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생태계 파괴자?…불가사리의 불편한 진실
[제주바다의 해양생태보고서] 13. 제주바다의 불가사리.
사체 처리 등 해양 오염 예방에 영향
세계적으로 1800종·국내 100종 서식
거미·빨강불가사리 제주바다서 관찰
대표적 극피동물
왕성한 식욕으로 각종 어패류 등을 잡아먹는 불가사리는 수산자원을 황폐화시키는 해로운 생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그런 불가사리를 백해무익하고 바다에서 사라져야 할 해적생물로 몰아갔다. 과연 모든 불가사리가 해롭기만 한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다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불가사리는 오직 아무르불가사리 뿐이며, 나머지 불가사리들은 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어치우는가 하면, 동시에 바다의 오염을 막아 주는 이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불가사리에 관한 잘못된 정보는 불가사리에 대한 나쁜 선입견으로 사람들은 종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하게 잡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가사리는 팔 같은 신체의 일부가 잘리면 새로운 팔이 자라고, 잘린 팔은 또 하나의 개체로 살아날 만큼 재생력이 뛰어나다. 그런 불가사리는 죽일 수 없다는 뜻의 한자어인 불가살이(不可殺伊)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불가사리의 수가 대거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바다오염으로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면서 대신 생명력 강한 불가사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사리는 재생능력뿐 아니라 번식력도 강해 암수가 따로인 경우와 한 몸인 경우, 자신의 몸체를 나눠서 생식하는 경우 등 종류에 따라 번식방법까지 매우 다양하다. 불가사리는 한 번에 약 200~300만 개의 엄청난 양의 알을 낳는데, 불가사리의 유생은 먹이가 풍부하고 수온이 알맞은 살기 좋은 곳을 찾을 때까지 바다를 떠다니다가 좋은 환경을 만나면 성체로 성장하는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극피동물의 대표적인 불가사리는 세계적으로 1,800여종, 국내는 10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중 우리바다에 가장 흔한 것은 토착종인 별불가사리와 추운해역에서 건너온 아무르불가사리, 제주바다에 서식하는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까지 4종이 대표적이다. 이중 바다생물을 무차별하게 잡아먹는 불가사리는 바로 아무르불가사리 한 종뿐이다.
바다의 해적 아무르불가사리.
캄차카반도나 홋카이도 등 추운해역에서 건너오는 아무르불가사리는 수온이 떨어지는 겨울철활동이 가장 왕성해진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연안에서 이동하여 깊은 수심의 낮은 수온에서 여름잠을 자게 된다. 따라서 연안의 불가사리 구제작업은 봄, 여름철보다는 수온이 떨어지는 가을부터가 적절하다는 결론이다. 최근 들어 각계의 홍보에 따라 아무르불가사리 구제작업을 가을부터 벌이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개류 등을 포식하는 아무르불가사리는 다섯 개의 긴팔로 조개를 감싼 후, 팔 밑의 무수한 관족으로 압박을 가해 조개의 입을 강제로 벌린다. 조이는 힘을 견디지 못한 조개가 입을 벌리면 그 틈새로 위장을 밀어 넣는다.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간 소화효소는 조갯살을 녹여 흡수하게 되고 조개는 이내 껍데기만 남는다. 실험결과에 의하면 아무르불가사리 한 마리가 하루에 멍게 4개, 전복 2개, 홍합 10개를 거뜬히 먹어 치운다고 하니 아무르불가사리 떼가 한번 지나간 곳에는 살아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무차별하게 쓸어버린다.
별모양을 닮은 별불가사리
토속 종인 별불가사리는 팔이 매우 짧고 움직임이 둔한 구조적인 한계로 조개 등을 따라 잡지 못해 사냥이 쉽지 않다. 결국 먹잇감으로 죽은 물고기나 부패된 생물 등에 대상이 맞춰지게 되고, 이러한 습성은 바다의 부영양화를 막는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별불가사리는 여름철에 움직임이 둔해지는 아무르불가사리를 공격하기도 한다. 불가사리 퇴치운동으로 스쿠버다이버들이 동원된 구제작업 시 잡혀 나오는 불가사리를 보면 대부분 별불가사리들이다. 정작 아무르불가사리를 잡아내야 하지만 잘못된 상식으로 별불가사리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연안에 서식하는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
거미불가사리는 야행성으로 낮 시간 동안 비좁은 돌 밑에서 잠을 자고 있어 눈에 띠지 않는다. 재생력이 더욱 강한 거미불가사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스스로 팔을 잘라내고 급하게 도망치는 본능을 보인다. 제주연안에서 관찰되는 빨강불가사리는 화려한 연산호군락지에서 강렬한 색감을 품어내고 있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떼를 짓는 불가사리와 달리 대부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빨강불가사리는 너무 많지도 않은 적절한 개체수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외래종인 아무르불가사리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게 된 것은 선박의 이동에 기인한다. 선박은 자체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항구에서 바닷물을 채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때 아무르불가사리를 비롯해 기타 수중생물의 유생들이 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특히 이들은 플랑크톤 상태로 떠다니다가 서식이 적합한 해역에서 변태를 시작한다. 성체가 되어도 환경이 맞지 않으면 몸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확보한 후 해류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UN과 국제해양기구는 이동성 유해생물 10종에 적조, 콜레라 등과 함께 아무르불가사리도 포함하고 있다.
제주의 항, 포구 수중에서 아주 드물게 아무르불가사리와 별불가사리를 관찰한 경험이 있다. 또 아열대성 불가사리들이 간혹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성장하거나 번식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관찰할 수가 없었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주바다는 다행이 외래 불가사리들이 살수 없는 해양환경이란 사실에 도달한다.
제주연안에 서식하는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는 해양환경개선에 일익을 하는 불가사리들이다. 제주도 해양수산자원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조개류를 전혀 공격하지 않고 물속에서 부패한 고기와 유기물만을 먹이로 섭취한다고 한다.
이들의 습성은 육지에서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지렁이에 비유될 정도로 해양환경에 유익한 종들이란 것이다. 그런데 행사처럼 진행되는 불가사리 구제작업에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를 무차별적으로 잡아 올리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제주의 불가사리가 그러한데 제주바다에서의 불가사리 퇴치운동은 사실상 무의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