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포자체식물은 배수체…배우체식물은 반수체
화산섬 용암의 땅, 곶자왈 탐사 5. 배우체식물, 어떻게 생겼나
양치식물은 관다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종자식물과 같다. 그러나 종자 대신 포자를 생산한다는 점에선 다르다. 그런데 이 포자라는 것이 또한 기묘해서 이게 발아하면 어미식물과 같은 모양으로 자라지 않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야 하는데 부모와는 전혀 딴판인 자식이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나비가 알을 낳아 부화하면 나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벌레가 생기는 것과 같다.
이 벌레를 나비라 해야 할까 아니면 또 다른 종이라고 해야 하나. 나비와 그 애벌레의 관계를 모르면 이런 혼란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양치식물의 포자에서 나온 식물체는 발아하면서 전엽체를 형성하고 여기서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기관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배우체식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단계는 마치 나비의 애벌레처럼 어미와 아주 다른 형태를 갖는 것이다. 그나마 나비의 애벌레는 어미 성체 나비와 같이 염색체가 배수체인데 비해 양치식물의 경우 어미 포자체식물은 배수체인데 거기에서 태어난 배우체식물은 반수체이므로 훨씬 다른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종자식물의 경우는 화분, 배주, 동물의 정자, 난자 등을 배우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반수체이다. 이들은 서로 결합하여 배수체가 되지 않는 이상 별도로 독립하여 생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반수체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형태를 갖추어 자라는 것이 양치식물의 배우체식물이다.
이처럼 양치식물에서 배우체식물은 다른 생물들과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는 곶자왈 용암숲이 양치식물의 천국이라고 하면서도 이 배우체식물은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의 양치식물 책에서는 이 배우체식물은 삽화로 보여줄 뿐 사진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
일색고사리의 배우체식물 군락의 크기는 직경 30 센티미터 정도다. 심장형의 전엽체 모양이 뚜렷하다. 전엽체는 길이와 폭이 각각 2 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이다. 그러니 육안으로도 잘 볼 수 있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모양도 뚜렷하다. 세포들은 기부에서 정단을 향해 배열하는데 장방형으로 대부분 4각형, 5각형, 6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세포의 중앙에는 염색체를 포함하고 있는 핵의 모습이 선명하다.
이 식물체는 그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군락은 한 곳에 모인 많은 포자들이 거의 동시에 발아한 것인지, 아니면 한 두 개의 포자가 발아하여 이것들이 증식하여 만들어진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식물체들은 전엽체의 몸에서 또 다른 전엽체가 마치 출아법으로 나오는 형태로 돋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 군락은 언제부터 형성되었나. 일부는 이미 죽어서 완전히 갈색으로 변한 생태이고, 또 어떤 개체들은 누렇게 늙어가고 있으며, 싱싱하게 한창 생장 중인 것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부에선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여 접합자 단계를 지나 배수체(2배체)인 포자체식물이 자라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이 배우체식물군락은 양치식물의 세계교번 중 유성세대 단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사진은 곶자왈에서 찍은 것인데 세상에 처음 공개되고 있을 것이다.
양치식물의 '세대별거' |
| 양치식물의 세대교번은 들어 봤어도 세대별거는 들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양치식물은 두 가지 독립적인 삶의 단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 중 배우체식물은 일반적으로 작고, 심장형이며, 정자와 난자를 배출하여 수정한 후에는 금 새 죽어버린다. 그러나 일부 열대성 착생 양치식물에서는 배우체식물 즉 유성세대도 지속적으로 영양 생장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일부는 무성아를 통해 무성 번식을 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배우체식물의 독립성을 크게 증가시켜 어떤 종들은 전혀 포자체식물을 생산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일부 종들은 특정한 지리적 범위에서만 포자체식물을 생산한다. 이러한 현상을 '세대별거'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양치식물은 온대지방에 배우체식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잘 연구되지 않은 열대지방에 분리된 세대 즉 포자체식물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연구한 사례를 보자. 각각 1㎡ 또는 0.25㎡ 크기의 12개 표본구를 몇 군데에 설치했다. 그런 다음 이곳에서 모두 407개의 배우자체식물 표본을 채집했는데, 이들은 38종의 양치식물임을 밝혔다. 외부형태는 심장형과 비심장형의 크게 2가지로 구분되었다. 그 중 심장형의 배우체식물들은 예외 없이 인접한 곳에 해당 종의 포자체식물이 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비심장형 배우체식물들은 해당 종의 포자체식물들이 근처에서 발견되지 않았거나 매우 드물었다. 이것은 양치식물의 배우체식물들은 해당 종의 포자체식물들과 항상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비심장형 배우체식물들은 포자체식물과는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패턴은 비심장형 배우체식물의 경우 무성아에 의한 무성번식과 무한생장에 의한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포자체식물들이 엉뚱한 다른 지역에 살고 있을 수 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도입한다면 곶자왈의 양치식물은 그 숫자가 상당히 증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