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지배하는 사랑과 욕망의 허망함

16.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2014-12-14     강은미
▲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향락 문화에 젖은 미국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1920년대 향락에 젖은 미국 사회상·무너지는 '아메리칸 드림' 그린 작품
모두가 외면한 개츠비의 초라한 장례식은 물질로 맺어진 인간관계 단면
 
얼마전 EBS 프로그램에서 부자 1%가 세계 부의 15~18%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게 됐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치밀한 통계에 의해 제시되는 증거들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부가 부를 낳는다는 설은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가의 부를 축적하는데 기여할 뿐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겨우 먹고 살아가는 수준일 것이라는 말에 허망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축적한 부를 가진 자는 행복할까?'하는 물음과 더불어 언제까지 그 부는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코 행복하거나 영원히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불쑥 찾아온 것은 아마도 일찍이 읽은 「위대한 개츠비」 때문 일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의 미국사회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 사회상과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22년 뉴욕시 외곽에 있는 마을 롱아일랜드는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가 마주하고 있었다. 중서부 출신인 주인공 닉 캐러웨이는 증권회사에 취직해 웨스트에그에 낡은 집을 하나 얻어 살고 있었고 이웃에는 백만장자인 개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미국 중서부 노스다코타 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장교로 세계 제1차대전에 참가한 바 있고, 그 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한다. 
 
개츠비는 주말마다 자신의 초호화 저택으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대규모 파티를 연다. 닉 캐러웨이 또한 개츠비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개츠비에 관한 여러 소문을 듣는다. 옥스퍼드 출신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 스파이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밀주 판매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백만장자가 돼서는 잃어버린 옛사랑을 찾기 위해 그곳에 와 호화 별장을 지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사실 닉 캐러웨이의 사촌 누이인 데이지였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부와 안정된 삶이었다. 그래서 개츠비를 기다리지 않고 부유한 청년 톰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부가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톰은 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남자의 부인과 내연관계였고, 아이를 낳은 데이지는 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개츠비로 인해 잃어버렸던 삶의 생기를 되찾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부의 노예가 돼 있었고, 옛사랑에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사랑에 대한 진정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그것은 개츠비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낸 후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차의 핸들을 쥔 것은 데이지였고, 사고가 나자 개츠비는 그녀를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사고가 나자 톰과 데이지는 음모를 꾸미고 개츠비를 죽게 한 후 사라지고 만다. 
 
개츠비의 장례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닉은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개츠비의 죽음을 알리고 참석해주기를 부탁하였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생존해 있을 때 그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가 죽고 나자 아무런 효용가치도 못 느끼게 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원래 돈과 권력으로 맺어진 관계는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점을 명심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점을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다. 
(중략)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 꿈이 이미 자신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어떤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김욱동 역 「위대한 개츠비」 일부
 
작품의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다. '개츠비의 무엇이 위대하단 말인가'하고 한참 생각했다. 옛사랑을 잊지 못해 그녀가 사는 마을 언덕에 살면서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 사고를 낸 옛 애인의 안전을 위해서 밤새 달빛 아래 서성이던 한 남자, 결국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싯귀처럼 사랑했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끝까지 사랑을 지켜주려 했으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순정만큼은 충분히 아름답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보여준 인간 군상들에 대해 생각한다. 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 급작스럽게 부를 거머쥐게 된 신흥 졸부들은 정신과 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환락의 세계에 빠져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이 시대를 일컫는 표현 중에 '재즈 시대'라는 말도 있듯이 걸핏하면 가든파티를 열어 춤과 노래에 젖거나 도박판을 벌이고, 보트를 사서 낚시를 즐기는 등 향락 문화에 젖은 일상이었다. 도덕적 타락과 부패, 무책임성은 파티장에 모여든 모든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었다.
 
개츠비 또한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사랑의 회복'에 있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부는 밀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이었고, 그가 찾는 사랑 또한 이미 다른 남자의 사람이 된 여자였다.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찾는 그의 사랑 데이지는 그가 그렇게 찾아 헤맬 만큼 순수성을 지녔거나 자기 삶의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사고가 나자 그녀는 남편과 음모를 꾸며 도망가기에 바빴고, 그의 무덤에 꽃 한송이 놓지 않았다. 그리고 개츠비가 죽자 어느 한사람 그의 무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물질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얼마나 허망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돈 때문에 사랑이 떠났고, 돈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의 생전에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의리, 우정, 나눔, 사랑, 그 모든 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죽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은 명료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사랑을 되찾기 위한 욕망마저도 불의와 부도덕으로 축적된 돈으로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부는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