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사라진 도내 유일의 민간 신호유적
[제주의 어업문화유산 '도대불'을 찾아서]
15. 에필로그 <2> 역사 찾기 또 하나의 과제
2013-12-24 김경필 기자
도내 도대불 8기 포구·도로공사로 멸실 추정
애월읍연청 복원사례 참조 증언확보 나서야
민간주도방식 바람직 행정적 관심·지원 절실
도대불은 제주의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흔적이자 유산이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후 전기가 공급될 때까지 민간등대 역할을 해왔다. 현재 마을 포구에 남아 있는 도대불은 13기로 파악되고 있다. 마을의 유산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일부 도대불은 포구 확장공사 등으로 인해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의 소중한 유산인데도 그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도대불의 체계적 관리와 함께 사라진 도대불에 대한 복원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주민들만으로는 도대불 복원이 쉽지 않은 만큼 행정의 관심과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도대불 8기 멸실 추정
지난 6∼11월 본보 취재결과 도내 20개 마을에 도대불 21기가 축조됐으며, 이 중 13기가 현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시 고산리, 두모리, 귀덕1리, 귀덕2리, 애월리, 구엄리, 북촌리, 김녕리, 신엄리, 용담동(1기), 우도 영일동, 서귀포시 보목동, 대포동 등 13개 마을 포구에서 도대불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도대불 8기는 포구 확장공사 등으로 멸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시 하귀리와 신촌리, 하도리, 외도동, 삼양동, 용담동(1기), 서귀포시 강정동, 대평리 등 8개 마을에 있던 도대불이다.
이중 일부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옛 북제주군이 1998년 1월 발간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을 보면 사라진 도대불 가운데 일부의 형태나 규모, 축조시기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애월읍 하귀리 도대불은 마을 선창 언덕에 위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대불 하단부는 현무암 잡석을 이용, 상자형으로 축조하고 상단부에는 철탑을 세웠다는 기록이다.
이 도대불은 1970년에 축조된 뒤 1972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나와 있으며,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해 전구를 켰다고 한다.
다만 이 도대불이 세워지기 이전 석유를 이용해 불을 밝히는 남포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남포등의 형태나 축조시기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조천읍 신촌리 큰물선창 방파제에도 도대불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신촌리 도대불은 1947년 봄에 축조되기 시작해 같은해 7월 완성됐다고 한다. 주변의 현무암 잡석을 이용해 기단부를 원통형으로 쌓았고, 그 위에 상자형 도대불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또 기단부와 상단부를 연결하는 계단이 있었고, 상자형 도대불 위에는 불을 밝히는 등화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도대불 등화 담당자는 선창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어부들이 정했다고 했다. 각지불을 이용해 불을 밝혔고, 연료는 어부들이 자금을 모아 마련했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1968년에는 신촌리에 전기가 공급되고, 1969년 도대불 옆에 전신주를 세워 불을 밝혔다는 기록도 있다.
구좌읍 하도리 도대불에 대한 내용도 있다. 1969년 7월15일 '신동'청년회에 의해 도대불이 하도리 선창 남쪽에 세워졌고, 1979년까지 사용되다 1997년 별방진성 보수과정에 멸실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도대불은 높이 120㎝인 상자형 돌담 위에 철제 기둥을 세운 형태였고, 기둥 위에는 등화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삼양동과 강정동, 대평리에도 도대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양동 도대불의 경우 축조시기와 형태는 모르나 1997년까지만 하더라도 삼양동 포구 방파제에 도대불의 흔적과 비석이 있었다는 사실이 책자에서 확인됐다.
강정동 도대불은 포구 진입로에 축조된 뒤 1945년까지 사용되다 1996년 사라졌으며, 대평리 도대불은 1929년 포구 암반에 설치됐다가 1996년 멸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애월읍연청 복원사례 대표적
제주의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건축유산인데도 관리되지 못하고 사라진 도대불에 대한 복원방안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애월읍연합청년회의 도대불 복원 사례를 참조, 민간주도방식으로 도대불 복원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대불 자체가 관 주도가 아닌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지어지는 등 민간등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애월읍연청은 구엄리 도대불과 신엄리 도대불 등 2기를 복원했다.
구엄리 도대불의 경우 1950년대 구엄리 포구 동쪽 암반 위에 상자형으로 세워졌으나 2009년 5월 애월읍연청에 의해 허물어진 뒤 새로운 형태로 축조됐다.
새롭게 축조된 구엄리 도대불은 원뿔형으로 이전 도대불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애월읍연청은 1936년생인 조두헌 전 구엄리어촌계장의 증언을 토대로 1950년대 이전 도대불 원형 복원을 시도한 것이다.
애월읍연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엄리 도대불도 복원했다.
신엄리 도대불에 대한 기록은 없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복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귀덕1리 포구에 복원된 도대불도 하나의 사례로 꼽힌다.
귀덕1리 도대불 역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으나 한림읍이 지난 6월20일부터 8월18일까지 진행한 귀덕1리 복덕개포구 정비공사과정에 복원됐다.
도대불의 형태와 규모, 위치 등은 원형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민들의 증언을 최대한 반영,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귀덕1리 도대불의 원형은 일제강점기 때 축조됐을 가능성이 크며, 20∼30년간 사용하다 허물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원 위한 증언 확보 시급
현대식 등대는 관 주도로 축조된 반면 도대불은 민간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기가 없던 시절 어민들의 필요에 의해 축조된 건축물로,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산이다.
도대불은 신호유적으로서 봉수나 연대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됐다. 다만 봉수와 연대는 군사유적이자 방어유적으로 비상시 불과 연기로 신호해 연락하는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도대불과 차이를 보인다.
특히 연대의 경우 대부분 제주도 지정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의 어업문화를 간직한 도대불은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방치돼온 것이 사실이다.
민간에 의해 만들어진 도내 유일의 신호유적인데도 말이다.
도대불은 포구 확장공사와 해안도로 개설공사 등으로 훼손되거나 멸실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도대불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와 함께 포구 공사 등으로 사라진 도대불 복원도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과거 도대불의 형태 등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도대불 복원을 위한 증언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끝> <특별취재팀=사회부 김경필 차장 대우, 한 권·김하나 기자 / 자문=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