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빵 굽는 냄새' 나눕니다"
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10. 올레 베이커리
2015-11-17 고 미 기자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그냥 사장'에서 '빵 만드는 사장'으로 도전
시설지원.컨설팅 지원으로 '전화위복' 이뤄
좋은 재료+제값', 배달 통해 목 단점→강점
"행복한 맛 나누는 전도사 행운, 고객 덕"
'빵 굽는 냄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빵의 나라' 프랑스에 있는 대학 연구진이 행동 실험을 통해 찾아낸 결론에 따르면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좀 더 친절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친절의 정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발을 멈추고 시선을 챙기게 되는 걸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듯 싶다. '올레 베이커리'의 긴 호흡도 마찬가지다.
△텅텅 빈 금고에 정신 '번쩍'
'올레베이커리'는 송주영 대표가 두 번째 내건 간판 이름이다. 느낌은 확 다르다. '처음'은 빵집 사장이었고, 두 번째는 빵 만드는 사장이다.
사실 '처음'은 좋았다. 2008년 유동인구가 많은 신제주에 제법 규모가 있는 베이커리를 열었다. 지금처럼 골목마다 대기업 브랜드 베이커리가 있을 때도 아니었다. 한 달 매출이 제주 지역 직장인 평균 연봉 수준일 만큼 돈을 만졌다. 여유를 고스란히 반납한 결과였다.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쉼 없이 일을 하는 생활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빵집을 하면서 빵을 모른다는 것이 힘들었다. 송 대표는 "명색이 빵집인데 손님들이 물어봐도 빤한 대답만 하고 있더라고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제과제빵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 매장부터 줄이는 것으로 운신의 폭을 넓혀보자 싶었죠".
그렇게 201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가게 자리는 시쳇말로 괜찮아보였다. 이전 베이커리로 운영되던 곳인데다 대각선 맞은편에 시회버스터미널까지 있어서 좋은 목이라 생각했지만 오판이라 느끼기까지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어요. 학생이나 어르신, 아니면 관광객. 다들 시간에 맞춰 움직이죠. 오후 7시면 오가는 사람도 없어요. '시간'이 기준이 되는데다 별다른 이유 없이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없다는 거죠"
그 때 생각에 송 대표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송 대표는 "그때 하루 매상이 5만원인가 했던 것 같아요. 한 달을 꼬박 벌어도 임대료를 내고 재료비를 충당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였죠"라며 "이렇게 해도 되나 몇 번을 고민했지만 그 때마다 어머니 얼굴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고 털어놨다.
빵이라고는 먹는 줄 밖에 몰랐던 30대에는 어머니 꿈을 이뤄드린다는 이유로 빵집 간판을 내걸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살펴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기술도 익히고 어머니와 오붓하게 해보리라 40대 시작에 맞춰 진행한 일은 생각 보다 벌이가 되지 않아 맘을 졸여야 했다.
처음 성공 경험도 '독'이 됐다. 바닥을 드러낸 금고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제주도 경제통상진흥원이었다.(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 '올레 옥수수빵' 탄생
송 대표가 잡은 것은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도 경제통상진흥원의 시설개선사업과 경영컨설팅은 첫 성공의 자만과 예상보다 빨리 무거워진 실패 부담을 더는 데 주효했다.
송 대표는 "'빵'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일단 싸게 많이 파는 것보다는 정직하게 제값에 맞는 빵을 팔겠다는 신념이 통했다.
올레 베이커리의 간판빵이 된 '옥수수빵'도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옥수수빵은 특유의 고소하고 단 맛이 특징이지만, 우유빵 보다 표면이 거칠고 공기와 닿으면 금세 딱딱하게 변해버리는 탓에 몇몇 베이커리에서 소량만 만들어 판다. 하지만 올레 베이커리의 옥수수빵은 '언제 먹어도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남다른 맛'으로 단골을 만들어 냈다. 처음 송 대표의 빵을 맛 본 전문가의 "다른 매장과 가격을 맞추기 보다는 좀 더 좋은 재료를 써서 제값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다.
송 대표는 "물 대신 우유와 우유버터, 발효종만으로 반죽한다"고 비법을 귀띔했다. 옥수수가루를 듬뿍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한데다 촉촉함이 강조되면서 다른 베이커리와 경쟁하는 '깡패(?) 메뉴'로 등극했다.
'옥수수빵'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간혹 가격 시비가 붙기도 하지만 송 대표는 자신있게 한 번 먹어볼 것을 권한다. "입이 가장 정직한 거예요. 일일이 재료 차이를 설명해도 되겠지만 한 번 빵맛을 보고 나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요. 재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다른 빵들도 마찬가지다. 질 좋은 재료에 정성까지 보태면서 매상은 이전 200배 이상 뛰었다.
무엇보다 '주문'이 늘었다. 66㎡(20평)남짓한 매장을 활용하기에는 주문 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시외버스터미널 옆이란 입지 역시 부각됐다. '전화로 주문을 받고 입금 확인 후 빵을 만들어 버스로 제주 전역에 배달'하는 시스템은 올레 베이커리가 아니면 쉽게 하기 힘들 정도다. 송 대표는 "주문한 빵을 박스에 넣어 버스 트렁크에 실어두면 손님이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찾아간다"며 "내 입장에서는 배달 부담을 덜어서 좋고 손님도 먹고 싶은 빵을 쉽게 먹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
△ 꾸준한 관리 중요
매출이 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빵 맛은 한결같다. 단골 중에는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는 칭찬도 나온다.
"항상 어머니가 드실 거란 생각으로 빵을 만들어요. 이 곳을 찾는 분들도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지인과 나누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내 빵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항상 정직 해야죠"
기능을 살린 '간판'도 올레 베이커리의 희망이 됐다.
상호가 돋보이는 텍스트 디자인으로 간판을 깔끔하게 바꾸고, 판매대와 바닥을 환한 색으로 교체하고 나니 늘 옆모습으로 무심하게 가게 앞을 지나던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송 대표는 "동네에서 십수년을 살았는데 여기 빵집이 있는 걸 처음 알았다는 분도 있었다"며 "대형 프렌차이즈들이 눈에 띄는 간판과 인테리어로 무장하는 이유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어중간한 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길을 건너는 사람도 생겼다. 어느 정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송 대표는 소리없이 '빵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몇 달 사이에 가게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송 대표는 "한번도 초심을 내려놓은 적 없을 만큼 꾸준히 노력하고 관리했다"며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을 전문가들이 도와준 것이 마중물이 됐다"고 말했다.
송 대표가 지원사업의 최대 혜택으로 꼽은 것은 '사후관리'다. 서류상 지원 사업은 끝났지만 아직 자신을 담당했던 전문가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송 대표의 다음 목표는 '고객관리(Relation)'와 '네트워크(Network)'다. '어떻게든 매출을 늘려서 가게를 유지하는 게 목표'였던 사정은 요즘 '고객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으로 바뀌었다.
송 대표는 "한 서귀포 고객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빵 배달을 시키세요. 어머니께서 드실 수 있는 빵이 저희 빵밖에 없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게 보람"이라고 했다.
고객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빵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일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각의 사연과 이유가 있어요. 다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어하죠. 그 가운데 행복한 맛을 나눈 것 만큼 즐거운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송 대표에게서 '빵 굽는 냄새'가 난다.(기본에의 충실.Ground) 고 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