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4·3 역사, 세계인의 '평화 유산'으로

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3. 기억을 품어 새 역사로 연결하다

2017-02-13     고영진 기자

진정성 갖춘 조건 충족
본질·중요성 증명 중요
관련 자료 수만점 보관중
등재위한 명확한 계획 등
체계적인 추진 노력 필요

눈부시게 찬란한 봄빛이 대지를 비치고 만물이 생동하는 4월. 하지만 제주의 4월은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샛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린 유채꽃에도, 새하얀 속살을 드러낸 눈부신 벚꽃에도 69년 전 아우성은 그대로다. 숨죽여왔던 통곡의 역사, 우리 민족사의 참극 제주4·3은 기억하는 작업을 통해 빛을 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제주 섬의 아픔, 제주4·3을 세계인의 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준비가 시급하다.

△ 기록유산의 목적과 대상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시작됐다. 유네스코는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이 보존돼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데 바탕을 두고 있으며 주요 목적은 최적의 기술을 통해 전 세계 기록유산의 보존 기여, 기록유산의 보편적 접근성 향상, 기록유산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 제고 등이다.

기록유산의 대상은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 또는 그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이다. 단독 기록일수 있으며 기록의 모음일수도 있다. 

필사본과 도서, 신문, 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와 플라스틱, 파피루스, 양피지, 야자 잎, 나무껍질, 섬유, 돌 또는 기타자료로 기록이 남아있는 자료는 물론 그림, 프린트, 지도, 음악 등 비문자 자료도 기록유산 등재가 가능하다.

또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도 포함된다.

△ 등재 기준과 조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된다.

우선 해당 유산의 본질 및 기원(유래)을 증명할 수 있는 정품으로 진정성을 갖고 있어야 된다. 

특정 기간과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음이 분명한 경우와 해당 유산이 소멸되거나 유산의 품질이 하락한다면 인류 유산의 발전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리라 판단되는 경우 등 독창적이고 대체가 불가능한 유산이어야 한다.

세계적 관점에서 유산이 가지는 중요성이 있어야 하고 시간과 장소, 사람, 대상(주제), 형태 및 스타일 등 5가지 요소 들 중 반드시 한 가지 이상 그 중요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희귀성과 원 상태로의 보존, 위협, 관리 계획 등이 영향을 미친다.

△ 제주4·3사료 관리

제주4·3의 기억을 후세와 공유하고 세계에 알리는 '이음줄'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재 다양한 사료들이 보관·관리 중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탄두와 버클 등 4·3 유해발굴 유류품 2285점과 피해신고서와 증언채록자료 등 개인 신상 자료 1462점, 생활도구와 사진자료 등 기타 자료 1709점 등 모두 5456점을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이 사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배포하는 문화유산표준관리시스템으로 100% 전산화해 체계적으로 관리 중이다.

아울러 개가자료실에는 4·3도서와 역사서 등 외부 열람 도서 9764권이 있다. 이와 함께 방송과 증언, 기록영상 등 동영상과 유해발굴 기록 등 사진, 4·3관련 보도자료 등 신문자료 등의 자료로 디지털아카이브를 조성, 현재 시범 서비스 중이며 조만간 정식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다.

특히 세계기록유산 등재 검토 대상으로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 단행본을 비롯해 문서와 사진, 영상 등 주요 4·3사료 2만6824점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이 소장하고 있거나 4·3관련 민간단체에 보관 중인 사료에 대해서는 정확한 수치나 규모 등을 파악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 실질적 준비 절차 절실

제주4·3은 아직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다.

'제주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목표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등재 대상이나 계획, 방법 등의 제시는 부족한 상태다.

아울러 문화재청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공모 신청 자격이 '기록유산을 소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 개인', '기록유산의 중요성과 신청 필요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주4·3은 추진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

때문에 제주4·3 70주년을 맞아 도민 동의를 얻어 유족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를 통해 추진위에서 전문가 포럼이나 사료 조사 및 수집 등 실무를 맡아 전문적이면서 체계적인 기록유산 등재 추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누구도 입 밖에 내기를 꺼렸던 음지의 역사 제주4·3은 지난 1988년 제민일보 4·3취재반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며 공론화됐다. 어렵게 세상과 마주한 제주4·3의 기록을 지속가능한 역사 유산으로 등재할 때 제주가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자리하고 세계 평화의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인터뷰] 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보존해야 할 제주4·3 관련 기록은 제주도민이나 지역에 한정된 자료가 아니고 인권과 평화를 위한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며 "이런 의미를 갖는 제주4·3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국제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기록유산 등재는 국가권력 남용이나 인권을 소홀히 했던 권력의 시각에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이는 또다시 그런 잘못이 반복되거나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을 위한 증거자료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4·3 해결을 위한 도민의 기본정신인 '평화정신'을 후대에 바르게 전승시키기 위해서도 이를 입증하고 지원할 자료가 필요하다"

이 이사장은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범도민적 시각에서 폭넓은 연대가 가능하도록 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가로 산하에 실무팀을 편성,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올해 안에 추진위와 실무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예산 등 조직 운영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상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발굴한 자료는 물론 4·3 관련 단체에서 확보 중인 자료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유족 등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도 발굴.수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4·3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관련 자료에 해설 등을 곁들인 책자를 만들어 교육자료로 활용토록 하고 해외 보급사업도 진행하는 등 4·3 알리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지금도 4·3을 부정하고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 일부 우익세력도 명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