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의 생명수 만들어내는 천연공장

[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7. 지하수와 곶자왈 보전

2014-12-02     김영헌·고경호 기자, 김효철 상임대표
습도·수분 공급 등 지하수 함양원으로 중요한 가치
다양한 지층·용암층 투수성 좋은 암석으로 구성
빗물 유출없이 오랜 기간 제주 지하수 형성에 영향
 
겨울철 신비한 매력 뿜어내
 
▲ 교래교 인근 천미천 상류지역으로 하부 용암류와 고토양층, 상부 용암류가 쌓여있는 지하지질구조를 보여준다. 빗물이 토양층과 하부 암반층을 뚫고 지하로 침투해 지하수를 만들고 있다.
늘 신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곶자왈이지만 그 기운을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철 곶자왈을 만나야한다.
 
온갖 생명이 떠난 뒤에도 겨울 곶자왈은 맨 마지막을 지키는 사랑처럼 가슴 시리게 살아있다. 아침까지 내린 비에 숲은 온통 습기를 머금은 채 파릇파릇한 이끼와 고사리들은 나무마저 포기한 푸른빛을 끝내 지키고 있다.
 
얼기설기 용암더미들로 이뤄진 곶자왈은 겨울비 치고는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언제나 그렇듯이 넘침이 없다.
 
비워야 채 울 수 있는 법이다. 한라산 자락을 따라 크고 작은 하천들이 바다를 향해 발달해 있지만 곶자왈에는 하천이 없음은 함몰지와 동굴, 암괴가 만들어낸 공극들이 비를 받아 안아 품고 있음을 말해준다.
 
곶자왈이 품은 많은 물은 땅위 생명들에게 중요한 습도와 수분을 공급할 뿐 아니라 오랜 세월을 지나며 지하 수백m 아래에 지하수를 만들어낸다. 지하수를 생명수라 부른다면 곶자왈은 생명수를 만드는 천연공장이다.
 
곶자왈이 지하수 함양원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바로 무수한 공극들이 발달한 암괴지대이자 화산암이기 때문이다. 화산암은 마그마가 지상으로 나와 굳는 과정에서 깨지면서 틈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투수성이 좋은 암석이다. 더욱이 곶자왈은 용암 함몰지와 투뮬러스, 소규모 동굴과 궤, 요철지형 등이 발달해 있어 빗물은 바로 아래로 흘러가 지하수로 일생을 살아간다.
 
용암류가 만들어낸 지질구조
 
눈에 보이지 않는 곶자왈 아래 지질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교래리 사거리에서 남조로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천미천 상류를 가로지르는 제4교래교를 만날 수 있다.
 
평범한 하천으로 보이지만 이곳은 제주도 지질특성을 잘 보여주는 멋지고 흥미 있는 지질박물관이다.
 
▲ 곶자왈 암반을 감싸며 자라는 나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부 지질구조가 깨져나간 뒤 그 아래 있던 고토양 층과 토양층 아래에 있는 또 다른 용암류가 겹겹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부용암류와 상부 용암류 사이 1m 남짓한 고토양 층은 점토질로 치밀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하부 용암이 분출한 뒤 꽤 오랜 세월 화산은 휴지기 상태였으며 그때 풍화와 퇴적 등으로 토양층이 만들어진 뒤 최종적으로 교래리를 뒤덮은 용암류가 흘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표 아래에는 고토양 층이나 퇴적층이 또 다른 용암류와 함께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땅속 수백m 지점에서 끌어올려 마시는 지하수는 돌 틈 사이로 스며든 물이 길게는 수십년 세월을 거쳐 토양층과 지질층을 뚫고 내려가 만들어진 것이다.
 
때마침 내린 비는 상부 용암층 틈을 따라 토양층과 하부 용암층으로 흘러내리고 있는데 꽤 많은 양이 흘렀는데도 바닥으로 떨어진 물은 한 모금 고이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다.

곶자왈이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
 
지하수 함양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모습이다. 빗물은 갈라진 용암 틈을 따라 지하로 침투한 뒤 일부는 혈관처럼 이어진 땅속 물길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흘러나와 용천수가 되기도 하고 일부는 토양층이나 치밀한 용암 구조를 만나 땅속에 갇힌 채 오랜 세월을 거쳐 지하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곶자왈도 지표 아래를 보면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여러 지층과 용암층이 겹겹이 쌓인 지질구조다.
 
이 때문에 곶자왈 지역 지질구조에 대한 일부 연구결과도 곶자왈이 다른 지역과 투수성 구조에 있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연구결과만 놓고 보면 투수성이 높아 지하수 함양에 중요하다는 곶자왈이 다른 지역과 지질적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곶자왈이 지하수에 미치는 중요성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곶자왈이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은 곶자왈 지질특성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곶자왈은 눈에 보이듯 크고 작은 암괴가 많아 비가 오면 지하로 스며들지만 바로 지하 수백m에 이르는 지하대수층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표 아래 존재하는 토양층과 치밀한 암반층이 그 이유다.
 
그렇다고 곶자왈이 다른 지역과 투수성 구조에 큰 차이가 없으며 따라서 지하수 함양에도 큰 영향이 없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곶자왈에서는 빗물이 지표를 따라 유출되지 않고 용암류 틈을 따라 지하로 스며들어 오랜 세월을 두고 지하수를 만들어내는 함양지다.
 
곶자왈이 오랜 세월 인내로 만들어낸 생명수가 제주 지하수라 하겠다. ▲특별취재팀=김영헌 편집부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관광·도시개발로 훼손 무방비

조례 불구 골프장 등 건설
개발 행위 제한 강화 필요

제주특별자치도는 보전지역관리에관한조례에 따라 투수성 지질구조인 곶자왈 지대를 지하수보전등급 2등급으로 정해 보전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수보전등급 2등급이란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보전은 뒷전인 상태다. 조례에는 2등급지에 대해서 폐수배출시설과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제한하고 있을 뿐 하수관거 설치 등을 조건으로 생활배출시설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결국 곶자왈에도 골프장이나 영어교육도시 등 관광시설이나 도시개발이 가능해 곶자왈 훼손에 무방비한 상태다.

이 때문에 사실상 곶자왈 보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곶자왈 지역 지하수보전등급 상향과 함께 개발행위 제한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등급지임에도 불구하고 골프장이나 각종 도시건설까지 가능한 개발행위 제한 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곶자왈내 함몰지나 궤, 요철지형 등 투수성 구조에 대한 특성을 조사해 지하수 함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1등급지로 상향하는 등 새로운 등급기준 마련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곶자왈 지질구조를 연구해온 송시태 박사는 "곶자왈내에서도 토양발달과 암괴 존재 규모, 클린커 발달 정도 등에 따라 투수성 지질구조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며 "숨골과 같은 기능을 하는 함몰지나 수직 동공, 암괴상이 뚜렷한 지질유형 등에 대해서는 1등급지로 상향해 보전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