랐다.
지형적인 특성을 고려, 최대한 먼 곳까지 불빛을 전달해서 포구의 위치를 알려주고자 높은 언덕 위에 도대불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엄리 도대불의 축조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도대불의 실측 및 설계를 맡은 광장건축사사무소가 가지고 있는 사진자료를 토대로 축조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이 사진자료에는 복원 전 신엄리 도대불의 흔적이 담겨져 있는데, 돌 틈이 시멘트로 채워져 있고, 계단시설도 있었다는 점에서 보목동 도대불 등과 축조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목동 도대불의 경우 1920~1930년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원된 신엄리 도대불의 형태는 기단부와 몸체, 상부로 구분되며, 전체 높이는 287~303㎝로 측정됐다. 기단부 폭은 218~221㎝로 상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신엄리 도대불은 그동안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던 도대불인데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특별취재팀=사회부 김경필 차장 대우, 한 권·김하나 기자 / 자문=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신엄리 도대불은 신엄리 포구에 인접한 작은 언덕 해안도로에 자리 잡고 있다. 신엄리 도대불의 가장 큰 특징은 규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소개되었던 도대불과 달리 높이가 거의 성인 키 정도이고 폭도 그다지 크지 않아 외형적으로는 아담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도대불의 외형적인 큰 틀은 외부계단을 갖는 사다리꼴형의 애월읍 도대불 형태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기단부분과 몸체부분만을 본다면 기단형식의 연대형의 형태적 요소도 갖고 있어서 아주 독특한 느낌을 갖게 하는 도대불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 도대불로서의 기능을 유지해 오다가 이후 등대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이후 방치되어 있었다. 애월읍연합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구엄리 도대불과 함께 신엄리 도대불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복원 이전의 현장사진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은 계단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과 사각형으로 축조되었다는 점, 그리고 언덕 위 바닷가에 바짝 붙여 위치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는데 위치변화 없이 현재의 위치에 잘 복원된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엄리 도대불의 가장 큰 특징은 크기라 할 수 있다. 기단에 해당되는 부분은 가로 및 세로 218~221㎝, 높이 114~130㎝의 장방형이고 몸체부분은 하단 143~150㎝, 상단 120~134㎝, 높이 94~100㎝로 정방형에 가까운 사다리꼴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사각형의 큰 틀 속에 각각의 독특한 형태를 유지하는 형태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시각적 안정감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멀리 불을 밝혀야 하는 등대로서 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몸체가 크고 높아야 하지만 신엄리 도대불은 오히려 몸체의 높이가 기단보다 평균적으로 25㎝ 정도 낮아 기능적으로 낮아 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러한 단점을 장소로 극복하려했던 것 같다. 즉 대부분의 도대불은 포구내 혹은 포구에 인접한 장소에 축조되어 있지만 신엄리는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높고 작은 언덕위에 축조되어 있고 도대불은 몸체는 낮으나 상대적으로 훨씬 멀리 불빛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장소적 요인 때문에 도대불을 높게 축조하는 것이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보여 작고 아담한 크기로 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만 불을 놓아두었던 상부부분은 구엄리 도대불과 달리 애월읍 도대불의 형식을 취했다. 계단의 위치도 특이한데 기단의 중앙부분에 계단을 두었던 애월읍 도대불, 두모리 도대불과 달리 좌측으로 쏠린 듯 계단을 설치했다. 이는 언덕위에 있는 크고 작은 암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불필요하게 장소를 훼손하거나 공사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그만큼 장소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해 신엄리 포구에 어울리는 독특한 도대불을 축조한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장소와 기능을 고려한 작은 배려와 조화로움이 제주의 포구를 아름답게 형성하고 나아가 도대불을 귀중한 어업문화유산으로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