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

8. 호메로스 「일리아스」 - 아킬레우스의 분노

2014-08-14     강은미
▲ 루벤스 작 '헥토르를 죽이는 아킬레우스'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다룬 대서사시
남겨진 이들의 슬픔·고통 통해 전쟁의 잔혹함·허무 그려
 
세계의 신화와 역사, 문학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고전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이다. 호메로스가 실재하는 인물이었는지, 그의 서사시를 그가 전부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누구도 증명해낼 수 없는 부분이기에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설령 믿지 않는다 해도 그 작품이 상징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할 것이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트로이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시다. 24권의 책으로 이뤄진 1만5694행의 대서사시다. 제작 연대는 BC 8세기 중엽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 파괴적인 분노를, 이는 수만의 고통을 아카이아인들에게 주었고, / 수없이 많은 굳센 목숨들을 하데스에게로 내던져 보내었으며, / 영웅들, 그 자신들을 먹이 거리로 만들어 주고 있었으니, 개들과 / 온갖, 새들을 위해, 그리고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었나이다.  「일리아스」1.1-5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트로이전쟁의 발단은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트로이전쟁 당시 지중해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미케네와 트로이가 패권을 겨루고 있었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아우이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에게는 미모의 아내 헬레네가 있었는데, 그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그리스군은 동맹군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오른다. 
 
대서사시는 그리스 연합군 최고의 전사였던 아킬레우스가 10년간의 전쟁 끝에 마지막 정복지인 트로이 성을 눈앞에 두고 닥친 재앙에서 시작한다. 그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열린 회의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가 격돌한다. 아폴론 신이 내린 질병의 재앙에서 벗어나려고 아가멤논은 명예의 상으로 맞이한 처녀 크뤼세이스를 놓아주어야 했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스를 빼앗겼다. 아킬레우스는 깊은 모욕감과 격렬한 분노를 느끼고 아가멤논과 다른 그리스인들에게 분노를 느끼며 처철하게 울부짖는다. 
 
 
 
어머니, 당신께서 저를 짧게 살다가 죽을 운명으로 낳아주셨으니, / 명예라도 저에게 손에 쥐어주셨어야만 합니다, 올림푸스에 기거하시며 / 높이서 천둥치는 제우스께선, 지금 저에게 조금도 베푸시질 않습니다. / 자 보십시오, 저를 아트레우스의 아들이며 널리 위세 떨치는 아가멤논이 / 모욕했습니다. 그가 직접 제 명예의 상을 빼앗아 취해 갖고 있으니까요.
 「일리아스」 1.352-356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테티스를 통해 하늘에 잇닿은 이데산으로 올라 전 우주를 울린다. 이로 인해 천상과 지상, 바다와 지하의 모든 신들의 갈등을 야기하고, 일은 더욱 복잡하게 엮여 움직이게 된다. 드디어 아킬레우스는 두 운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소, 은빛 발을 가지신 여신 테티스께서, 나를 / 두가지 서로 다른 사망의 전령이 죽음의 끝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 만일 이곳에 남아 머물면서 트로이인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우면 / 귀향의 길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그러나 명성은 불멸할 것이라고 / 만일 내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내 사랑하는 조국의 땅으로 / 고귀한 명성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내게 수명은 오랫동안 길게 / 지속될 것이며, 죽음의 끝은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리아스」 9. 410~416
 
 
 
아킬레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택한다. 아가멤논에게 받은 모욕과 상처를 안고 있지만 전투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 그가 가장 사랑하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잔혹한 죽음을 당한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참여하지 않은 사이 최고의 무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슬픔에 못이겨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신의 무구로 무장을 하고 헥토르를 향하여 돌진하였다. 
 
「일리아스」의 최고 정점은 트로이를 사수하는 용사 헥토르와 분노에 휩싸인 아킬레우스의 대결이다. 물론 승리는 아킬레우스의 차지였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두 발의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 뚫어 소가죽 끈으로 꿰어 묶고 전차에 매달았다. 그리고 전차를 달리게까지 한다.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 대한 복수는 그가 받은 모욕에 대한 잔혹한 복수였다. 헥토르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슬픔을 자아냈다. 과부가 된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의 비탄에 찬 통곡에 이어 전투에 참가한 전사들의 아버지의 울부짖음, 어머니들의 통곡, 아내들의 비탄과 한탄이 이어진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복수만을 카타르시스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고 있다.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해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아 프트로클로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를 태운다. 이를 보다못한 신들은 회의를 열었다. 테티스를 불러 아킬레우스를 달래고,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넘기도록 한다. 테티스로부터 신들의 뜻을 전달받은 아킬레우스는 시신을 깨끗하게 한 뒤 수레에 실어주었다. 장례식 기간에는 전쟁도 멈출 것을 약속했다. 헥토르의 장례식을 앞두고 여인들의 비통한 노래가 울려퍼졌다. 맨 먼저 슬픔의 노래를 부른 것은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였다. 
 
 
 
여보! 당신은 아직 한창 나이인데 죽으셨군요! 나를 과부로 / 남겨두고서, 집안에다, 그리고 이 아이는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인데, / 그를 낳았지요, 불행한 운명의 당신과 내가, 난 생각하지 않아요, 이 애가 / 자라서 어른이 되리라고는, 그전에 바로 이 도성은 위에서부터 / 완전히 파괴될테니까. 도시의 수호자인 당신이 죽었으니, 바로 이 도성을 / 막아주던 당신, 그대는 지켜주었지요, 소중한 아내들과 철없는 아이들을.
「일리아스」 24. 725~730
 
 
 
안드로마케의 통곡은 그 어머니의 통곡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헬레네의 통곡으로까지 이어진다. 자기 때문에 이 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한 비탄이 섞인 통곡이었다. 아들의 죽음은 어머니의, 아내의, 그 아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일리아스」는 비통한 노래를 통해 엄숙하게 묻고 있다. 인간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 분노의 내면 안에는 어떤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 
 
오늘날의 수많은 전쟁들 또한 그 옛날 호메로스가 그리고 있는 서사시의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총성이 사라지지 않는 세계, 그 안에서 울부짖고 있는 여인들과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