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하거나 악랄하거나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46)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2016-02-12     강은미
현대문학에서 가장 끔찍한 소설로 불리는 「검은 고양이」는 저자인 에드거 앨런 포가 자라난 음울하고 불안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사진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에드거 앨런 포의 집 지하실.

성격 변화로 생긴 도착적 심리
환각 속 끔찍한 결말로 치달아
'유순함'과 '잔혹성'의 극치
인간의 양면성 생각케 한 작품

최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아동학대 등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다. 인간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대립된 관점들이 있지만 사회화와 교육의 과정을 거치면서 타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 사랑과 같은 정념이 긍정적으로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의심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 그 자체 또는 인간 무의식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한다. 

문학작품은 인간심리의 긍·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언어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은 '온순하고 사려깊다'고 어렸을 때부터 칭찬받다가 극도의 격노와 혐오감, 짜증,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고양이와 그 아내를 살해하는 일련의 사건을 범하고 말았다. 마치 추리극을 연상케하는 소설의 사건 속에서 무엇이 그토록 그로 하여금 '사악한 생각이 유일한 친구'가 되게 했을까 골몰하게 한다. 

칭찬받던 주인공의 극단적 변화

주인공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사려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동물들을 사랑해 부모님이 이런 저런 동물들을 기르게 했다. 그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일찍 결혼을 하였고, 그의 아내 역시 주인공 '나'만큼이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악마같은 폭음' 때문에 성격이 '침울하고 쉽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어느 날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온 '나'는 우발적으로 자신이 기르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 쪽 눈을 도려내는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한쪽 눈을 잃은 고양이는 주인공을 슬슬 피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나'는 자신을 혐오하는 고양이에 대해 도착적인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플루토의 목을 나무에 매달았다. 

그날 밤, 주인공은 갑자기 "불이야" 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집 전체가 불에 타고 말았는데, 한쪽 벽만 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 벽에는 목에 고리가 걸린 듯한 고양이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유령'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악몽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고양이를 잃은 안타까움과 회환을 대신할 다른 동물은 없을까 둘러볼 지경이 된다. 

어느날 아내는 죽은 플루토와 생김새가 닮은 검은 고양이를 구해온다. 그 고양이를 보는 순간 주인공 '나'는 지난번 고양이와 너무나 흡사한 모양 때문에 두 번째 만난 검은 고양이에 대해 공포심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다. 화재 이후 점점 예민해진 '나'는 주사가 심해지고, 아내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기도 하는데… . 결국 두 번째 고양이의 목에 생긴 흰 반점이 '교수대'를 연상케하는 환각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로써 고양이를 죽이려다가 사고로 아내를 죽이게 된다. '나'는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놓고 그 위에 시멘트를 새로 발라서 범행을 완전하게 감춘다. 하지만 경찰이 조사차 집에 들르고, 아무런 단서도 못찾고 나가는 경관을 향해 "이 벽들은 단단히 발라졌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자 그 벽에서 기괴한 고양이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이를 수상쩍게 여긴 경관들이 벽을 허물자 그 안에서 아내의 시체와 산 채로 묻힌 검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우울했던 유년기 경험 작품에 반영

이 작품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문학의 사악한 천재'다.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인간내면의 죄의식과 공포 그 자체를 소름끼치게 묘사하는 재능을 가진 자는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는 미국 문학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작가다. 낭만주의의 거두, 미국 단편소설의 선구자, 추리소설 및 과학소설의 선구자,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 등 그에게 붙여지는 별칭과 명성은 화려하다. 

「검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에드거 앨런 포의 거의 모든 작품은 그가 경험한 현실에의 공포, 그로 인한 도착적 심리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자라난 환경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1월19일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후 18개월 쯤에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그의 나이 두 살 때 결핵으로 죽는다. 고아가 된 포는 담배상인인 숙부 존 앨런에게 입양된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은 에드거 앨런 포가 된다. 존 앨런은 훈육적이기도 하고, 방치하기도 하는 등 일관된 양육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1826년 포는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는데 도박과 술에 빠지게 돼 화가 난 숙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못 받게 된다. 결국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이러한 포의 경험은 그의 소설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작품 「검은 고양이」에서도 유순하고 사려깊던 주인공 '나'가 폭음으로 인해 안하무인적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범죄적 행동에 대해 무감각해지면서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영혼의 짐을 덜고자"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살인까지 저지른 한 인간의 영혼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함인가.

본능 또는 환경…배경에는 의문 여전

이 작품은 인간심리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하나는 알코올중독의 상태에서 폭로되고 있는 인간심리의 밑바닥이 너무나 잔혹스럽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눈을 파고, 나무에 목을 매다는 것도 불사하거니와 아내의 시체를 벽에 넣고 시멘트를 바르는 등의 잔혹성의 극치를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 또 하나는 유순하고 사려깊은 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알코올릭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유일한 단서가 있다면 "마음이 남다르게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순함이 오히려 놀림감이 되는 현실에서 주인공 '나'가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을 마심으로써 위안을 삼던 것이 습관이 돼버려 결국 알코올릭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실제로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어린시절 부모와의 이별, 양부와의 갈등, 알코올중독, 가난,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등 인생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 1849년 10월3일, 포는 볼티모어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발견, 워싱턴 의대병원으로 실려갔지만 1849년 10월7일 일요일 오전 5시 정각에 숨을 거두었다. 공식 사인은 뇌출혈이지만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행사(行死)일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이 있다. "신이시여 내 불쌍한 영혼을 돌보소서"라는 말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작품 「검은 고양이」에서 화자가 영혼의 짐이라도 덜고자 이 글을 쓴다는 고백과 유사하다. 

어찌됐든 현대문학에서 가장 끔찍한 소설 「검은 고양이」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면서도 악랄할 수 있는지, 또한 그러한 도착적 심리의 배경이 원초적 본능인지 아니면 환경 탓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아무리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자일지라도 자신의 과오를 반성할 수 있는 성찰적 이성 또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인간이여!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작품 속 책갈피

이 공포가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다른 종류의 공포라고 정의하는 게 좋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짐승이 내게 불러일으킨 공포와 전율이 가공의 괴물에 대해 상상함으로써 더 커졌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중죄인 감방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도 그걸 생각하면 창피하다. 아내는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흰털 반점에 대해 여러번 언급해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중략)

그 반점은 그즈음 이름을 말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바로 그 물체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형태 때문에 나는 그 짐승을 더욱더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감히 그럴 용기만 있었다면 아주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것의 모양, 즉 교수대의 모양을 띠었던 것이다! 교수대, 오, 서글프고 끔찍한 공포와 범죄의 기계, 고뇌와 죽음의 기계여!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