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한 오름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50. 거문오름

2014-01-29     김철웅 기자
▲ 번영로 우진교차로에서 바라본 거문오름 북서면
용암 14㎞ 흘려 용암동굴계 형성하며 작품 완성
다양한 식생과 풍광…최장 3시간반 등 4개 코스 
 
거문오름의 멋은 장대한 스케일이다. 용암과 송이 분출로 자신의 몸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용암을 제주 섬의 북동쪽 해안까지 14㎞를 흘려보내며 만장굴·김녕굴·용천동굴 등 용암동굴계를 만들어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같이 올렸다. 거문오름에는 용도 9마리나 있다. 다른 오름에선 1마리도 힘든 용이 9개 봉우리에 저마다 자리하고 있는 엄청난 '산'인 셈이다. 아픔도 있다. 일본군들이 병참도로를 낸다며 생채기를 내고 진지동굴을 위해 속살을 갉아내 버렸다. 그래도 경이로운 풍광과 스케일로 과거의 아픔까지도 승화시켜주는 거문오름이다.
 
거문오름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 경계에 걸쳐 있으나 최정상을 포함, 오름의 3분2 가량이 위치한 선흘리 산102-1번지 일대가 '공식' 소재지다. 거문오름은 아주 넓은 오름이다. 비고는 112m로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90번째이나 면적은 210만9410㎡로 군산(283만6857㎡)과 어승생(254만3257㎡)에 이어 세 번째다.
 
어원은 말굽형 분화구 북쪽 사면 끝에 있는 수직동굴(거문오름 탐방로 O)인 '거물창(거멀창·黑坑)'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인다 하여 검은오름, 그리고 '검은'이 고조선시대 신(神)이란 뜻의 '감·감·검'에 뿌리를 둔 '신령스러운 산'이란 설 등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은 1일 입장객을 400명으로 한정하고 있어 예약(문의=064-710-8981)이 필수다. 거문오름까지는 제주종합경기장에서 번영로를 타면 21.4㎞다.
 
탐방로는 정상·분화구·능선·전체코스 등 4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능선구간(〃O~C)을 제외하곤 동행하는 해설사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탐방의 맛을 돋운다. 출발(〃B) 후 10분 정도 오른 뒤 갈림길(C)에서 좌회전이다. 전망대(〃D)까지 230여개의 계단이다. 거문오름의 최대 난코스다.
 
▲ 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쪽 풍광
전망대에선 거문오름의 북서쪽 풍광이 펼쳐진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왼쪽부터 쳇망·구두미·부대·물찻·궤펜이·성널오름과 넙거리·물장오리에 이어 절물·지그리·바농·꾀꼬리·세미오름과 우진제비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이어진다.
 
2~3분 가면 표고 456.6m의 최정상(〃E·)이자 거문오름의 첫 번째 용(제1룡)이다. 흑룡인 제1룡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백룡·황룡·회룡·자룡·적룡·와룡·청룡과 또하나의 회룡인 9룡까지 자리하고 있다.
 
정상에서 7분여 거리에 다시 전망대다. 이번엔 반대 방향이다. 분화구 내부는 물론 오름 동쪽을 감상할 수 있다. 왼쪽부터 밧돌·안돌·높은·거미·백약이·칡·민오름과 비치미·개오름·영주산을 넘어 성불·모지·따라비, 대록산·부소악·여문영아리·쳇망·구두리오름까지 눈에 들어온다.
 
목재데크를 10분 내려가면 갈림길(〃G)이다. 좌회전하면 탐방로 출구(〃W)로 이어지며 정상코스(1.8㎞·1시간 소요)가 종료된다. 직진하면 수직동굴(〃O)을 거쳐 나머지 8개 봉우리를 모두 돌아가는 능선코스(5km·2시간 소요)다.
 
▲ 사위질빵(사진 왼쪽)과 줄사철나무(사진 오른쪽)
우회전해 5분 정도 가면 용암협곡(〃H)이다. 거문오름의 용암협곡은 폭 80~150m, 깊이 15~30m, 길이 약 2㎞에 달한다. 분석구 주변의 연속적인 절리에 발생한 단층운동이 원인이다. 상록식물이 겨울에도 숲을 형성할 정도로 잘 자라고 있다. 바로 붙어서 암석 사이로 지하의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풍혈이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데, 김이 어린다.
 
야자수매트를 따라 분화구 내부를 남쪽으로 횡단하면 식나무·붓순나무군락지를 지나 알오름 정상부에 자리한 전망대(〃I)다. 거문오름을 형성하는 9개 봉우리 등 웅장함이 전해진다. 일본군의 진지동굴·숯가마터와 일본군주둔지, 커다란 바위에 암석이 박힌 화산탄 등이 보인다.
 
거문오름내 진지동굴은 10개에 이르며 가장 긴 것은 60여m에 달한다. 폭 0.9m에 높이는 1.8m다. 내부에도 길이 10~15m의 직선형 갱도가 6개나 된다. 폭 2m의 병참도로(〃M)도 나온다. "일본인들이 별짓을 다 했구나"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 <거문오름 탐방로> A=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B=탐방로 입구 C=갈림길1(제2룡) D=전망대1 E=정상(제1룡) F=전망대2 G=갈림길2 H=풍혈 및 용암협곡 I=전망대3 J=진지동굴 K=숯가마터 L=화산탄 M=병참도로 N=용암협곡 O=수직동굴 입구 및 갈림길 P=전망대4(제9룡) Q=제8룡 R=제7룡 S=제6룡 T=제5룡 U=제4룡 V=제3룡 W=탐방로 출구 X=번영로 Y=거문오름 진입로
거문오름의 수직동굴(〃)은 독특한 형태다. 일반적인 용암동굴이 수평으로 발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직으로 발달했다. 입구 직경 2~3m에 깊이 약 35m, 경사도는 70~90도로 아주 위험해 자물쇠로 봉쇄돼 있다.
 
수직동굴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분화구코스(5.5km·2시간 30분 소요)가 끝난다. 우회전하면 정상부 능선을 돌며 제1룡의 형제인 나머지 8룡을 만난 뒤 첫 갈림길(〃C)을 거쳐 출발지(〃B)로 돌아가는 전체코스(10km·3시간30분 소요)다. 마지막 전망대(〃P)를 제외하곤 코스 대부분 숲으로 가려 있다.
 
거문오름은 북동쪽이 터진 말굽형 분화구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복합형 화산체로 분류된다. 처음엔 다량의 송이와 용암을 분출, 원형 화구를 가진 화산체의 모습이었으나 계속되는 용암류의 분출로 북동사면이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문오름의 식생은 250종 이상의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는 가운데 조림지와 낙엽활엽수림이 각 30%, 구실잣밤나무와 붉가시나무 등의 상록활엽수림 5%, 관목림 7%와 초지 등으로 구성된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거문오름은 양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으름난초 같은 멸종위기야생동식물과 가시딸기·한라감자란·사옥 등 특산식물의 종피난처도 되고 있다"며 "하천지역에서 관찰되는 붓순나무와 식나무 군락은 풍혈 등이 많은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거문오름은 제주도의 대표오름이다"

김성훈 제주세계자연유산관리단장은 "제주에 있는 360여개의 오름 가운데 유독 거문오름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거문오름의 가치를 강조했다.

김 단장은 "거문오름은 독특한 분화구, 용암함몰대 등 다양한 지질 및 생태자원과 식생 등 오름 자체도 훌륭하지만 용암을 분출시켜 바닷가까지 14㎞나 흘려보내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만들고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려 가치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수직동굴·벵뒤굴·대림동굴·만장굴·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등은 대부분 규모가 크고 생성시기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 내부 경관이 매우 뛰어나고 구조나 형태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어 또 하나의 명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 내부는 동굴 상부를 덮고 있던 모래의 석회성분이 물에 녹아 흘러들어와 검은색의 용암동굴을 석회동굴처럼 흰색과 갈색으로 바꿔놓았다"면서 "이러한 특성은 외국에선 볼 수 없는 것으로 이들 동굴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거문오름은 지난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2007년 UNESCO 세계자연유산 등재 이후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며 "2009년엔 환경부 선정 생태관광 20선, 2010년엔 한국형 생태관광 10모델에 뽑혔다"고 자랑했다.

"IUCN 줄리아 르페브르 사무총장 등 유명 인사들의 방문과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는 그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로버트 리 부소장은 탐방 후 지속가능한 발전과 활용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 밝혔다"고 소개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