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줄씨줄]유리지갑

2015-01-28     김영헌 기자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공은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가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저공을 따랐고 마음까지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를 대는 일이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저공은 원숭이에게 나누어 줄 먹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그는 우선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화를 냈다. '아침에 도토리 세 개로는 배가 고프다'는 불만임을 안 저공은 '됐다' 싶어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朝四暮三)씩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조삼모사'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 연말정산을 놓고 말이 많다. 특히 평소 '유리지갑'으로 비유되는 샐러리맨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연말정산을 정부가 '적게 걷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하지만 직장인들은 '많이 걷고, 적게 돌려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세금폭탄' 될 수도 있어 연말정산 논란이 일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개선 정책을 발표했다. 공제항목 및 공제수준 조정, 자녀수와 노후대비 등을 감안한 근로소득세 세제개편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책 발표와 동시에 정부의 보완 대책이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근로자 입장에선 간이세액표 조정을 하더라도 돌려받는 금액에 차이가 없고, 세금 부담도 변함이 없다는 지적이다.

'증세'는 없다던 박근혜 정부. 하지만 올해 초 담배값 폭등부터 연말정산 세금폭탄에 이어 곧 있을 건강보험료 인상까지 사실상 증세가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유리지갑'에서 세금은  꼬박꼬박 빼나가면서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들의 지갑은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있는 한심한 정부. 대통령이 국민들을 '원숭이'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