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소리술' 명품주 가능성 열었다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17. 성읍민속마을 고소리술
품평회서 대상 차지…누룩 완성으로 '옛 맛' 재현
제주에는 '눈물 한 방울에 술 한방울'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술 제조과정의 어려움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1호인 성읍민속마을 고소리술도 마찬가지다. 오메기술을 만든 뒤 이를 발효시켜 밑술을 증류시킨 것이 고소리술이다. 한 잔의 고소리술이 완성되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됐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눈물'로 빚은 고소리술이 '세계적인 명주'로 인정받으며 전망이 밝은 제주 대표 전통주로도 주목받고 있다.
눈물과 정성으로 빚은 전통주
고소리술의 원료는 좁쌀이나 보리, 수수 등의 잡곡이었다. 쌀이 귀했던 제주 지역 특성이 반영된 지역 술인 셈이다.
고소리술은 제조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탁주인 오메기술을 한번더 발효시켜 만든 술로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삶은 오메기를 술독에 누룩과 적정량의 물을 섞어 보름 정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발효시킨다. 술독에 말갛게 고인 윗부분은 청주가 되고 나머지는 오메기술이다.
고소리술은 발효가 끝난 오메기술을 항아리에 놓고 그 위에 소주 증류기인 '고소리'를 올린 후 열을 가해 증발시켜 얻은 액체의 소주다. 60ℓ가량의 고소리 한 솥에 나오는 양은 1병에서 1병반 정도로 매우 적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무색이며 40도 내외의 독주다. 탁주와 달리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재료 손실부터 제조과정까지 매우 까다로웠다. 제례에 올리는 중요한 제물로 활용된 술인 만큼 정성을 담은 것이다.
술을 빚는 날은 매달 초하룻날이었다. 특히 10월초에 술을 빚어 겨우내 마시곤 했다. 술을 빚기 시작하기 전 보통 3일에서 최대 7일간의 제사를 지낸 다음 술을 빚기 시작했다.
곡식이나 누룩 손실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좋은 샘물과 그릇을 이용했으며 시기에 따라 다른 좁쌀 품종을 사용해 계절에 맞게 활용했다.
누룩은 꽃이 잘 피고 술맛이 좋다는 삼복에 맞춰 제조했다.
술을 빚기 전에도 △시신을 보고 난 후 술독을 열지 마라 △술을 빚을 때 말을 많이 하지 마라 △맛보고 남은 술을 다시 술독에 담지 마라 △마을의 포제용 술은 그 마을 고장에서 가장 덕망을 갖춘 남성이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마음으로 빚어야 한다 등의 금기사항이 있을 정도로 고소리술은 '신성함' 그 자체였다.
고소리술은 최근 프랑스 와인, 영국 위스키 등과 같은 세계적인 명품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우선 '맛'을 인정받았다. 지난달 28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개최한 '2014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이 증류식소주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번 수상은 2011년 대상 이후, 2012년 최우수상, 2013년 최우수상에 이른 영예다.
이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또 김을정 보유자(90)와 김희숙 전수교육조교(54)가 지난해 11월 주류면허와 올해 1월 주류영업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주류 판매에 돌입했다.
김희숙 전수교육조교는 "국내법상 주류면허가 없으면 술을 남에게 판매하거나 권하는 것이 힘들다"며 "이번 등록을 통해 본격적인 고소리술 알리기에 나설 예정"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또 최근 제주전통 방식의 '누룩'이 완성됨에 따라 '정통성'이 더욱 강해졌다.
김희숙 전수교육조교는 "20년 동안 제주전통 누룩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최근 완성돼 이를 활용한 '완벽한' 전통의 고소리술이 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누룩은 일본식 입국 등이 활용돼 왔다. 그러나 제주 전통의 누룩이 완성됨에 따라 '옛 맛' 그대로를 재현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상품화'를 위해 보유자 등이 노력 중이다.
김희숙 전수교육조교의 셋째 아들인 강한샘씨(27)의 도움을 얻어 온라인 블로그를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고소리술을 대중에 알리고 판매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김희숙 전수교육조교는 "고소리술 판매를 통해 큰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라져가는 전통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고소리술의 명맥을 잇기 위해 가장 힘든 점은 전승할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라며 "현재 저 혼자 고소리술을 제작하고 있으며, 그나마 막내아들이 도와줘 여기까지 할 수 있었다. 전수장학생 모집을 위해 도가 나서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하소연했다. 이소진 기자
무속·민간요법 등 활용도 높아 |
| 고소리술에 얽힌 이야기 △고소리술과 무속과의 관계는? 제주는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간신앙 '무속'이 생활 깊숙히 뿌리박혀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해 산림·내·연못·언덕·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라고 증언된 바 있을 정도다. 실제로 사계절 내내 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굿판을 벌였다. 이 때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이 사용됐다. 신에게 올리는 '강신잔(降神盞)'에 따랐던 것이다. 맑은 청주를 사용한 타 지역과 다른 모습이다. 제사상에도 고소리에서 고아 낸 소주를 올렸다. 그러나 주정을 원료로 만든 소주가 보편화되면서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고소리술은 약이다? 고소리술은 오메기술과 함께 제주의 민간요법제로 사용됐다. 한라산 자락에 자생하는 다양한 약용식물을 고소리술과 섞은 후 약효성분을 추출해 약으로 사용했다. 제주시에 따르면 고소리술이나 오메기술에 찐 고구마나 감자에 누룩을 혼합해 빚으면 타박상에 좋았다고 전해지며, 생약인 당귀와 대추와 섞으면 보신용으로 사용됐다. 새봄에 난 송순이나 쑥, 칡순으로 순을 빚은 '송갈쑥술'은 신경통이나 정력제로 음용됐다. △고소리술이 사라진 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1949년에 시행된 '주세법'에 의해 술을 빚는일이 불법화됐다. 제주도 마찬가지였다. 도내 각 가정에서 빚어오던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이 주세법이 시행된 이후 전승에 위기가 찾아왔다. 특히 해방이 된 이후에도 '주세법'이 '양곡관리법'으로 통용되면서 '밀주' 행위가 단속됐다. 이에 1960년대 후반까지 서귀포 중산간 부락에서 밀주했다. 물허벅에 담아 상가집이나 잔치집 등에 몰래 판매하며 암암리에 명맥을 유지해왔다. 고소리술은 고 고익만 선생(서귀포시 고산리)이 마지막 전수자였다. 이후 전통적인 제조방법이 사라졌으나 현재 제주도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김을정씨가 옛 전통방식을 재현하며 전승하고 있다. 이소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