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직업-방송구성작가 좌은영씨
2001-10-29 김은진
첫 대면한 좌씨의 표정은 ‘대체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고 있었다. 한참후에야 간신히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 표정이었다.
평안해야 할 일요일 오전, 30분전의 약속을 까마득히 먼 옛일로 잊어버릴 만큼 좌씨는 1분1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방송이라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한폭탄을 하나 둘 막다 보면 하루, 또 일주일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방송작가의 세계다.
구성작가 9년차인 좌씨는 제주MBC TV제작부에서 활동하는 5명의 구성작가중 고참에 든다.
신문사 기자출신답게 99년 1년이상 「4·3증언 나는 말한다」(현 「영상채록 4·3증언」), 「PD리포트 오늘」등 다큐멘터리, 현장진단 프로그램 등 굵직한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고참이라고 해서 후배작가들과 다른 조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구성작가들은 원고 작성 외에도 대본, 출연자 및 장소 섭외 등까지, 맡은 프로그램 준비의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종합 교양·토론 프로그램이 많은 지역방송의 특성상 “전화통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많다”고 말한다.
더구나 지방방송국은 메인작가, 서브작가로 나뉘어 있는 중앙방송국과는 환경이 다르다. 작업분야별로 분화돼 있지 않은 지방방송 작가일을 “정신노동자중 가장 ‘노가다’”라고 표현하는 좌씨.
그러나 “오히려 그 덕분에 늘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죠. 사회에 근접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만 바라보는 두 딸애의 눈망울을 옆에 두고 글을 써야할 때도 많지만, 그 때문에 일에서 고개를 돌린 적은 없다.
좌씨의 말대로 끝없이 자기능력을 팔아야 하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오랜 생명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건 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좌씨는 현재 「열린다큐 우리동네」의 구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