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스스로 1% 틀에 묶이지 말아야"
2016 사람이 자원이다 8.진명기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제주시 애월읍에서 태어나 납읍초와 애월중을 졸업하고 경북 구미전자공고로 진학, 대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버밍햄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95년 제39회 행정고시 합격 후 고충처리위원회 파견근무에 이어 행자부 지방공기업과장, 자치제도팀장, 지방세분석과장, 주우즈베키스탄대사관 참사관, 지방세운영과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올해부터 국무총리조세심판원에서 상임심판관으로 지방세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투명한 예산 확립·납세자 보호 중책
'사업별 예산제' 도입·실무 이끌어와
수치는 한계 아닌 '특별한 지역' 여겨
"현안 앞에서는 고향 위해 힘 합쳐야"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의 의무를 진다. 그런데 납세자가 부당하고 억울한 세금을 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판결을 통해 위법 또는 부당하게 징수한 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설립된 납세자 권리구제기관인 '조세심판원'의 6심판부 주심을 제주출신 진명기 상임심판관이 맡고 있다.
중앙·지방정부 예산 평가 보다 투명하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1년 단위로 계획하는 예산을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입과 세출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 어떠한 비중으로 계획돼 있는지 파악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존 지방정부의 예산은 품목별 예산으로 짜여져 있어서 파악하기가 힘들고, 또 다 써버리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개선을 위해 2008년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사업별 예산을 도입했다. 이 '사업별 예산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실무를 도맡은 이가 바로 진 심판관이다.
"원래 조직에서의 업무는 조직원들의 합작품이니 딱히 제 업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업무 중 유달리 고생을 많이 했고 그만큼 애착이 가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사업별 예산제도'입니다. 초기 자치단체 공무원들과 같이 끊임없는 토론·연구를 하면서 도입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젊었을 때라 그런지 밤늦게까지 제도연구와 치열한 토론으로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사업별예산제도와 그 제도가 적용된 시스템을 모든 자치단체가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뿌듯하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봄이 오면 삼동 따 먹던' 돌아가고 싶은 제주
애월읍 출신인 진 심판관이 기억하는 제주는 봄에는 삼동을 따 먹고, 여름이면 지네를 잡아 팔던 기억과 함께 콩잎에 자리젓을 싸서 먹던 기억, 가을이면 촐밭에서 볼래와 졸갱이를 따 먹던 기억이 아스라한, 돌아가야 할 그 자체이다.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고향 제주의 문화체험 계승에 대해 조언도 던진다.
"삼동, 지네잡이, 볼래, 졸갱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구역 등을 지정·운영해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과거의 생활을 체험하게 함과 동시에 제주만의 독특한 먹거리 등을 전승시키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연어가 험난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유지될 수 있는 제주를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제주 미래의 숙제라고 진 심판관은 강조한다.
"학창시절 고향을 떠난 저로서는 그 애환의 기억과 겹쳐 향수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공직 입문 후 유학이나 외국에 파견 나가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명절 외에도 벌초 때 고향에 가서 사촌들과 조상 묘소 벌초를 하면서 기억의 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벌초 후 친구들과 한 잔 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강화시키는 연례행사입니다"
'제주인 도전정신'으로 공직 입문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부득이 국비로 운영되는 구미전자공고에 입학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졸업해 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것이 우선의 목표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던 대로 유명 전자회사 고졸 공채로 입사해 컴퓨터 생산부서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회사생활 중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이끌려 3년차 되던 해 대입공부를 시작, 대구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면서 야간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회사생활이 아닌 또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좀 더 큰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공직에 입문시켰다고 회고한다. '제주인'다운 도전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왜 그만두냐는 동료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6년 넘게 몸담은 회사를 퇴사해 학교에 복학했고, 그때 주위에서 고시를 준비하던 선배들을 보게 됐습니다. 공부를 원없이 더 하고 싶다는 욕심과 겹쳐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고 운 좋게도 합격해 공직자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제주는 특별한 곳이자 부러움의 대상
제주에서는 전국 1%의 한계가 종종 회자되곤 한다. '도세1%' 제주출신인 그가 중앙부처에서 느껴온 한계와 고난이 있을 것 같아 던진 우려에 그는 단호하게 반박한다.
"아마도 제주도가 우리나라 인구의 약 1%를 유지했던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쩌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고 어쩌면 스스로 1%의 틀에 묶어 놓은 것인지 모르지만, 주위에서 제주도라 하면 모두들 긍정적인 평가를 하며 부러워한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제주도라 특별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진 심판관은 제주도가 특별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섬으로 이뤄진 광역자치단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 독특한 문화 등을 무기로 인구 1%의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아니면 적어도 '한계'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하는 고향 제주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다른 자치단체들을 보면 그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평소에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현안이 있을 경우에는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고 고향을 위해 합심하는 경우를 왕왕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앙절충, '형식'보다 끈질긴 소통노력 필요 |
| '제주발전이 국가발전' 논리강화 시급 진명기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은 제주특별자치도의 대 중앙절충 방안에 대해 '지속적인 소통'을 주문했다. 진 심판관은 "제주도는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도 재정정책 파급력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거의 최상위에 이를 정도로 커, 도 재정(예산) 확보가 도내 총생산과도 깊이 연계돼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만의 의례적인 방문보다는 두 번, 세 번 방문해 설득하다 보면 언젠가는 예산이 확보되거나 제도가 도입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많이 느꼈다"며 "끈질긴 소통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진 심판관은 "제주도가 잘 돼야 국가가 잘된다는 논리가 더해지면 더욱 설득이 수월해질 것"이라며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모든 자치단체의 요청이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로 비춰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려면 제주도만 잘 되려는 게 아닌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논리개발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진 심판관은 "다양한 출향 모임을 네트워크화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명예도민들에 대해서는 정기적 뉴스레터, 서신 등 '사람에 대한 진실한 관심'을 제도화하고 운영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 심판관은 또 최근의 도내 부동산값 폭등과 관련해서는 "현재 문제되고 있는 것보다 미래세대의 충격이 매우 클 것"이라며 "공공기관을 통한 공적개발 등 충격 완화 방안이 필요하고, 이미 개발됐으나 노후된 지역의 효율화 방안, 타 지역과 특화된 건축물 디자인 등 제주만의 특성을 어떻게 구현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진 심판관은 제주의 지속성장 발전모델 구축에 대해 "1차산업과 서비스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각종 환경친화적 제조업을 유치하는 특구개념을 모색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