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역사와 절개·효심 서린 마을

[제주 마을의 유래를 찾아서] 13.한경면

2014-09-11     김영모 기자

▲ 한경면은 제주시 가장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자연을 장랑하는 관광지들을 갖추고 있다. 사진은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수월봉에서 내려다 본 고산리 앞바다. 김영모 기자
1956년 한림면서 한림·한경으로 분리 발전
고산리유적·수월봉·절부암 등 관광지 명성

한경면은 제주시 가장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동부가 해발고도가 높고 해안으로 갈수록 완만한 형태다. 제주 신석기 역사 연구에 바탕이 되는 고산리 유적, 효심과 절개의 정신이 서려있는 수월봉과 절부암, 그리고 해안절경 등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자연을 고루 갖춘 한경면의 마을들을 들여다보자.

마을의 창성·역사의 한 획

한경면은 조선 후기까지 고산리·용수리·용당리 등은 대정현에, 조수리·판포리·저지리 등은 제주목에 속했다.

제주도 구우면에 속한 한경면 마을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대정현 소속 마을들이 편입, 1935년 4월부터 구우면이 한림면으로 바뀌면서 한림면 마을이 됐다.

이후 한경면은 1956년 한림면이 한림읍과 한경면으로 분리하면서 마을의 역사를 시작했다.

'한경'(翰京)의 '한'은 한림면(翰林面)의 '한'을 차용했으나 '경'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일부는 한경면주민센터의 소재지인 신창리가 '새로 창성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경'을 넣었다는 등의 개인적인 추측만 전해지고 있다.

신창리는 이름 그대로 한경면의 행정·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두모리, 서쪽으로는 용당리와 이웃했으며 하동·중동·상동·신흥동 등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됐다.

이중 신흥동은 '성굴'로 불리던 동굴의 이름을 빌려 '숭글왓' '성굴왓'으로 불리다가 1950년대에 이름이 바뀌었다.

신창리는 신창성당부터 시작해 용수포구를 거쳐 고산리까지 이어진 해안도로가 발달됐다. 푸른 바다를 끼고 신창리 등대와 풍력발전기 사이로 펼쳐진 도로는 제주의 이국적인 풍경이다.

두모리의 마을 유래는 민간에서 '두모와 지미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한경면 두모리에서 고산리까지의 지형이 동물의 머리이고 구좌읍 종달리는 꼬리에 비유했다. 머리에는 털이 있기 때문에 '두모'라 했다.

판포리는 한림읍 월령리를 지나 한경면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지형이 판자와 같고 해변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예로 부터 '널개' '너른개'로 불렸으며 후에 한자표기로 '판포'로 개칭됐다.

한경면 지역의 해안은 도내 해안 중 화산섬 해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판포해안부터 고산1리까지 펼쳐진 해안은 용암류로 인한 해식애, 편평한 암반지대 등이 형성됐다.

▲ 절부암
물의 소중함 남달라

한경면은 도내에서 강수량은 매우 부족하고 상대습도는 매우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가뭄이 지속되는 시기가 많다. 그래서일까. 물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마을 지명은 개인적인 착각이 아니다.

조수리의 옛 지명인 '조호수' '조호물'은 '좋은 물'로, 청수리는 '맑고 깨끗한 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섯세미'라는 옛 지명을 가지고 있는 낙천리는 제주어 '새미'에서 유래돼 낙천이라는 지명이 '좋은 샘'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가뭄에도 샘물이 잘 나오는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인 용수리는 어느 지명보다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용당리에 있는 용못에서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는데 용못은 오래전부터 용이 살았다는 못으로 현재는 도로·집 등을 개발하면서 50m정도의 둘레만 남았다.

용수리의 옛 이름은 '지사개' '지세개'로 불렸다. '지사' '지세'는 기와의 제주어로 기와를 구웠던 곳이라는 설과 용수리 포구에 있는 바위들을 '검은 지세'와 연관지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용수리 포구에는 절부암이 있어 제주 고씨의 절개를 전하고 있다. 남편인 강사철이 고기잡이 갔다가 풍랑에 돌아오지 못하자 고씨 부인은 남편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곳이다.

현재 고씨 부부의 넋을 달래기 위해 절부암제가 음력 3월15일에 봉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용수리에는 마을의 재난을 피하고 해산물의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용수리 방사탑 1·2호가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잡는다. 김영모 기자
 

▲ 한경면 고산리 유적지
고산리 유적.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토기가 제주도에서 출토되면서 학계가 주목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에 위치한 고산리 유적은 광활한 평탄지대로 범위가 15만㎡에 달한다.
고산리 동굴의 발견과 더불어 화살촉·첨두기 등 다량의 사냥도구와 고산리식 토기라 불리는 원시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 등이 출토됐다.
특히 고산리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일본 승문시대의 사냥도구 양상과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제주와 일본 두 지역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 출토된 토기들은 기원전 1만~7000년경에 해당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제주시는 내년 1월까지 고산리 유적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시·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