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처럼 봉우리들 조화가 아름다운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48. 좌보미
2013-11-27 김철웅 기자
주연·조연 5개가 서로 어우러지며 장관 연출
거미·따라비 매력 합쳐 놓은 듯… 탐방 2시간
좌보미는 멋있는 교향악단을 보는 듯하다. 주연은 가장 크고 높게 가운데 자리한 주봉이다. 좌우로 4개 봉우리들의 조연과 어우러지며 때로는 역동성을, 때로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이들 5개 봉우리 좌우로 펼쳐진 수십 개의 암설류와 이류구의 '알오름'은 곳곳에서 코러스로 거들고 있다. 가을 햇살 아래 억새는 하얗게 빛나는 손을 흔들며 연신 환호성이다. 오름의 풍광과 트래킹도 한편의 교향악이다. 억새가 펼쳐진 들판과 가파르고 선이 굵은 능선, 가까이 가을꽃과 멀리 한라산과 일출봉 경관 등 오름의 종합선물 같은 좌보미다.
좌보미 소재지는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6번지 일대다. 표선면의 북단이면서 구좌읍·성산읍과 접경하는 삼각지대다. 좌보미 북쪽에서 3개 읍면의 경계가 만난다.
좌보미는 큰 오름이다. 비고는 112m로 89번째지만 면적이 63만1356㎡로 29번째로 넓다. 저경 953m에 둘레는 4898m에 달한다.
좌보미는 5개의 큰 봉우리들로 이뤄져 있다. 떨어져 있으면 주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서봉, 왼쪽에는 동봉, 앞쪽에는 남봉이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주봉과 동봉 사이에 조그만 '새끼봉'이 있다.
5개의 봉우리가 연결돼 커다란 산체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화구 또한 여러 개다. 남서쪽에 깊고 넓게 말굽형(〃I)으로 벌어진 분화구가 있고 오름 복판에는 크고 작은 4개의 원형분화구가 움푹움푹 패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남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산체다.
오름 동쪽 사면에는 3개의 아담한 원형 분화구의 둔덕이 자리하는 가운데 남쪽에서 서쪽과 북서쪽 자락으로 이어지는 백약이 오름 및 거미오름과의 사이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이류구와 암설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좌보미·좌보미오롬 등으로 부르고, 한자로는 좌보산(左甫山)·좌보악(左輔岳) 등으로 표기했으나 정확한 어원은 알려지고 있지 않다. 산의 형세가 주봉을 여러 봉우리가 좌우에서 보필하는 듯해서 풍수지리의 구성(九星)의 하나인 '좌보성'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호랑이가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좌범이'라 불리다가 좌보미로 변형됐다는 설 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에 한좌보산(閑佐甫山)·한좌악(閑坐岳)으로 표기됐던 점으로 미뤄 시간이 지나며 '한'이 생략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좌보미는 제주시에서 32㎞다. 번영로의 대천동 사거리에서 좌회전, 3㎞ 지점에서 금백조로를 타고 3㎞ 가면 백약이오름 주차장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2㎞ 더 들어가면 입구(탐방로 지도 A)다.
탐방은 남봉(〃C)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게 좋다. 갈림길(〃B)부터 야자수매트가 깔려 있다. 채 10분도 되기 전에 남봉 정상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바로 서쪽의 백약이에서 남쪽으로 돌며 민오름·비치미·큰도리미·개오름, 그 뒤로 머리에 눈꽃을 살짝 얹은 한라산의 모습이 시원하다. 대록산·소록산과 새끼오름·모지오름·따라비·영주산·모구리오름과 유건에오름, 동쪽으로 궁대악과 후곡악, 멀리 지미봉·우도·대수산봉과 성산일출봉 등 동부지역 오름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동봉(〃D)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동봉에 올라서면 새끼봉 등 좌보미의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각 봉우리 능선과 정상부의 억새들이 가을 햇살에 하얗게 빛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새끼봉(〃E)은 위에선 보던 것과 달리 밑에서는 확실한 존재감이 과시한다. 엄연한 봉우리다.
이제 주봉(북봉·〃F)이다. 비교적 가파른 흙길이다. 곳곳에 향유 등 가을꽃들도 반긴다.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주봉은 편백나무와 삼나무·해송 등으로 숲이 우거져 있다. 10여분 오르니 좌보미의 최정상(표고 342.0m)이다. 나무 너머로 다랑쉬와 아끈다랑쉬·높은오름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주봉 조망점이다. 좌보미 '교향악단' 조연들의 위치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조망점 바위 곁에 '철모르는' 봄꽃 철쭉이 가을 억새와 함께 피었다. 온난화의 영향인지 하여간 '어색한 동거'가 아닐 수 없다.
주봉에서 10분 정도면 서봉(〃H)이다. 능선과 정상부의 억새가 장관이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가을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볕이 잘 드는' 오름의 남쪽 사면에는 묘들이 많다.
탐방로 입구까지도 10분. 출발한지 2시간이다. 좌보미는 거미오름과 따라비오름의 매력을 합쳐 놓은 느낌이다. 5개 봉우리와 분화구가 어우러져 거미오름의 역동성과 함께 따라비오름의 아기자기한 곡선미와 억새꽃 향연의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좌보미 초지대에는 참억새를 비롯, 솔새·스크령·띠·물매화·산부추·청미래덩굴·발풀고사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토양노출이 많은 곳에는 솜양지꽃·애기수영·낭아초·개미탑 등이 자라고 정상부 및 사면을 따라 산철쭉·국수나무·쥐똥나무 등도 관찰된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방목이 행해지던 오름이어서 우마 출입으로 인한 잔디나 개미탑·낭아초 등이 우점하는 단초형 식물군락 지역이 넓었으나 점차 잡목림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그 흔했던 피뿌리풀도 거의 사라지고 있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인터뷰 /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좌보미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은 여러 차례의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좌보미 주봉은 전형적인 말굽형 분화구를 갖고 있는 화산체"라고 전제, "그러나 전체가 지금처럼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시간을 달리하여 분출한 2개의 말굽형 화구와 1개의 원추형 화구구(火口丘) 덕분"이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가장 먼저 서쪽에서 말굽형 분화구가 만들어진 뒤 북쪽에서 본 화산체가 분화했다"며 "원형이 잘 보전된 원추형의 알오름은 북봉 분화구 내부에서 2차적으로 분출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선후관계는 있지만 크게 보면 좌보미는 2개가 중첩된 하나의 화산체"라며 "먼저 형성된 서봉은 용암류에 의해 동쪽으로 터졌고, 후에 주봉에서 유출된 용암류도 다시 이곳을 거쳐 남쪽으로 흐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 소장은 "분석구(cinder cone)는 원래 스코리아만의 원추형으로 형성되는 특징이 있으나 제주에는 좌보미처럼 말굽형 분화구들이 많다"며 "이는 용암류가 유출, 분화구 외륜을 하류 쪽으로 터트리고 흘러나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류로 흘러간 용암류는 지표상엔 곶자왈을 만들고, 지하에는 용암동굴을 만들었다"면서 "작은 화산체인 분석구가 용암을 유출, 이러한 독특한 화산의 결과물들을 배태하는 요인이 됐다는 사실은 화산지질학적 연구가치도 높다"고 강조했다.
강 소장은 "좌보미 주변엔 수산곶자왈을 만든 거미오름 등 말굽형 화산체들이 많이 분포돼 있다"며 "월랑지오름·궁대악·후곡악 등도 용암 유출로 인해 반달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