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통·문화 공유할 매뉴얼 필요

[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6부 제주해녀 문화 목록 17.해녀축제 2

2014-11-11     고 미 기자
 
▲ 지난 해녀축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심사가 미뤄지며 제주의 후속 작업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아쉬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2년에 진행된 해녀축제(사진 왼쪽)와 일본 시라하마 아마마츠리
대축제 무색, 이벤트성 행사 등 정체성 흔들
'생업 중심 문화' 콘텐츠 활용때 균형 감각 요구
주민 주도 일본 '아마마츠리'서 정체성 배워야

어떤 행사건 '100% 만족'은 어렵다. 하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심사가 미뤄지며 제주의 후속 작업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지난 '해녀축제'에 대한 평가는 아쉬웠다. "잠녀문화는 있는데 잠녀가 없다"는 일침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잠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축제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소통 부족 반쪽 이벤트로
 
'역사'에서 출발한 해녀축제는 '흥행'으로 성질이 바뀐 것은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열렸다'는 의미에 '성황'이란 불편한 꼬리가 달린 것도 그 때였다. 해녀축제는 개최 시기 결정부터 고민이었다. 분명한 것은 잠녀들의 참여가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금채기 행사도 무관했지만 '물 때'처럼 작업 시기에 맞추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지며 공동어장을 해경 하는 시기인 10월로 맞췄다.
 
분명 고민은 있었지만 문제는 소통이 없었다는데서 시작됐다. 작업 시기를 감안한 결정이었다면 해녀축제에서의 '잠수굿'은 단순한 시연 이상이어야 한다. 본주인 잠녀들이 직접 굿에 참여하고 열명을 거는 의식으로 안전 조업을 기원하는 의식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축제 잠수굿은 형식만 갖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그나마 기본 프로그램에 포함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 만큼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슷한 시간 잠녀들은 제2행사장인 세화항 등에서 물질 경연 등으로 역량을 확인하거나 각 수협별로 배정된 간이천막에서 소라를 이용한 요리를 만드느라 바빴다.

심지어 해녀축제 일환으로 마련된 제주해녀국제학술대회에서 제주대학교사범대부속고등학교 학생들이 "민요경창대회 같은 '해녀 노래'경연을 한다면 잠녀문화 전파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또 진로교육 등에 현직 잠녀들이 참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잠녀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요구는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학술대회에서 유철인 ㈔제주학회 회장이 지적했던 것처럼 해녀축제 역시 '생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를 아이템으로 하는 만큼 경제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의 균형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해녀들의 노래 실력을 확인'하는 경연과 축하 무대, 축제 기간 동안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숫자가 전부다.
 
극대화 장치 고민해야
 
해녀축제가 아쉬운 것은 비교 대상인 일본 '아마마츠리'(해녀 축제)와의 확연한 성격차에 있다. 일본 아마 마츠리는 제주 해녀축제처럼 자치단체가 지원하기 보다는 지역주민이 과거로부터 이어온 전통 풍습에 가깝다.
 
일본 내 아마 집성촌인 해사촌(海士村)이 있는 이시가와현 와지마시에서는 매년 아마 마츠리(축제)가 열린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8월 중~하순 진행되는 와지마 오오마츠리의 시작 행사를 지칭한다. 와지마 오오마츠리는 얼굴에 붉은 색을 칠하고 붉은색과 푸른색 옷으로 여장을 한 젊은 무리가 신사를 짊어지고 해안으로부터 바다에 뛰어드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신을 바다에 보내는 '입수신사(入水神事)' 등은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 지역 대표 행사라는 자부심은 물론이고 행사 참가를 위해 도시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만큼 전통도 대단하다. 순수한 민(民)주도 축제기도 하다.
 
역시 아마의 고장인 치바현 시라하마시는 7월 20일(바다의 날)을 기준으로 이틀에 걸쳐 아마마츠리를 연다. 전통에 있어서 와지마의 것보다는 짧지만 이 행사 역시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관광협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꾸렸던 행사는 지금 지역 주민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밤축제로 자리를 잡은 것도 이색적이지만 별도 무대의 기획된 이벤트 대신 일상 생활 공간을 활용하는데다 100여명의 아마가 횃불을 들고 바다로 행진을 한 뒤 수영의식을 치르는 장관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로 관심을 끈다.
 
아마마츠리는 이밖에도 몇 개 더 있다. 아마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바다와 관련한 의식을 진행할 때 아마가 등장하는 것으로 마을에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형식을 취한다.
 
일본의 것과 비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해녀박물관이 제주잠녀문화의 정(靜)적 상징이라면 해녀축제는 동(動)적 상징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박물관을 통한 정보 습득은 일방향이지만 축제를 통한 공유는 양방향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잠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측면에서도 축제 메뉴얼의 전환이 필요하다. 잠녀의 존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전통의 다른 이름이다. 잠녀와 그들의 문화를 한 자리에서 같이 체험하고 나누는 것 만큼 축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치는 없다. 고 미 기자

 

▲ 1988년 88서울올림픽 성화가 제주에 도착했을 때 진행된 해녀놀이.

얼마 전 제주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에서 지역에 집중된 눈들에 각인된 것은 '제주 잠녀'였다. 개막식 내내 잠녀 문화를 통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생활, 정신이 표현했다. '왜 잠녀였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을 만큼 제주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의 위치를 확인했다.

앞서 1984년 전국소년체전 매스게임 역시 '해녀무'였다. 제79회 전국체전에서도 1040명의 여고생들이 제주 잠녀(숨비)로 분장하고 나와 '꿈꾸는 이어도'라는 내용의 매스게임을 연출했다.

'제주'를 대표해 타 지역이나 다른 나라 무대에 오르는 문화 콘텐츠 중 하나가 '해녀춤'과 '허벅춤'으로 대표되는 제주 전통 춤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공연 예술 작품은 1960년대 당시 제주여고 교사였던 고 송근우 선생(1930~1980)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시작은 1964년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작품 '잠녀놀이'였지만 1969년 제10회 대회에서 독자적으로 구성된 안무 작품이 올려졌다. 이후 1971년부터 약 10년간 전국 주요도시에서 236회 순회공연을 하는 등 제주 대표 민속춤으로 자리를 잡았다.

잠녀문화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춤이 만들어진 바탕에 잠녀가 지닌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일상 어업노동 도구인 태왁의 활용과 전통 양식의 의상을 착용하는 등 전통을 계승하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