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의 인내·고통, 예술로 승화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20.무형문화재 제17호 진사대소리
애월읍서 가장 많이 불러… 진사대 예술적 가치 높아 
▲ '진사대'는 제주민요 중 가장 많이 불리며 '제주 민요의 꽃'이라고 불렀다. 특히 농사일과 시집살이 등을 담당해야 했던 제주 여성 삶의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사진은 탐라문화제 진사제 소리 공연.
진선희 보유자 전승 "문화재 활용 무대 부족 아쉬워"
제주학연구센터 민요사전 발간 예정 "전승한계 극복"
김매는 소리인 '진사대(느진소리)'는 제주민요의 '꽃'이라 불린다. 가장 많이 불렸기 때문이다. 척박한 토양과 날씨를 가진 제주에서 '밭매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다. 특히 김매는 일은 대개 여성들의 집단 야외 노동으로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진사대'는 제주 여성의 인내와 끈기, 고통을 대표한다.
△제주 여성 삶의 정서 담긴 노래
"어기여라 사대로다/검질짓고 골너름밧듸/어기여라 사대로다/소리노라 우기멍가게/어기여라 사대로다/앞멍에랑 들어나오라/어기여라 사대로다/뒷멍에랑 나고나가라/어기여라 사대로다/지세어멍광 오름에돌은/어기여라 사대로다/둥글당도 사를매난다"
도지정 문형문화재로 지정된 진선희 보유자(70)가 사는 애월읍 납읍리에서 불리던 진사대 소리다.
애월읍 일대는 토질이 졸고 경작지가 넓어서 진사대 소리가 가장 잘 발달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특히 애월읍 일대 진사대 소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선율이 잘 발달해 예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덕분에 많은 지역에서 불려왔던 '검질매는 소리'(김매는 소리, 조른 사대, 진사대, 홍애기, 아웨기, 상사소리) 가운데 '진사대 소리'가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특히 진사대는 제주 여성 삶의 정서가 잘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 구절도 넓은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고된 작업에 대한 설명과 "그럼에도 살 도리가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담겼다.
"놈의 첩광 소낭긔보름/소리만낫주 아무 소용없다/질곳집이 도실낭싱겅/씨냐도냐 맛볼인서도/성님성님 소춘성님/시집살이 어떵홉데가/곳도말고 이르도말라/고추보다도 더매와라"
이 구절에는 시집살이의 설움이 담겨 있다. 시집살이를 두고 '말도 마라. 고추보다 더 맵다'는 구절은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노래는 다양한 삶의 애환을 담아 여성들의 정서를 풀었던 셈이다. 고단한 삶에 대한 신세 한탄을 노랫가락에 실어 '설움'을 잊었다.
△한평생 제주민요 애정 품어
진선희 보유자는 2005년 제주도무형문화제 제17호로 지정됐다.
진 보유자는 장전리 명창이었던 부친 진성효와 어머니 강신생의 딸로 태어났다. 9살부터 부모를 따라 '아기업게'로 밭에 나가서 할머니가 부르는 김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직접 수눌음에 참가해 진사대 시창을 시작한 것은 10살이었다. 15살이 된 후에는 밭벼와 조받의 김매기, 콩밭을 매면서 진사대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옆 밭의 농사꾼들의 김매기 소리와 경쟁을 할 정도였다.
민요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밭 밟는소리'와 '사대 소리' 등의
제주 농요를 불러서 칭찬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제주민요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이후 "제주민의 삶이 담긴 노래인 토속민요를 살리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어버이날 행사, 경로잔치 행사 등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불러왔다.
2004년에는 탐라문화제에서 '귀리 겉보리 농사일 소리'에 참여해 민속경연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일흔이 된 현재도 진선희 보유자의 '열정'은 여전하다. 보유자의 자택에 연습실을 만들고 전수장학생들과 매 주마다 전승 수업을 펼쳐오고 있다.
진선희 보유자는 "좁은 공간이지만 전수장학생들의 애정과 열정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며 "이들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행사가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라고 전했다.
△소리의 한계…기록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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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사대 소리 보유자 등이 모인 가운데, 제주도 문화재위원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
진사대 소리와 같은 무형문화재 전승의 어려움은 단연 '사람'이다.
진사대 소리의 경우 소리꾼이 제한적이다. 전선희 보유자를 비롯해 강순아 전수교육조교, 양인생·장복진·진공옥·강계열 등의 전수장학생이 고작이다.
진사대 소리는 목청을 길게 뽑으면서 느린 속도로 부르기 때문에 긴 호흡 등의 뛰어난 가창력을 요구한다. 또 20여명의 아낙들이 밭일하며 주고받는 형식으로, 소리꾼들의 공감대가 필수다. 아무나 부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란 뜻이다.
다행히 이들의 목소리와 자료를 종합하고 전승하기 위한 '소리 백과사전'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는 지난 8월부터 「제주민요사전」 편찬 사업을 돌입, 소리 전승의 한계에 도전했다.
현재 제주학연구센터는 자료 500여개를 모았고, 가사책을 발간했다. 오는 1월초쯤에는 사전 작업의 일부가 공개될 예정이다.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연구원은 "문화재청 지정 대한민국 무형문화유산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록을 목표로 추진 중"이라며 "책을 통해 구전되는 모든 민요를 총망라해 전통 전승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소진 기자
"문화유산 활용위해 '현장·인프라' 필요" 강조
"보유자와 전수장학생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중심으로 무형문화재 전승이 잘 이뤄지고 있었다"
양영자 제주도 문화재 전문위원은 지난 3일부터 20일까지 제주 무형문화재 실태조사를 다녀온 후, '진사대소리'에 대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양 위원은 "일부 무형 문화재와 달리 진선희 보유자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전승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며 "덕분에 전수장학생들의 소리도 많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최근 진사대소리 연습 장소가 마을회관에서 진선희 보유자의 자택으로 바뀌었다. 자유로운 연습이 가능해진 것이다.
요즘 감귤 수확철이라 연습이 뜸해졌지만 보통 주 2회의 강도 높은 연습을 한다.
더불어 행정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공연 환경과 기반이 갖춰질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양 위원은 "무형문화재를 문화유산 활용하려면 '현장'이 있어야 한다"며 "소리를 발표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사대소리의 경우, 연중 노래 시연을 하는 행사가 마을에서 열리는 브로콜리 축제와 탐라문화제. 들불출제 밖에 없다.
양 위원은 "공연장 등과 같은 시설이 아닌,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 구성이 우선"이라며 "대중들에게 무형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행정이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양영자 위원은 저서 「제주민요의 배경론적 연구」와 공저 「제주여성전승문화」 「제주도세시풍속 」 「한국민요학」 등을 발간했다. 이소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