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재창업 효과

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4. 서귀포시 하효동 '등세탁소'

2015-11-15     고 미 기자
▲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등세탁소'를 운영하는 이종석 대표(60)와 아내 현순자씨(56).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바늘 하나로 시작한 제주살이…제주사람으로
의상실 경력 바탕으로 20여년 골목상권 지켜
기성복.IMF.대행매장 등 환경 변수에 경영난
"웃음과 관리 등 작지만 기본 지키는 일 중요"

 
△희망 찾아 제주행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등세탁소'를 운영하는 이종석 대표(60)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이 대표는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된 '귀촌'을 무려 30년 일찍 선택했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어렵게 보냈던 이 대표에게 '제주'는 희망과 좌절을 한꺼번에 존재다.

전남 순천 출신인 그는 20대 후반이던 1982년 일을 찾아 제주에 왔다. '제주도 의상실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무작정 배에 올랐다. 간단한 가방 하나에 주소만 들고 찾아간 의상실에서 말그대로 '바닥'부터 배웠다. 처음 기대에 부풀었던 상황은 불과 며칠 만에 반전됐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춥고 배고팠던 때라 '기술을 배운다'는 목표도 흔들렸다. 바늘을 쥐고 한 번, 가위를 잡으며 한 번, 그렇게 두 번이나 귀향 짐을 쌌던 이 대표는 세 번째 제주행에서 아내 현순자씨(56)를 만나며 '제주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 이 대표가 내건 간판은 세탁소가 아닌 의상실이었다. 수 년에 걸쳐 어깨 너머 익힌 재주를 바탕으로 1986년 의상실을 냈다. 그 때만해도 기성복보다는 맞춤복이 인기가 있었다. 눈썰미가 있다, 손재주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탄탄대로를 걷던 것도 잠시 서울아시안게임(1986)과 올림픽(1988)을 거치며 스포츠웨어가 유행하고 여성복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일순간에 사양길을 걷게 됐다. 여성복으로 시작한 '기성복'바람은 남성정장과 아동복으로 번졌다. 코디네이션이니 컬렉션이니 하는 패션용어까지 공공연해지면서 '의상실'이란 간판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도와줄 가족이나 친척 하나 없이 맨몸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던 탓에 실패로 인한 타격도 컸다. 이 대표는 "바느질 솜씨 하나 믿고 의상실을 차렸는데 '기성복'에 밀려 그만 문을 닫았다"며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막막하고 허탈할 정도"라고 털어왔다.

당시 많은 의상.양장점들이 그랬듯 이 대표도 세탁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인 만큼 넋 놓고 있을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리 저리 뛰어 다녔는데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거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옷만 보였지."

당시 많은 의상·양장점들이 그랬듯 이 대표도 세탁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등세탁소'간판을 건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절실함·성실성, Spirit)
 
▲ 등세탁 외관.
△ 바느질 밑천…세차례 위기도

손기술을 밑천으로 세탁소를 열었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 자리 잡았던 '하효동'을 지켰지만 세탁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한참 걸렸다. 이 대표는 "의상실에서 일을 배워서 그런가 사람들 만나는 것은 괜찮았지만 비슷한 처지 이웃이 많다 보니 조금 더 잘하는 것이 있어야 했다"며 "그때는 바느질을 배우기 잘했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 싶을 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다. "그 때를 생각하면 다시 한숨이 난다"는 이 대표는 슬쩍 세탁소 내부를 둘러봤다.

"손님이 줄어든 것도 문제였지만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 옷이 늘다 보니 관리 비용은 늘고 일을 하지 어렵고 정말 막막했다"며 "집에 제때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해 아내가 많이 고생을 했다. 미안한 마음을 굴뚝이었지만 손님들과의 약속도 지켜야 해서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세 번 째 위기 때는 그냥 웃음부터 나왔다. 대형매장 숍인숍으로 세탁소가 들어서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했던 것이 단골들 발길까지 뜸해지며 "이 건 아니다"싶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교육도 받고 애를 썼지만 '작은 가게'로는 역부족이었다.

늘 '이보다 더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던 이 대표의 긍정 마인드가 한계에 부딪힐 즈음 세탁협회로부터 제주특별자치도경제통상진흥원의 시설개선.컨설팅 지원 사업 정보를 얻었다.

이 대표는 "전문가들이 직접 찾아와 컨설팅을 해주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약이 됐다"며 "가게를 새롭게 단장하고 컴퓨터로 고객관리를 하니 고객들의 반응이 좋고 관리도 쉬워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고 웃었다.
 
▲ '등세탁소' 이종석 대표.
△ 절실했던 변화의 힘
 
전문가들의 조언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이 대표가 고민해오던 일들이었다.

그동안의 방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장 환경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대표는 "뭔가 새로운 게 유행한다 싶으면 걱정이 생겼다"며 "한창 아웃도어가 유행할 즈음 매출이 줄었고, 지금처럼 옷 하나에 여러 소재가 들어가면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친절한 서비스를 통해 손님을 끌어 모은다는 전략을 구상해봤지만, 기존 시설과 기술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사이 빨래방이며 공장형 세탁소 같은 경쟁상대도 늘었다. 20여년 터주지만 '장사 좀 한다'는 대기업 세탁업체의 깔끔한 인테리어에 기가 죽은 적도 있었다.

이 대표는 세탁소 시설개선비로 600만원을 지원받았다. '등 세탁소'만의 장점을 살리고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빠짐없이 메모했다.

가장 먼저 세탁소 간판이 바뀌었다. 업체 특성을 살린 깔끔한 조명 간판이 '등세탁'의 위치를 알린다. 20년이란 시간만큼 녹이 슬고 낡았던 창문과 출입문도 바꿨다.

온라인을 통해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는 컴퓨터에 세탁실 위치를 옮기고 조명을 LED 등으로 교체하면서 내부 공간도 밝아졌다. 고객응대 교육과 경영 개선 관련 컨설팅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외관과 내부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새로 가게를 냈냐는 말까지 듣는다"며 "손님들이 좋아하고 컴퓨터 고객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니 능률이 올라 일이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지원으로 옷 소재에 따른 세탁과 건조를 통해 찌든 때를 빼주고, 인체 프레스를 통한 꼼꼼한 다림질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면서 '단골'예약을 하는 손님도 늘었다.(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 생각을 바꾸면 달라져

이번 지원사업에서 이 대표는 얻은 것이 참 많다. '골목상권'이라고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인정하기 싫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가게가 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좁게 쓰는 것이 문제란 걸 알았다"며 "작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고객 동선에 맞춰 배치를 바꾸는 것 만으로도 만족도가 달라진다"고 평가했다. "코너에 있어서 모르고 지나갔었다"던 어느 신혼부부가 돌출간판을 따라 세탁소를 찾아오는 등 손님이 늘어난 것이 가장 기쁘다.

이 대표는 그 마음을 매장 입구에 걸었다. 눈높이에 붙여둔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란 다짐은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 살아갈 모토다.(기본에의 충실·Ground)

요즘 이 대표는 웃음이 늘었다. '웃는 얼굴에는 웃음이 돌아온다'는 생각에 안부를 한 번 더 묻고, 서비스를 살피느라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예전만큼 지치지 않는 것이 흥이 난다. 주변에서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것이 영양제 역할을 한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는 "이번에 시설 개선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정신 교육을 받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만약에 시설개선·컨설팅 지원 사업을 몰랐다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어떻게 세탁소를 운영했을지 막막했을 것"이라며 "다행히 좋은 기회로 혜택을 받은 만큼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덧붙였다.(고객관계·Relation) 고 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