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제주 어업노동요 문화… 계승 의지 다져야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24.무형문화재 '멸치후리는 노래'
탐라문화제 등 시연 행사서 보는 '희귀농요' 전락
보유자 공석 16년째… 소극적 계승 활동으로 우려
어부가 밤새 잡아온 멸치를 해안가에 끌어 내리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모래밭에서 멸치가 달린 그물을 후렸다. 이러한 공동 작업 속에서 제주인들은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만선을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현재 멸치 후리는 작업은 거의 사라지고 노래의 전통을 이은 보유자의 자리도 오랫동안 비여있어 전승의 위기가 찾아왔다.
△방동선 등장으로 소리 사라져
제주는 사면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농업노동요에 비해 수산노동요는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어로작업의 규모가 작고 어로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탓에 대부분 반농반어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멸치 후리는 노래'는 남성이 부르던 '네 젓는 소리'와 여성이 부르던 '해녀노래'와 달리 남녀가 함께 부르는 노래로 발달해 왔다.
해안가 마을에 멸치 떼가 들어오면 후리그물(지인망)로 멸치를 후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해안가 백사장이 질펀하게 깔린 김녕, 월정, 함덕, 곽지, 협재, 화순, 표선, 신양, 이호, 삼양 해수욕장 등지에서 멸치잡이가 성행했다. 이 가운데 구좌읍 김녕리에서 불려지는 '멸치 후리는 노래'가 1986년 4월10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됐다.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잡아당겨 멸치를 후릴 때 동작을 맞추고 힘을 돋우기 위해 불렀다. 그물을 잡아당기는 동작과 함께 부르기 때문에 가락이 일정하고 흥겹다.
이러한 어업노동은 큰 그물을 동원하고 떼나 몇 척의 배를 동원해야 하므로 집단어업의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주민들은 30~40가구 단위로 계 '그물접'을 조직해 공동작업했다.
제주어로 멸치는 '멜'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멜 후리는 소리' '멜 후림 소리'라고도 불렸다.
노래는 1960년대까지 성행했으나, 1970년대 방동선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현재 탐라문화제 등 문화축제에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해졌다.
△유흥적 가락·구체적 사설 특징
제주의 '멸치 후리는 노래' 외에도 부산의 '다대포 후리소리' 전남의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 강원의 '멸치 후리는 소리' 등이 지역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
제주 노래는 다른 지역과 달리 가락과 후렴 부분이 다르다.
다른 지역의 사설은 그물을 당길 때의 발흥이나 조흥을 위한 외침이나 단편적인 내용의 작업 실태에 그치지만 제주의 경우 멸치 후리는 과정이 구체적이다.
'멸치 후리는 노래'의 한 구절을 보면 "어엉 허이야 뒤에야/당성에서 멜밭을 보고/망선에서 후림을 노라/닷배에서 진 줴왕" 등의 구절은 그물을 놓고 멸치를 몰아가는 작업을 상세히 담았다.
또 노래는 거친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담아 노래가 힘차고 역동적이다. 신세타령을 하는 개인적 사설과 만선의 기쁨 등을 유흥적 가락으로 뽑아내기도 한다.
"여기어뒤여 방에여/풍년왓구나 풍년왓구나/농궤이와당에 돈풍년왔구나/산에 가난 산신대왕/물에가난 용궁에서낭" 등의 구절에서 신명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노래를 부르는 속도가 빠르다. 사설 구조는 2음보이며 박자는 8분의 6박자다.
대체로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며, 그물을 당기는 동작과 연결돼 있어 상황에 따라 박자가 변화하기도 한다.
또 다른 지역의 멸치 후리는 소리는 배 내리는 소리, 노젓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고기 푸는 소리 등 작업 순서에 따라 노래가 달라지지만, 제주의 경우 그물을 당길 때만 부른다.
△보유자 16년째 공석…소극적 활동 걸림돌
'멸치 후리는 노래'의 보유자 자리가 16년째 공석으로 남아있다.
1986년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보유자는 고 김경생씨였다. 김씨가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적극적인 전수 활동이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탐라문화제 공개행사를 주도하고 매주 주말마다 전수교육을 실시하는 등 누구보다 저변확대에 기여해 왔다.
현재 김씨의 장녀 한상복씨(73)가 전수교육조교를, 정수장학생은 이춘복씨(63)씨가 맡아 활동을 하고 있다.
단 2명으로 무형문화재를 잇기에는 여러가지 상황이나 여건이 좋지 않다. 이에 한씨는 지난해 12월 전수학생 5명에 대한 전수장학생 지정 심사 신청, 이달중 심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승에 대한 위기는 여전하다. 활동이 이전보다 적극적이지 못한 탓에 주변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보유자 지정이 늦어지면서 전수자들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라며 "제주 고유의 전통문화인 만큼 소중히 다루고 계승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행정에서도 조력자의 역할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소진 기자
구술. 영상자료 활용 정리
멸치 후리는 소리 등 제주민요 사전 편찬 작업중등구술 등 520편 모아…무형문화유산 목록 신청도
제주민요의 가치를 국내·외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사업이 시작됐다.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는 최근 제주민요 구술(음성) 자료와 민속현장과 삶이 담긴 영상자료 등 520여편을 모으며, 본격적인 「제주민요사전」 편찬 사업의 진도를 내고 있다.
책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된 제주민요(오돌또기, 산천초목, 봉지가, 맷돌노래)를 비롯해 도지정문화재인 멸치 후리는 노래, 방앗돌 굴리는 노래, 제주 농요, 진사대 소리, 귀리 겉보리 농사일 소리, 제주시 창민요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이번 구술·영상 수집 과정에서 700여년전 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 '탐라요' 등 희소성 있는 제주민요가 다수 발견돼 사전 편찬 작업의 당위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제주민요사전」은 농업, 어업노동요, 장례의식요, 창민요 등 모든 유형의 노래사설 뿐만 아니라 악보를 붙여서 음악적인 활용도도 높힌다는 계획이다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현재 수집된 구술·영상 자료들의 제주어 어휘를 정리하고 있다"며 "이미 사라져버린 관용구와 관용절 등 노래 가사에 나타나는 공식구를 통해 제주어의 구문을 되살려 제주어 전승보전에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전 편찬 작업을 마친 후에는 제주민요를 문화재청 지정 '대한민국 무형문화유산 국가목록'으로 신청하는 등의 대외적 노력도 기울일 예정이다.
좌 전문연구위원은 "사전 편찬 사업으로 통해 제주민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계기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