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면 복원 불가능한 무형의 혼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7.갓일 - 양태
2014-04-29 고혜아 기자
'인내'와 '섬세함' 결정판…장인의 손길
보유자 삶·생활 문화콘텐츠 활용 필요
"널랑 죽거들랑 손이랑 내노앙 죽거라" 1992년 작고한 고정생 양태장의 지인들은 그의 '손'을 귀하게 여겼다. 대나무에서 실을 뽑아내는 정교한 과정은 '장인'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부업'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시절이었다. 뭘 해도 힘들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양태' 작업을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4호(1964년)로 지정하게 한 이유가 됐다.
'손'이 만들어낸 걸작
이는 관련 자료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조 제주 부녀자들이 양태 겯기를 주요 부업으로 삼았고 그 작업이 활발해 '양태청'이라는 마을 내 공동 작업 공간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삼양·화북·신촌·와흘 등 한라산을 중심으로 섬 북동쪽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던 양태 작업은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수십 명의 생계를 지탱하는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 기능보유자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타고난 '솜씨'에 품질이 좌우됐던 까닭에 보통 수준의 재주로는 중도 포기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고 양태장의 '손'을 두고 가라고 했을까.
양태 작업은 그 절반 이상이 재료가 되는 극세의 대오리(대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담양지역 대숲을 돌며 2~3년 정도 자란 것 중 흠 없이 쭉 뻗은 '고품질'대나무를 선별하는 것부터 매의 눈이 돼야 한다.. 대나무 껍질을 벗겨 이를 머리카락만큼 얇게 만들어내는 작업은 모두 손으로 이뤄진다. 날이 잘 선 칼을 이용해 얇지만 단단한 대오리를 만든다. 말이 쉽지 끊김 없이 한 번에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지경이지만 대오리를 이용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반복된 겯기를 해야 '양태'가 완성된다. 흔히 장인의 손길을 가리켜 '인내'와 '섬세함'의 결정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태 작업에서도 통용된다.
맥(脈) 끊길까 우려
양태 역시 총모자와 마찬가지로 '모계 가업'의 형태로 전수되고 있다. 양태 기능보유자인 장순자 선생(74)은 외할머니 강군일 선생, 어머니 고정생 선생에 이어 2000년 기능보유자가 됐다.
지금은 장 선생의 세 딸들이 '후계자'의 길을 밟고 있다. 아직은 이수자이지만 6월 공개시연행사 이후 전수 장학생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전승·보전에 대한 고민은 지난 2009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문을 연 지상 2층 규모의 '갓 전시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사업의 일환으로 장 선생이 직접 부지를 제공하는 등 전시관 건립에 공을 들였지만 성과는 아직 미미한 상태다.
어느 해인가 유럽에서 온 공예가들이 대나무에서 실을 뽑아내는 대오리 제작 과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일이 있다. 양태 기능이 단순한 '전통 문화'가 아닌 '장인'으로 현대 문화에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현실로 옮기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문화재급 기능보유자가 관람객을 상대로 대오리 제작 등 일련의 과정을 시연하는 것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실용성이나 탐미적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대나무로 만든 전통 공예품'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 때문이기는 했지만 '반짝 관심'을 유도했던 전례를 감안한다면 양태 기능은 갓전시관 등과 연계한 문화콘텐츠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문화의 정의를 협의의 문화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국민 개개인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해 문화를 교육·복지·환경·인권과 분리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연계한다는 '문화융성'개념으로 접근할 때 살아있는 문화유산인 양태 기능보유자의 삶과 생활 자체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자는 얘기다.
장 선생은 "무형문화재다 보니 작업장을 무조건 개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운영 인력 역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전수 작업과의 분리를 전제로 공간 체류시간을 늘릴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양태 문화'를 제대로 문화관광상품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혜아 기자
① 대나무 마디 마디 사이를 잘라 폭이 1.5cm 내외가 되도록 쪼갠다. 쪼갠 댓개비를 '촉'이라 부른다.
② 촉을 대칼로 세 쪽을 낸다.(바순다)
③ 바순 댓개비 각각의 겉껍질과 속을 분리시킨다.(속튼다)
④ 속튼대를 솥에 잿물과 함께 넣어 8~9시간 삶는다.
⑤ 삶아낸 피죽은 솥에서 꺼내 볕에 말려 보관한다.
⑥ 양태로 사용할 만큼의 분량을 꺼낸 속튼대는 무릎에 올려 놓고 대칼로 여러 번 훑어 다듬어 최대한 얇아지도록 한다.(걸목하기)
⑦ 대의 한쪽을 왼쪽 검지에 1.5mm 정도 위로 튀어나오게 올린 다음, 오른손에 든 칼날로 연거푸 치면서 0.5mm 내외 간격으로 칼금을 잘게 낸다.(재긴다)
⑧ 칼을 고정시키고 대를 칼날에 얹어 눌러 문지르면서 가슴 쪽으로 반복적으로 잡아당기면 대나무의 섬유질에 칼금을 주었던 것이 쪼개지면서 가느다란 올이 만들어진다.(달룬다)
△양태 직조 공정
① 무명실의 굵기와 날실의 굵기에 따라 '쌀 엮음'이 달라진다. 굵으면 날실용 죽사는 280여개, 가늘면 370여개가 된다.
② 원형의 나무판인 양태판에 쌀 엮음을 빙 둘러 놓는다.
③ 날줄에 해당되는 쌀대와 씨줄에 해당되는 조를대를 엮어간다
④ 1차 겯기가 끝난 뒤 양태판에 떼어내서 양태판을 뒤집는다. 뒤집은 양태판에 1차 짜놓은 양태를 얹고 빗대를 꽂는다.
⑤ 어교칠을 해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