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의 '삶' 투영으로 생명 가치 완성
■ 곶자왈의 '고유 이름'을 찾아서-프롤로그
2015-06-01 한 권·고경호 기자
「탐라지」「한라장촉」 등 고문헌·고지도에 표기
당시 인식 정도 및 위치 등 알수있는 '중요 단서'
현재는 행정구역으로 왜곡…'정확한 복원' 필요
제민일보는 도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지난 2002년 '곶자왈 대탐사' 기획취재를 통해 버려진 땅으로 치부됐던 곶자왈을 제주의 허파로 각인시켰다. 이후 2007년까지 대장정은 곶자왈의 숨겨진 생태와 지형·지질을 탐사하고 보전방안을 살피며 '환경 자산'으로 위치를 공고히 했다. 곶자왈은 제주 생명의 원천이다. 그 의미를 담은 '고유 지명'의 재발견은 행정구역에 밀려 사라졌던 곶자왈의 가치와 그 안에 공존했던 제주사람들의 삶을 투영하는 매개로 가치가 있다.
△고문헌에 기록된 '수'(藪)
고문헌에 기록된 곶자왈의 지명은 '수'(藪)로 표기돼 있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의 '곶자왈의 역사문화자원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행 외)에는 이마수(고(그)막곶)·말응내수(멍내곶)·사야수(빗드르곶)·궁괘로개수(활궤로개곶)·복현수(짐걸이곶)·말질가리수(맛가리곶)·대교수(한도(아래아)리곶) 등 모두 11개의 수(藪)가 나타난다.
최초의 사찬 지리지인 「탐라지」(이원진·1653)에는 김녕수(김녕곶)·괴질평수(궷드르곶)·개리사수(개(리)모살곶)·대수(한곶) 등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4개의 지명만 공통되고 암수(어둔곶)·점목수(초(아래아)남곶)·나수(구제기곶)·소근수(박은곶)·판교수(널도(아래아)리곶)·목교수(남도(아래아)리곶) 등 6개가 새롭게 등장했다.
「남환박물」(이형상·1704)과 「탐라지초본」(이원조·19c 중반), 「증보탐라지」(담수계·1954)에도 일부 한자 표기만 다를 뿐 「탐라지」에 등장하는 10개의 곶자왈 지명이 확인되고 있다.
고문헌의 경우 편찬된 시기를 기준으로 400년 이상 기록돼온 곶자왈 지명은 모두 16개에 이르고 있다.
△고지도에 나타난 곶자왈 지명
1996년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펴낸 「제주의 옛 지도」를 토대로 곶자왈이 표시된 고지도는 「여지도 중 제주목」(1698~1703)과 「탐라순력도 한라장촉」(1702) 등 16점에 이른다.
여러 고지도 중 가장 많은 곶자왈 지명이 표기된 지도는 「제주삼읍도총지도」(1770년대)와 「해동지도 중 제주삼현도(1)」(1750년경)로 각각 8개, 6개가 확인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제외하면 여러 고문헌과 고지도의 편찬 시기가 크게 차이나지 않음에도 불구 곶자왈 지명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고문헌과 고지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곶자왈은 김녕곶·고막곶·남도(아래아)리곶·구제기곶 등 4개뿐이다. 또 여러 고지도 상에 등장하는 저목수(닥남(낭)곶)는 고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0년 사이 제작된 고지도 속 곶자왈 수는 저목수(닥남(낭)곶), 이마수(고막곶), 우(장)수(우진곶), 김녕수(김녕곶), 묘수(궤곶·궤술), 부수(썩은곶), 대교수(남도(아래아)리곶), 뇌수(머들(흘)곶), 현로수(검(감)은질곶), 광수(넙은곶), 나수(구제(젱)기곶), 서림수(서림곶), 임수(OO곶) 등 13개로 확인되고 있다.
△경계조사 연계 필수
예부터 곶자왈은 숲의 형태, 수종이나 나무의 밀집여부, 지형적 특징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문헌·고지도에 표기된 곶자왈의 고유 지명은 당시 주민들의 곶자왈에 대한 인식 정도와 중요성은 물론 곶자왈의 위치·경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다 각 곶자왈의 식생·형태 등 특성을 반영하고 있어 곶자왈 보전 과정에서 확인해야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선조들이 불렀던 곶자왈 고유의 이름은 현재 '행정구역명+곶자왈'로 바뀐 채 잊혀져가고 있다.
더욱이 곶자왈의 지형·지질, 식물·식생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역사·인문 분야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012년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제주도 용암숲 곶자왈의 보전과 활용을 위한 지원'이 제주형 의제로 채택됐다.
이후 도는 2013년 곶자왈 보전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이달부터 곶자왈의 체계적 보전 관리를 위한 '곶자왈 경계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따라서 경계조사와 맞물려 연구·조사를 통한 곶자왈 고유 지명의 복원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사회부 한 권·고경호 기자 / 자문=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김효철 ㈔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인터뷰] 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
"곶자왈 자체는 도민들의 일상생활과 다수 공동체의 존립을 가능케 한 소중한 자원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었다"
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교육대학 학장)은 "선조들이 현재의 곶자왈을 어떻게 불렀는지, 어디를 가리키는지 확인해 현재의 곶자왈 구분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며 "옛 지명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어져온 소중한 문화자산이자 자원이다"고 밝혔다.
정 부총장은 "곶자왈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공공자산이다. 곶자왈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선조들의 곶자왈 이용에 대한 내용이 빠져서는 큰 의미가 없다"며 "선조들이 사용하던 당시의 곶자왈 지명을 찾는 작업은 결국 공공자산의가치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늦기 전에 곶자왈의 옛 지명을 기억하고 있는 각 마을의 고령자들을 통해 고문헌과 고지도에 등장하는 지명이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 지를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곶자왈을 끼고 있는 마을 단위로 현지조사를 실시해 옛 지명을 확인하는 등의 검증 작업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제주도가 실시할 곶자왈 경계조사의 결과와 조사·발굴한 옛 고유 이름을 결부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