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의 대화
책 읽어 주는 남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어린 시절, 개미는 우리들의 적대적 대상이었다.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개미집을 찾아 이유 없이 개미들을 '집단학살'하곤 했다. 밟아서 죽이고, 돌로 두들겨 죽이고, 물을 부어 개미사회에 '노아의 방주'를 일으켰다.
개미들을 왜 그렇게 못 살게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개미의 세계를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들을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개미'로 비유한다. 더욱이 자신의 온갖 욕망을 억누르고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을 '일개미'라고 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회 조직의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개미는 대단히 긍정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솝 우화에서 개미는 은혜를 제대로 갚을 줄 아는 의리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고, 조직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개미에 대한 이런 묘사는 어디까지나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의인화에 지나지 않으며 개미 세계 자체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미의 매력은 단순히 그들의 부지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뺨칠 정도로 조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그들의 삶의 모습에 있다. 인간사회만큼이나 개인들의 권익을 중시하고, 생존을 위해서 철저하게 조직화된 분업을 이루어내는 개미들의 모습은 대견하다. 또한 권력을 위한 투쟁과 사랑, 왕성한 종족 보존의 욕망은 인간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개미」에서는 인간이 개미들의 언어를 터득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과 개미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하다. 만일 그런 시대가 온다면 인간과 개미 사이에서 사용될 언어는 무엇일까.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인간과 개미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인간의 눈에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개미들의 삶이 위대하게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거대한 조직과 종족 보존의 욕망을 불태우면서도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그들의 삶의 태도에 있다. 인간은 쉼 없이 자연파괴와 온난화,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개미들은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생산자'로서의 문명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작은 것으로 보이는 개미사회를 통하여 인간 삶과 존재의 문제점을 위한 해결책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베르베르의 「개미」는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것을 개미를 통하여 알 수 있게 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도록 하며, 더 나아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앎으로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