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 이름마저 잃어버린 곶자왈

[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4.분포와 현황 - 시간의 흐름, 변화한 곶자왈

2014-04-24     김영헌·고경호 기자, 김효철 상임대표
도, 투수성 지질구조 분석 지리정보시스템 주제도 사용
학문적 연구결과 바탕 연구·조사주체 따라 의견 엇갈려
대표적인 애월읍 금산공원도 제주곶자왈분포도서 제외
 
4개 지대·10개 용암류로 분류
 
▲ 함몰지는 높은 습도와 따뜻한 기온 영향으로 온갖 식물들이 늘 푸른 빛으로 가득 차 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수많은 생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이 차오르는 배안에서 마지막 순간 절박하게 보내온 문자 메시지 한 줄. '엄마…사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하던 이 말이 가장 슬프고 견디기 힘든 말이 되고 말았다.
 
무거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10년만에 다시 오른 둔지봉 아래는 죽은 자들의 세상인 듯 무수한 유택(幽宅)만이 곶자왈과 어울려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구좌읍 종달리 지경에 위치한 동거문이오름에서 시작돼 한동리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종달-한동곶자왈'이라고 부른다.
 
곶자왈마다 선흘곶이나 김녕곶처럼 내려오던 이름이 있으나 지역별로 용암류 흐름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은 송시태 박사가 2000년 제주도 암괴상 아아용암류 분포에 관한 연구결과에서 처음으로 이뤄졌다. 현재 곶자왈 분포를 설명할 때 쓰이는 4개 곶자왈 지대·10개 곶자왈용암류가 등장한 것이다. 곶자왈을 만들어낸 용암을 분출한 오름과 곶자왈 분포 현황을 연구해 분포도를 만들고 지역마다 이름을 제시했는데 곶자왈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기저기 활용되고 있으니 값진 연구성과다. 하지만 곶자왈 정의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 만큼이나 곶자왈분포 현황에 대한 과제와 보완은 해결 해야할 일로 남아있다.
 
분포현황 등 정확한 자료 필요
 
우선 제주도가 곶자왈 분포현황과 면적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만드는 일이다.
 
사실 제주도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곶자왈 분포도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너도나도 곶자왈 보전에 목소리를 높이고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제주형 의제로도 다뤄졌는데 곶자왈에 대한 공식적인 분포도가 없다니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곶자왈 도면은 1997년 중산간지역 종합조사를 하면서 숨골과 곶자왈 등 투수성 지질구조를 분석해 작성한 지리정보시스템(GIS) 주제도다. 공식적인 곶자왈 조사 결과에 따른 곶자왈 분포도라기 보다는 투수성 지질구조중 곶자왈 지질 분포도다. 학문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와 조사 주체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송 박사가 처음으로 제시한 곶자왈 분포도면과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나무줄기를 뒤덮고 자라는 콩짜개덩굴.
두드러진 차이는 송 박사 연구논문에 나타난 4개 곶자왈 지대(한경·안덕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애월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와 달리 제주도 곶자왈 지질 분포도는 서귀포시 남원읍과 색달동 곶자왈 지대가 포함돼 있다. 반면, 4개 곶자왈지대를 이루는 10개 곶자왈용암류 가운데 다랑쉬오름에서 분출한 세화곶자왈은 제주도 분포도에서 제외됐다. 면적은 작지만 대표적 곶자왈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애월읍 금산공원도 제주도 곶자왈분포도에는 찾을 수 없다.
 
현재 알려진 4개 곶자왈지대·10개 곶자왈용암류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와 보완이 필요하다.
 
한경면 저지리 곶자왈 일부가 누락돼있거나 이미 택지로 개발된 지 오래된 지역도 포함돼 수정이 필요하다.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조천읍 선흘곶자왈도 연구자에 따라 지질분포도와 곶자왈 경계가 다르다. 남원읍과 색달동 곶자왈, 구좌읍 세화곶자왈에 대해서도 조사를 거쳐 곶자왈 분포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야 한다.
 
10년 세월이 만든 변화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이 흐려간다. 나선 길에 새로운 곶자왈 분포 현황을 살펴보고자 서둘러 구좌읍 덕천리 북오름을 돌아 북쪽으로 들어갔다. 초지와 덤불이 넓게 펼쳐져있는데 암반상태를 보니 평평하고 넓적한 게 전형적인 파호이호용암류다. 그리 넓지 않은 상록수림속으로 들어가니 급한 경사를 이루는 함몰지다.
 
▲ 자주색을 띤 식나무 꽃.
사면을 따라 구실잣밤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팽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센달나무처럼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닥에는 섬사철란, 나도은조롱, 큰천남성, 가지고비, 나도히초미, 일색고사리 등 온갖 식물들이 가득하다.
 
깊고 따뜻한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식나무가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꽃을 피우고 봄맞이를 하고 있다. 줄기 곳곳에서 뿌리가 돋아나는 것을 보니 이처럼 음습한 곳에서는 차라리 발 뻗어 뿌리내리는 것이 훨씬 개체를 늘리는데 좋을 듯도 하지만 굳이 꽃을 피우며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착하다.
 
전형적인 함몰지 식생모습이 거문오름 곶자왈 함몰지와 다를 게 없다. 물론 곶자왈분포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곳이다. 지금까지 곶자왈 정의와 경계설정 기준이 불명확해 곶자왈에서 포함되지 않거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곶자왈보전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될 분포도를 새롭게 만들어야하는 과제를 남긴다.
 
늦었지만 제주도가 지난 2월 곶자왈보전관리를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했다. 이에따라 새로운 곶자왈 정의와 경계설정기준에 따른 곶자왈 조사와 경계설정 및 분포도를 그려나갈 계획이어서 기대를 해본다. 곶자왈이 새로운 가치와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진 지 10년이란 세월이 만들어낸 변화이자 성과다.
 
흐릿하던 날씨는 끝내 비를 뿌리고 말았다. 곶자왈속에서 무수한 생명이 나고 죽듯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과 죽음도 자연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특별취재팀=김영헌 정치부 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