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랑방으로 즐거워졌어요”
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6. 서홍세탁소 신박철.김영순 대표
2015-11-15 고 미 기자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서홍동 '1호' 세탁소…주변 변화 따라 상권 변화 체감
감귤철.아웃도어 확산 등 변수, '신용' '인심'으로 자리
공간 내준 만큼 매출 늘어…"사람 냄새 나야 골목 상권"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서홍세탁소 김영순 대표(여.58)가 툭하고 말을 던진다. "매출이 늘었다는 얘기신가요" "매출도 늘었는데 그보다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무슨 뜻인가 한참을 고민하는데 김 대표가 얼른 귀띔을 해준다. "여기 이렇게 공간이 생기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오가다 들르시기도 하고 그래요. 심심할 틈이 없죠"
옆에 있던 남편 신박철 대표(60)도 거든다. "이맘 때면 일이 뜸해요. 감귤철이라 오가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라도 동네사람들이 들렀다 가주면 사람사는 맛도 나고 좋아요"
제주도경제통상진흥원의 골목상권 시설 개선 및 컨설팅 지원 사업이 만든 효과다.
△ 25년 골목대장 자처
서홍세탁소는 서귀포시 서홍동에 처음 자리 잡은 '1호'세탁소다. 서홍동은 1981년 서홍리에서 '동'으로 승격된 후에도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더뎠었다.
서홍세탁소가 문을 열었던 1991년만 하더라도 '앞으로 발전할'이란 수식어가 달렸던 마을이었다. 1999년 남제주군청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몇몇 상가가 들어섰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대형매장이 들어서고, 남제주군청이 서귀포시 1청사로 이름을 바꾸고 하나둘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주변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달라졌다. 하루가 멀다고 세탁소가 문을 열었고 또 간판을 바꿨다.
그 틈바구니에서 22년 한 자리를 지켰다. 인근에 대형유통매장이 생기면서 매출이 늘어난다 싶을 즈음 가게를 옮겼다. '확장이전'같은 말은 앞세우지 못했다. '원하는 만큼 임대료를 올려주겠다'고 사정도 했지만 건물주의 입장은 확고했다. 기존 위치에서 200m쯤 떨어진 현 위치로 옮길 때 착잡했던 기분은 지금도 여전하다. 신 대표는 "49㎡(15평)가 넘는 면적에 방까지 있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33㎡에 딱 일을 할 공간만 있다"며 "나름 일하기 편해지고 오가는 사람들을 살필 수 있어 좋다"고 말을 돌렸다.(절실함·성실성.Spirit)
△ 저절로 익힌 상권 읽는 기술
25년 경력의 부부에게 세탁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상권을 읽는 기술이다.
처음 간판을 걸때만 해도 편도 1차선이던 도로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다. 동 전체가 시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왕복 4차선으로 넓어지며 반으로 나뉘었다. 김 대표는 "심리적으로 서비스 이용을 위해 길을 건너야 하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더라"며 "길을 걸을 때 오른쪽에 있는 간판을 먼저 보는 것도 비슷한 심리"라고 정리했다. 책이나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25년 골목상권을 지키며 터득한 지혜다.
'대형유통매장'으로 인한 득과 실도 분명하게 구분 지었다.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해 장을 보러 가지만 생활서비스만큼은 골목상권이 유리하다는, 일종의 '유동인구'론이다. 김 대표는 "유통매장 안에도 세탁소가 있지만 서비스 차이를 느끼고 나면 알아서 돌아온다"며 "처음은 유통매장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 원망도 했지만 적어도 걸어서 장을 보는 동네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온다"고 설명했다.(기본에의 충실.Ground)
△단골을 만드는 법
이번 시설개선과 컨설팅 지원은 부부의 표정까지 바꿨다. 신 대표는 '조명간판'을, 김 대표는 '단골 만드는 법'을 최고의 성과로 꼽았다.
25년을 한결같이 동네를 지킨 덕분에 고객관리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세탁물이 밀리면 고객들의 성향에 맞춰 먼저 전화연락을 해 양해를 구한다. 얼룩이나 수선에 있어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 것도 노하우 중 하나다. 신 대표는 "무리하게 얼룩을 빼다가 옷을 망가뜨리는 것 보다는 먼저 이런 저런 이유로 작업이 어렵다고 설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며 "단골들이 많다보니 대부분 이해해 준다"고 말했다. 동네 장사를 한다고 막무가내단골만 의지해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동네에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출근시간보다 먼저 문을 열고 일부러 저녁에는 8~9시까지 문을 열었다. 신 대표는 "분명 영업시간은 같은 데 조명 간판을 설치한 뒤 '저녁 손님'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 동안 간판 생각은 안해봤는데 저녁 시간 세탁물을 맡기는 사람마다 '여기에 세탁소가 있는 걸 몰랐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차' 싶었다"며 "'어떤 서비스를 판다'는 것을 알리는 경영의 기본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단골' 역시 마찬가지다. 필요에 의해 세탁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잠재 고객을 만들 수 있다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가게 입구에서 세탁물을 맡기고 찾아가는 것으로는 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적어도 몇 발자국 걸어 들어오게 할 때 '고객'을 만들 수 있다고. 지금은 그 차이가 피부로 느껴져요"
△'인기척'의 기적
사실 그랬다. 지원을 받기 전에는 1분 1초라도 세탁물 처리를 빨리할 욕심에 입구가 복잡했었다. 세탁물을 처리별로 분류하고 만들어진 공간에는 세제며 도구를 정리할 수납장 겸용 원목의자가 놓여졌다. 처음 '뭔가 달라진 것 같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던 손님이 다음은 '지나는 길'이라고 들렀다. 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따라, 아니면 아는 얼굴이 보인다고 한명 두명 세탁소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세탁소 안에만 있으면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며 "요즘은 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얘기며 이런 저런 정보가 알아서 들어온다"고 웃었다. 20년 넘게 '쉬었던' 감귤철이 북적여준 이유도 '사랑방'이 된 3.3㎡(1평)공간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동네 사정을 알면서 생각하게 된 부분도 있다. 신 대표는 "주변에 생각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며 "어르신들이 오죽하면 여기까지 와서 사람 목소리를 들으려 하시는가 싶어 종종 주전부리 같을 것을 챙겨놓는다"고 귀띔했다.
세탁소라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칼퇴근'이란 건 없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필요한 시간에 기다려주는 가게에 발길이 닿는 것이 당연지사다. 맡기면 제대로 해준다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단골들이 있지만 자주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혹시 모르니 가르쳐 주는 것도 일종의 홍보다. 얼굴을 맞대고 직접 눈으로 확인시키는 것 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객관계.Relation)
감귤철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물세탁이 되는 아웃도어가 늘어난 것도 영향이 컸다. 불과 2~3년 사이 일이다. 집에서 세탁할 수 있는 전용세제까지 나왔다.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모직코트 자리에는 손빨래가 가능한 패딩점퍼가 들어섰다. 신 대표는 "슬쩍 그런 얘기를 흘렸는데 예전 입던 옷인데 고쳐 다시 입을 수 있냐는 의뢰가 들어왔다"며 "우리만 힘들다 했는데 여건만 된다면 고치고 세탁해서 새옷처럼 깨끗하게 입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LED 전등으로 바꾸고 나니 전기요금이 많이 줄었어요. 그 얘기를 했더니 벌써 몇 집이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고 요금을 조금 올려도 되겠다고 편을 들어주는 '동네 팬'도 있어요. 작업할 때 편해진 만큼 고객들도 좋아하고. 이번에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고 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