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텐츠화…가치의 공유와 확장으로

[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6부 제주해녀 문화 목록 14. 해녀노래 3

2014-09-16     고 미 기자
▲ 한동안 그들이 부르는 노래만을 듣다가 지금은 잠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조선조 기록서 물질 능력 인정·자부심 등 서술
그들만의 노래에서 라틴 리듬·헌정 앨범 시도도
'지키는 것' 넘어 '유산'의미 확장에 초점 맞춰야

'잠녀'를 보는 시각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한 쪽에서는 제주의 강인함, 바다의 유연함을 상징한다며 추켜세우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나잠업을 고집하며 '바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융통성 없음을 지적한다. '어느 쪽이 맞냐'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모두가 다 '잠녀'다. 그들이 쏟아낸 사설과 그들을 보고 부른 노래가 다르듯이.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

잠녀의 기원이 무엇이냐에 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흔적은 고문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문자왕 13년(503)조의 기록을 시작으로 정사(正史)에서 잠녀는 '진주를 캐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잠수하는 여인'이 전복 같은 귀한 해산물을 진상했다는 기록으로 잠녀의 존재를 확인했다. 김상헌의 「남사록」(1602)이나 이원진의 「탐라지」(1653), 이증의 「남사일록」(1680),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2), 이원조의 「탐라록」(1843) 같은 사찬 읍지류에서는 포작과 연결하여 잠녀를 봤다.

개인 문집류는 조금 더 잠녀들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의 「제주풍토기」(1629)나 김춘택의 「북헌거사집」(1710), 정조의 「홍재전서」권 168(1799), 이학규의 「낙하생집」(1819), 이예연의 「탐라팔영」(1832) 등은 잠녀들의 고단한 삶을 옮겼다. 잠녀들을 빌어 당시 기득권 세력에 일침을 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당시 잠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등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신광수의 「석북집」(1765)에 실린 '잠녀가'다.

▲ 사우스카니발 '잠녀이야기'

석북 신광수는 조선 영조 때의 문인이다. 사실적인 필치로 당시 피폐한 농촌의 모습과 관리의 부정·횡포, 하층민의 고난을 많이 다뤘다. 또한 우리나라의 신화나 역사를 소재로 한 민요풍 한시도 많이 지어 한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제주에서의 40여일을 '탐라록'으로 정리하며 잠녀들의 생활을 시로 옮겼다. 조선의 큰 시인이 쓴 글에는 인간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잠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물질이 힘들고 고단한 일이라는 데는 모 구다 공감했다.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얻지 못한 채 애꿎은 숨비 소리만 풀어내는 사정은 마음이 아프다. 그 중에 그가 놓치지 않은 것은 보이는 것 이상의 잠녀다. 그의 시를 보면 당시 잠녀는 가계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으로 부모는 물론이고 결혼을 할 때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즐겼다. 중요하지만 간과됐던 것들이 붓 끝을 묶어 '기록'했다는 점은 분명 높이 살만하다.

'살아 숨쉬는' 존재 의미 부각

잠녀를 노래하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그들이 부르는 노래만을 듣다가 지금은 잠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세계적 아티스트 양방언과 제주 소설가 현기영의 콜라보로 요즘 잠녀들의 마음을 풀어낸 '신 해녀노래'도 그 중 하나다. 이 노래가 부르는 잠녀들의 가슴은 흔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공유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면 최근의 시도는 신선하면서도 보다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 해녀, 이름을 잇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상업적인 냄새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인정하는 것으로 무게감을 덜고 즐거워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앞서 '잠녀가'는 당시 글 좀 읽었다는 사람들에게나 통했다는 한계가 있었고, 그동안 이어졌던 '해녀노래'는 구전되다 보니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체계화하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는 것 중 하나가 제주 로컬 밴드인 사우스카니발이 내놓은 싱글 앨범 '좀녀이야기'다.

신나는 라틴 리듬을 탄 '좀녀'는 말 그대로 물질을 중심으로 한 잠녀들의 일상을 풀어낸다. '머정 좋았다(오늘 물건을 많이 잡았다)'는 표현이며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돌보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손자 용돈을 주려고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호칭이 바뀌면서도 물질을 하는 사연을 풀어낸다.

'어멍'(제주어로 어머니)은 그런 잠녀들의 삶을 이해한 뒤 느낀 반성을 담은 곳이다. 레게와 힙합이 섞인 '라가머핀' 장르의 곡에 제주 민요 '오돌또기'를 삽입해 가사의 느낌을 보다 구수하게 만들었다. 연필 대신 빗창과 호멩이를 쥘 수밖에 없는 사정이며, 숨 참고 들어간 바다 속에 남몰래 버리고 온 젊은 날의 꿈, 그 마음 그 사정을 알기에 거친 손이 까만 얼굴이, 물결 만큼 깊은 주름살이 예쁘다는 고백은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 행복하게 한다.

제주 잠녀를 위한 헌정 앨범도 나왔다. 비영리단체 제주문화컨텐츠연구소(소장 김근혜)가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으로 제작한 '해녀, 이름을 잇다'다. '익숙하지만 사라져 가는 존재'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도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다.

잠녀가 익숙한 제주출신 뮤지션도 있고 이번 앨범 작업으로 잠녀를 처음 만난 아티스트도 있지만 마냥 낭만적이거나 애달프지 않은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앨범의 수익금은 잠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잠녀음식 레시피 개발, 사진집, 스토리북, 단편영화 등) 제작비용으로 환원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단순히 지켜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직 살아있고 또 살아가야할 것인 만큼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를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다시 유산의 틀 안에 채워 넣는다는 뜻이다. '해녀 노래'의 의미를 확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미 기자 ※ 이 기획은 ㈔세계문화유산보존사업회와 함께 합니다. 
 

물질하는 딸을 두고 "의식 없다 자랑한다"

▲ 수헌 오장순 작 '잠녀가' 중 1수

 

석북 신광수 '잠녀가'
균형감있는 표현 눈길

석북 신광수는 몰락한 남인 계통에 속하여 초기에는 벼슬이 높지 못했고 문장도 현실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다. 53세 때 제주에 왔다가 풍랑으로 발이 묶이면서 제주의 일상을 기록(제주록)으로 남기게 된다.

그 과정에 '잠녀가'가 탄생했다. 조선 시대 큰 시인의 통찰력은 시를 해석하면서 분명해진다.

"탐라의 여자들은 물질을 잘해 열 살 때부터 앞 내에서 헤험치기를 배운다/이 지방 풍속은 혼인을 해도 물질하는 것을 중히 여기며 부모는 의식 걱정 없다고 (딸을) 자랑한다는 말을/나는 북쪽 사람이라 듣고 믿지 않았더니/이제 왕사가 되어 남쪽 땅에 와서 직접 보니/이월 개인 날에 성 동쪽 마을에서는/집집마다 여인들이 물가로 나간다/빗창 하나 망사리 하나 테왁 하나 소중이에 알몸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깊고 푸른 물에 의심 없이 바로 내려가 날리는 낙엽처럼 공중에 몸을 던지니…/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