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살기좋은 마을…해군기지 생채기

[제주마을의 유래를 찾아서]29. 대천동

2015-05-03     김지석 기자
▲ 강정천과 악근천에서 사시사철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대천동은 시설감귤과 화훼 등 시설농업이 발달했고 신시가지가 조성된 복합형 농촌주거지역이다. 사진은 하루에 두번 썰물 때마다 걸어서 들어갈 수 있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서건도
풍부한 수량으로 쌀농사 가능한 복합형 농촌주거지역
8년 넘은 주민갈등 대책 시급…수익사업 확대도 과제
 
서귀포시민의 식수로 사용되는 청정 하천인 강정천과 악근천에서 사시사철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대천동은 시설감귤과 화훼 등 시설농업이 발달했고 신시가지가 조성된 복합형 농촌주거지역이다. 
 
강정마을과 도순마을, 월평마을, 용흥·염돈·월산마을을 통합해 만든 대천동의 대천(大川)은 강정천의 '큰내'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물의 고장' 강정마을
 
강정마을은 서귀포시 신시가지 남서쪽 해안 일대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의 고장이다.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마을 여기저기에서 솟는다. 강정마을에는 '할망물', '안강정물', '앞물', '함백이물', '버드낭샘', '체물', '동해물' 등 이름 없는 용천수까지 수많은 샘이 솟아오른다.
 
또한 풍부한 수량으로 쌀농사가 가능했으며, 쌀이 귀했던 제주도에서 찹쌀까지 생산할 수 있었다. 지금은 화훼와 시설 재배 감귤로 농사 방법이 바뀌면서 논농사를 짓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강정마을은 '제일강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 명칭은 물이 많고, 농사짓기에 알맞은 자연환경을 골고루 갖춰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라 불리어졌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이 건설되면서 지역주민 사이에서 나타난 찬·반 갈등이 8년째 이어지면서 마을에 큰 생채기를 내고 있다. 
 
돌과 소나무가 많았던 도순마을
 
▲ 큰 비가 내릴 때 자태를 드러내는 엉또폭포.
도순마을은 서귀포시 신시가지 서쪽에 있는 중산간 마을로 1402년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1416년 삼현 통치 시기에는 대정현에 속하는 석송리였다. 마을 이름을 석송리라 한 것은 마을 인근에 돌더미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이후 '돌송이' 또는 '돌숭이'로 불리었는데 이 지역에 '돌로 된 송이'가 많다는 데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영남마을에서 발원해 강정마을에 이르러 바다로 흘러드는 도순천이 있으며, 서남족으로는 넓은 농경지가, 북쪽에는 광활한 목장이 있다
 
특히 도순천에는 '통물', '선냇또고븐절', '당물' 등 샘물이 세군데 있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샘물은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1960년대 이후 가정용 수도가 공급되면서 지금은 식수로 이용되지 않고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성을 쌓아 제주4·3 피해 줄인 월평마을
 
월평마을은 강정동 서쪽 해안 일대에 형성된 마을로 이곳의 지형이 반달 형치로 생겼다는 데서 월평마을이라고 전해온다. 
 
마을의 구성원들이 하원, 도순에서부터 이주했을 뿐아니라 강정과는 유사한 생계방식을 근거로 해 일정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 형성 이후 상당기간 동안 독립된 마을로 인정되지 못하고 도순의 일부로 간주됐다가 오늘날과 같은 마을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제주4·3 이후다.
 
월평마을은 제주4·3으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가며 원형으로 성을 쌓아 산사람들로부터 침입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 주위의 소규모 마을들이 성안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월평마을은 비로소 현재와 같은 규모와 형태를 갖추게 됐다.
 
제주 4·3 이후 마을 재건한 용흥·염돈·월산마을
 
용흥마을은 '천외리(내팥)'로 강정리에 포함됐다가 1918년에 분구해 강정2구로 행정구역이 정해졌다. 1928년 마을이름을 신흥리로 개칭했지만 제주 4·3의 여파로 강정리 등에 피난 분산됐다가 마을유지들이 화합하고 행정당국의 지원을 받아 마을이 재건됐다. 
 
이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염돈마을은 법환마을 앞에 범섬이 있어 법환마을이 번창함으로 호랑이를 일길 수 있는 것은 사자뿐이라 해 사돈리라고도 했다. 
 
마을 중심에는 운랑천이 있어 이 마을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제주4·3 이후 용흥마을 쪽으로 재건, 이주했으나 최근 다시 과수원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월산마을은 마을 경내가 온통 수림지대였지만 종복이란 사람이 개간해 옥토를 이루었다고 해 종복이왓이라고도 한다. 
 
마을안길 확장 등 교통 불편 해소 방안 필요
 
대천동은 정부가 강정마을에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찬·반으로 나뉘어 지역 주민 간 갈등이 8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갈등 봉합 기미는 좀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좁은 마을 안길로 교통사정이 불편해 도로 확장과 함께 도시계획도로 조성 사업은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특히 주민자치프로그램 활성화 대책과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효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마을 수익사업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이태정 대천동주민자치위원장

이태정 대천동주민자치위원장은 "해군기지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찬·반 주민 간 이견은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갈등 봉합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마을 안길이 좁아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마을의 중산간도로와 일주도로를 연결하는 도로 개설과 함께 마을 안길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해군기지 등 복합적인 문제로 주민자치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며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마을마다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과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융화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특히 마을 수익사업이 확대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지역 주민과 힘을 모아 주민 모두가 행복한 대천동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