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목장 보존으로 마을 가치를 키운다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28. 가시리공동목장

2015-05-04     김봉철 기자

▲ 가시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목축문화를 간직하고 있고 특히 가시리공동목장은 다양한 목축시설과 목축문화들이 보존되고 있다. 사진은 부구리 구제장과 조랑말 박물관. 김봉철 기자
방에 놓기·진드기 구제 등 제주지역 목축문화 집적
개발범위 넘어 '전통지키기'…마을문화 보존 '총력'
유채꽃길 '마로', 조랑말콘텐츠로 활용사업 진행 눈길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목장사과 목축문화사가 생생하게 전개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다양한 목축시설과 목축문화들이 공존해 가시리 마을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가시리 마을은 제주도 목축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가시리 목축민이 만든 목축문화들

가시리 마을 주민들은 목장지대에 펼쳐진 초원을 이용해 윤환방목, 방앳불 놓기, 낙인하기 등의 목축문화를 만들었다.

윤환방목은 공동목장을 몇 개의 목구로 구분한 다음 초생상태에 따라 차례로 목구를 이동하며 방목하는 방법으로, 가축의 종류 및 사육 수에 따라 목구의 수와 넓이, 방목일수를 결정해 이뤄진다. 한 구역에서 풀을 다 뜯어먹으면 다른 구역으로 우마를 이동시키는 형태로, 넓은 공동목장을 몇 개의 소목장(암소 방목장, 숫소 방목장, 말 방목장, 송아지 방목장 등)으로 구획해 이뤄졌다.

낙인은 많은 마소들이 방목하는 과정에서 자연 재해성 기현상이 발생해 잃어버렸을 때 또는 주변 농경지의 농작물에 피해를 입혀 분쟁이 일어났을 때 마소의 마을별, 개인별 소유관계를 확실히 밝혀주기 위해 행해졌다.

방앳불 놓기는 목야지에서 공동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불을 놓아 잡초나 초지를 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마소를 들에 방목해 기르는 제주도에서는 방애 놓기야 말로 초지를 관리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방애는 이른 봄 들판에 쌓였던 눈이 녹아 마른 풀이 드러나는 음력 2월이나 3월 초순에 이뤄졌다. 새 풀이 돋아나면 마소를 방목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해야 했다. '방애'를 하면 진드기 등 각종 해충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새 풀이 잘 돋아난다.

이러한 방애는 마소를 방목하기 전에 해마다 되풀이되는 중요한 연중행사의 하나이자, 제주도의 생태환경을 잘 드러내는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내 대표적 목장지대인 가시리에서는 이같은 목축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마을 북쪽에 펼쳐진 광활한 초지대는 목축을 가시리 마을의 대표 산업으로 부각시키기에 충분했고, 번널오름, 따라비오름, 대록산과 소록산은 방목우마를 관찰하는 '망동산'인 동시에 여름철 더위에 지친 소들의 방목지로 적합했다.

목축문화 연계 관광콘텐츠 개발 활발

▲ 녹산로 인근에 설치된 말 조형물.
축산업의 쇠퇴로 제주도내 대부분의 마을공동목장들에서 마을 주민들의 목축 활동은 줄어들고 있다. 일부 축산농가가 목장 일정구역을 임대해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산업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개발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낳고, 실제로 많은 공동목장이 매각됐거나 협상 진행중인 실정이다.

하지만 가시리 공동목장의 경우 목장 매각이 야기할 마을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환경파괴를 예측해 광활한 공동목장 토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특히 일부 개발은 하되, 최소면적으로 제한하고, 콘텐츠 역시 목축유산과 연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가시리는 이같은 문화들이 사라지도록 방치하지 않고 계승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말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조성된 조랑말체험공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전시와 승마는 물론 이주민들로 구성된 학예사와 함께하는 가이드투어, '게르' 게스트하우스, 야외 말 작품 전시 등 말과의 교감이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방문객도 지난해 10만명에 달했고, 여기에 다해 올해부터는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고민과 함께 이익의 일부를 마을에도 배분할 계획이다.

지난 2013년부터는  제주 고유의 전통문화자원 '말'을 알리기 위한 '가시리 조랑말체험축제'도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열고 있다.

화려한 개막 퍼레이드와 축하공연, 저소득·다문화가정 어린이 무료 승마체험에 세계적 화가들이 말을 소재로 그린 명화 전시회와 깃발전 등 기획전시를 시작으로 갑마장길 걷기 대회, 죽마경주대회, 미니마차 끌기 대회 등 말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가 한자리에 펼쳐진다.

2013년부터 본격운영되기 시작한 풍력발전사업 수익금도 전액 마을회로 귀속시켜 향후 리립양로원 등 복지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공동목장 초지를 활용한 친환경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예전 목장 내부를 가로지르는 목로였던 '녹산로' 주변 16만㎡에 유채를 심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채꽃길'로 거듭났고, 이제 이를 활용한 마로가 확대 개발된다.

마로는 갑마장길과 유채꽃길을 포함한 목장 외곽을 휴식과 힐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승마 관광객 유치와 함께 장기적으로 지구력 승마대회 등 굵직한 대회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둔다는 복안이다.

제주목장사의 본향 가시리 마을이 개발의 위기를 넘어 역사적 전통을 어떻게 살려나갈 지 기대가 모아진다. 김봉철 기자

이주민 홍정표·허연실 부부

"귀촌에 뜻이 있어 여러 곳을 여행해 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는데, 가시리는 처음 본 순간부터 눈에 확 들어왔어요.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어요"

1971년생 동갑내기 홍정표·허연실 부부(사진)는 지난해 4월 우연히 방문한 가시리 목장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이곳에 정착했다.

그중에서도 조랑말체험공원과 인연이 닿아 목장 내부에 베이커리 카페 '시간 더하기'를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빵을 숙성시키는데 걸리는 오랜 시간과 마을 이름 '가시'(加時)에서 따온 카페에서는 제주감귤당근주스와 제주밀 화덕피자, 초코고래빵, 제주키위잼 등 제주의 맛을 전하는데 열심이다.

서울 목동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남편과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귀촌을 결심한데는 오름과 목장이 드넓게 펼쳐진 목가적 정경과 후한 인심이 결정적이었다.

또 예비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조랑말체험공원에 참여하는 이주민들이 많았던 점도 도움이 됐다. 이주민끼리 서로 의지가 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생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은 가시리목장 인근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커피숍, 박물관 학예사 등으로 목장의 변신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예, 건축, 미술 등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며 마을에 문화적 향기를 더해주고 있다.

"빵 하나를 만들어도 효모 발효를 위해 일반 제과점보다 시간이 5배는 걸려요. 그래도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기보다 정직하게 장사하고, 오랜 숙성시간처럼 좋은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쌓아나가고 싶어요"

여유와 활력이 넘치는 가시리 마을 문화의 영향일까, 부부의 꿈도 소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