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다
[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2. 맹아림- 곶자왈 맹아림 특성, 나무와 맹아력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서 움 틔워 숲 이뤄내
종가시·참가시나무 등 곶자왈내 생존 유리
다양한 환경 적응·경쟁하는 생장과정 중요
나무 생장에 가장 중요한 과정
가을이 오기 전 또다시 찾아온 재선충 피해로 제주 섬은 말라 죽은 소나무로 붉게 타오른다. 곶자왈도 피해갈 수는 없다.
재선충 방재 작업으로 곶자왈 곳곳에 굴삭기와 트럭이 들어서며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물론 소나무만 베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가시나무를 비롯해 숱한 나무가 작업과정에서 베어지고 수만년전 지내온 용암 바위도 파헤쳐진다.
언젠가 닥치는 죽음처럼 예견된 일이지만 막상 현실이 될 때 고통과 감정이 무뎌지지는 않다. 아프고 안타깝다.
재선충과 관련해 여러 대책이 나오지만 인간이 불러온 재난 앞에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오래전 베어지고 불탔던 곶자왈이 다시 숲을 이루듯 스스로 생명을 키워내길 기다릴 뿐이다.
곶자왈은 예나 지금이나 아픔이 있는 숲이다. 곶자왈을 찾은 적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었을 말이 '맹아림(萌芽林)'이다.
맹아는 싹 또는 움 '맹(萌)'과 싹 '아(芽)'가 합쳐진 말이니 맹아림은 나무가 베어진 뒤 그루터기에서 움이 자라나 숲을 이룬 곳이다.
산림청은 산림행정용어 순화한다며 맹아를 움으로 바꿔 부르라 하고 있으나 여전히 맹아란 말이 더 쓰이고 있다.
재선충 작업을 하면서 많이 듣고 있는 '고사목(枯死木)'도 죽은 나무로 고쳐 쓰도록 하고 있으나 정작 산림청이나 지자체에서도 여전히 고사목이라는 표현이 쓰고 있으니 한번 자리 잡은 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산림청이 제시한대로 맹아라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 보다는 움이란 우리말이 설명하고 이해하기 좋을 듯하다.
움이 트는 일은 나무가 생장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줄기가 잘려나가거나 바람영향 등으로 드러눕기라도 하면 나무는 생존을 위한 비상체제로 들어가 줄기나 뿌리에서 움을 틔우고 살아나야 한다.
곶자왈은 인위적으로 베어진 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자라 숲을 이룬 곳이다.
그것도 한 두 그루가 아니라 곶자왈 전체가 숯을 굽거나 목재를 얻기 위해 베어졌으니 곶자왈속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싹을 틔우고 줄기를 만드는데 들였을 것이다.
당연히 움을 잘 틔우고 잘 자라는 나무들이 생존에는 유리하다.
움을 잘 틔우는 곶자왈 나무들
곶자왈에서 움을 잘 틔우는 나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애써 고민할 필요 없이 여러 갈래로 줄기를 뻗으며 자란 나무들을 찾으면 될 듯싶다.
종가시나무나 때죽나무는 움트는 힘이 대단한 나무여서 줄기가 잘리면 밑동에서 수십개가 넘는 움이 자라난다. 그중 살아남은 것들이 줄기로 자라 한 나무가 숲을 이루듯 무성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어떤 나무는 줄기가 무려 50개를 넘는 것도 있으니 어쩌면 베어지는 고통이 나무를 더 풍성하고 강하게 했는지 모른다.
나무에게는 언제나 베어지고 쓰러질 위험이 있다. 그런 때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생존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무치고 움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다만 나무종류에 따라 움트는 능력이 차이를 보일 뿐이다.
종가시나무를 비롯해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등 참나무류는 움이 잘 트는 대표적 나무들로 곶자왈에서는 한번 잘린 뒤 여러 줄기로 자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밖에 단풍나무와 천선과나무, 구실잣밤나무, 꾸지뽕나무, 호랑가시나무도 움트는 힘이 강해 곶자왈에 살아남는다.
녹나무류도 움이 잘 트기는 하나 참나무류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진다. 종가시나무가 우점 하는 숲이라해도 자세히 보면 녹나무와 단풍나무, 조록나무, 구실잣밤나무처럼 여러 종류 나무들이 자리 잡고 숲을 이룬다.
움이 잘 자라지 않는 나무중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소나무다.
관심 있게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곶자왈에는 소나무를 보기 힘들고 또 소나무 가운데 종가시나무나 때죽나무처럼 여러 갈레 줄기를 가진 나무를 본적이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한번 베어지면 움이 잘 나지 않고 또 나더라도 다른 식물에 밀리며 결국에는 죽게 돼 곶자왈에서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마침 산양곶자왈에서 소나무와 종가시나무가 나란히 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지난 여름 태풍에 넘어진 듯하나 두 나무 운명은 서로 달랐다.
종가시나무는 쓰러진 뒤에도 줄기마다 싹이 자라나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소나무는 그대로 말라죽고 있었다.
나무마다 생육 특성이 다른 곶자왈속 나무들이 어떻게 환경에 대응하고 경쟁하며 생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나무처럼 움트는 힘이 약한 나무들은 나무가 잘린 뒤 생존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곶자왈에서 보기는 힘들다.
올벚나무나 산벚나무를 비롯한 벚나무나 자귀나무, 비자나무도 움트는 힘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돌이켜 보면 이런 나무들이 곶자왈에서 그리 흔하지 않고 여러 줄기로 자란 나무가 드문 걸 보면 움이 약한 나무들은 여러 차례 잘리는 과정에서 도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움을 잘 틔우는 것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해보이나 소나무처럼 움이 잘 나지 않는 나무가 경쟁에서 무조건 뒤쳐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는 두꺼운 껍질과 가느다란 잎이 있는데다 수많은 씨들이 거친 환경에서도 튼튼히 뿌리를 내리기에 소나무는 여전히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대표적 나무다.
이처럼 나무들은 서로 특성에 맞게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또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무엇 하나를 잘하고 못하고에 연연하기보다 스스로 환경에 맞게 대응하고 적응하며 특색 있게 살아가는 것이 나무 하나 하나에도 좋고 숲도 다양하고 건강하게 하는 일이다.
▲특별취재팀=김영헌 편집부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