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이끄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야"
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31. 하이타니 겐지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타인과 어울려 사는 방법이 실린 백과사전
사람 향기냄새가 배어나는 아름다운 작품
졸업앨범의 단상
명절 친정에서 다락방 옷장에 넣어 뒀던 중학교 졸업앨범을 우연히 발견했다. 물건을 가지러 갔던 것을 잠시 잊고 나조차 낯선 나의 모습을 찾아, 그 시절 기억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반을 찾으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사진 속 친구들의 모습은 어제 만나 놀던 친구들처럼 반가웠다.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보자 잊고 있던 추억들이 한순간에 떠올라 혼자 웃었다. 그리고 그리웠다.
2월의 학교에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 졸업으로 아쉬워하는 감정, 새 학년을 함께 하게 될 친구나 선생님에 대한 궁금함, 신입생으로 입학해 생활하게 될 두려움과 떨림. 생각해보면 내가 입학할 때의 기억은 긴장과 기대감이 컸다면, 부모가 돼 아이를 입학시킬 때는 기대보다는 염려가 우선이었고 입학이 다가올수록 의식적인 믿음으로 학부형의 자세를 가졌던 것 같다.
명절이면 겨우 만나는 바쁜 조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 전 왕따나 괴롭힘은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조카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 안도했다. 그것은 성적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졸업앨범을 발견하면 그 속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으며 그리워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가끔 혼자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아이를 볼 때면 걱정이 돼 가는 길을 멈추고 서서 그 아이를 끝까지 보며 무슨 일인가 염려하는 시선만 그 아이의 등 뒤로 보내게 된다. 요즘 학생들의 자살, 학업 스트레스, 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뉴스를 흔하게 접하기 때문에 입학하는 아이를 축하와 동시에 염려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조카에게 조심스럽게 학교생활을 물어보고, 모르는 아이의 어깨처짐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옛날 우리나라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겉으로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명문대학생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전국에서 매년 1000명 이상의 대학생을 자살로 이끌고, 약 7%를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한다고 한다. '1등 스트레스'가 이제는 중·고등학생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명문대학에서의 잇단 자살 관련 뉴스를 보고 학업의 스트레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 느껴진다.
사회가 만든 '부적응' 꼬리표
요즈음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어떤 이유에서든 학교에 부적응하는 원인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학교 부적응의 원인이 의외로 가정문제로 인해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과보호와 지나친 간섭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개개인의 성장 환경이 다르고 심리상태가 다른 상황 속에서 사춘기라는 감정까지 겹쳐버리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고, 그것이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면서 아이들은 더욱 반항이란 것을 하게 되고 여러 문제의 시작이 되어 부적응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리게 된다. 다르게 생각하면 학교에 부적응하는 아이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물의 모양이 다르듯이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은 다 다르다.
그러니 같은 상황에도 반응하는 것이 다르고 스트레스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교육의 테두리에 넣어 같아지길 바라니 당연히 누군가는 아파하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이 책은 쓰레기 처리장 근처에 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쓰레기 처리장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사회의 편견 속에서 생활을 한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다. 선생님이 좋은 이유가 뭐냐는 고다니 선생님의 질문에 한 아이가 "데쓰조를 예뻐해 주잖아"라는 대답 속에 자신이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남들이 문제아라고 싫어하는 친구를 좋아해주는 선생님이 그냥 좋다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 잡은 쥐를 버려야 하는 데 버릴 수 없어 작은 배를 만들어 바다로 보내주는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고다니 선생님과 아다치 선생님은 쓰레기장 아이들이 더러워서 급식 당번을 시킬 수 없다는 교무회의 결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생님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얼마나 따뜻할까. 글도 모르는 데쓰조가 파리를 키우는 것을 보고 그 아이의 남다른 장점을 알고 '파리박사'가 되게 이끌어 주는 선생님. 물론 고다니 선생님도 처음에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편견 없이 보고 들으려 노력함으로 변해간다.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그로 인해서 한 아이가 마음을 열고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정답처럼 이 책에서 보여준다.
진흙길도 걸어보게 해야
'고다니 선생님, 파리를 기른다고 해서 데쓰조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어쩜 바쿠 할아버지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은 데쓰조 같은 아이들인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을 부모의 욕심으로 상황에 맞지 않게 억지로 바꾸려하니 서로가 힘들어 지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지.
학창시절에는 성공과 좌절을 함께 배워야 하고 그런 기회를 아이들에게 많이 줘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아이들에게 진흙길도 걸어보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모든 아픔을 스스로 견뎌내야 하니 지켜보는 우리도 아프다. 그러니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믿고 지켜보며 아이들이 아파 주저앉으려 할 때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다.
교육에 관련된 많은 말 중에 맹모삼천지교가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아이의 눈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세 번을 옮길지 깊이 고민해 볼 때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주위에 아다치, 고다니 선생님 같은 어른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늘 포용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졸업앨범 사진 속 아이들이 각자가 느끼는 행복으로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이타니 겐지로(1934~2006)
'어린이'와 '문학'을 빼고서는 말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고, 아이들의 글을 엮어 「선생님, 내 부하해」를 펴냈다.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뿌리는 이 책에 있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가 만난 어린이'는 그에게 문학의 원천이었다. 그는 형의 죽음과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오키나와로 떠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상냥함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깊이 깨닫는다. 1974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발표한다. 17년 교육 실천의 결정체이자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작가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단숨에 일본 대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으로는 「태양의 아이」, 「모래밭 아이들」, 「큰고추 작은고추」, 「하늘의 눈동자」, 「소녀의 마음」, 「바다의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