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은 '큰 가족'과 같은 곳"
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3. 양지세탁소 박인철·김영심 대표
2015-11-12 고 미 기자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양장 기술, 일본 등에서 경력 쌓고 2001년 창업
세번째 간판 교체 "세탁은 좋은 서비스 파는 일"
별도 수선실.탈의실 차별화…'믿고 맡기는' 부각
'고객 먼저', 가족애서 출발한 성심 서비스 지론
△고객 명단 절반 '단골'
박인철 대표(63)는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닥 타일 교체 시기를 놓고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그 전에는 아예 생각에도 없던 일이다. 제주도경제통상진흥원의 시설개선 및 컨설팅 지원을 받고 난 이후 생긴 변화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다 아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문가 조언대로 해보니 정말 달라졌다"며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더 좋지 않겠나 살펴봤더니 이렇게 고민이 늘었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노형동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세탁소도 있었지만 성실하고 좋은 서비스만 하면 통할 거라 믿었다. 고객 명단의 절반이 '단골'이니 박 대표의 뚝심이 어느 정도 통한 셈이다.(기본에의 충실.Ground)
△ '깨끗함 파는 일'자부심
박 대표는 이번 시설개선 지원으로 제일 먼저 '간판'을 교체했다. 문을 열고 벌써 세 번째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주변에 경쟁업체가 여럿 되다 보니 차별화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박 대표는 "골목상권이 다 그렇지만 시설을 바꾸는데 돈을 쓸 만한 여유가 없다. 당장 생계를 꾸려야 하는데 간판이며 외관 같은 건 늘 다음이 됐다.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 싶어서 무리를 해서 몇 번 손을 봤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간판을 바꾸라는 컨설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마'했던 선택은 예상외 결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지원예산 중 3분의 1이 조명간판 비용이었다"며 "생각 같아서야 오래된 기계부터 바꾸고 싶었지만 한번 믿어보자 했던 것이 효과만점이었다"고 평가했다.
노형동이 제주에서 가장 인구밀도도 높고 상업적으로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대도로에서 벗어난 이면도로는 해가 지면 덩달아 정막에 쌓인다. 조명 간판은 '여기 세탁소가 있다'는 표시는 물론이고 이정표 역할까지 했다. '퇴근길에 지나다 봤다'고 옷을 맡기러 온 손님도 생겼는가 하면 '밤에 간판을 보니 반가웠다'는 인사도 늘었다. 박 대표는 "세탁소라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결국은 좋은 인상과 서비스를 파는 일"이라고 강조했다.(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문턱'없는 편한 공간
양지세탁소에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자동문'이다. 15년이나 여닫이문을 어떻게 썼을까 싶을 만큼 활용도가 높다. 박 대표의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 김영심씨(57)는 "여닫이문을 쓸 때는 세탁한 옷을 건네 줄때도 한 손으로는 문을 붙들고 있어서 여간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걱정이 되고, 문을 여닫는 공간은 늘 남겨둬야 해서 불편 했었다"고 기억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문턱'이란 게 없어지다 보니 세탁물을 맡기는 손님도, 관리하는 박 대표 부부도 모두 편해졌다. 고급스런 분위기는 물론이고 여유 공간이 생기면서 박 대표가 직접 작은 화분이며 수공예품을 전시하는 선반까지 제작했다. 주택가 한복판이다 보니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설치한 CCTV를 감추는 용도기는 했지만 보는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다. 김씨는 "남편에게 이런 감성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며 "일을 하다가 선반을 보면 기분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시설 개선 지원이 만든 기분 좋은 변화 중 하나다.
박 대표는 "세탁소니까 더 깔끔하고 청결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며 "요즘 손님들의 반응을 보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일종의 부가가치다.
시설개선으로 별도 수선실과 탈의실을 둔 것 역시 양지 세탁소의 강점을 살린 선택이었다. 부부 모두 양장 일을 했던 만큼 해진 부분을 덧대는 것을 물론이고 체형에 맞게 고쳐주는 일이 능숙하다. 전에는 아는 사람만 맡겼던 일이었지만 모양을 갖춘 수선실을 본 손님들이 하나 둘 묻기 시작하며 일이 늘었다. '탈의실까지 있는 세탁소는 처음'이라 칭찬도 보태졌다. 서비스가 좋아지면서 가격에 대한 저항이 덜해진 것도 성과 중 하나다.(고유 아이템.Only one)
△ 돈 보다는 신뢰 우선
바닥은 반 밖에 바꾸지 못했다. 대형 기계를 옮기는 데 한계가 있기도 했고, 선뜻 투자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아니 않았었다. 박 대표는 "세탁협회에서 이런 사업이 있으니 한 번 해봐라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며 "대상으로 뽑히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잘 될까 싶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골목시장이 제한적이다 보니 컨설팅에 참여한 전문가들 중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보라는 조언이 유독 많았다. '대형 병원이나 호텔 등 주변 상권을 적절히 이용해 수요처를 늘리면 매출이 늘어날 것'이란 얘기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박 대표에게는 고객이 먼저였다. 박 대표는 단골들을 대상으로 의향을 물었다. 물론 정기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기본 고객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 세탁소에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박 대표는 "보통 세탁소들에 비해 여유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세탁물간 이염 같은 걸 고민해야 했다"며 "조금 돈이 덜 되도 가족 같은 단골들을 챙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고사했다"고 말했다. 여유가 생긴다는데 흔들리지 않을 리 없었지만 부부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으며 이유를 알게 됐다. "oo이가 올 시간 되지 않았어요. 어린이집 차 오나 나가봐요" 일로 바쁜 자식들을 대신해 손자를 돌보는 부부에게 세탁은 가족을 위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더 낫게, 조금 더 정성껏 하는 마음은 다 가족애에서 출발한다.
'고객관리'라고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요즘 흔하다는 전산관리시스템이 아직은 낯설다. 포인트를 준다거나 문자메시지로 이벤트를 전하는 일은 아직 어렵다. 대신 연륜이 느껴질 만큼 손때 묻은 장부와 단골들의 얼굴과 이름, 사정까지 기억하는 것이 큰 재산이다. 박 대표는 "골목상권에 장사를 한다는 것은 '큰'가족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그만큼 성심성의껏 헤아려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지론을 펼쳤다. "손자 옷도 내가 다 손을 봐요. 별도로 하는 것은 없어요. 다 '내 옷'이라고 생각하니까 똑같죠.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고, 그 아이들이 다시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이니까 가능한 일이죠"(기본에의 충실.Ground)' '고객관계.Relation)' 고 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