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미학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인간이 하는 운동 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것이 걷기운동이라고 한다. 걷는 것은 우리의 몸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체력은 물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칸트, 룻소, 베토벤 같은 위대한 사람이 모두 걷기와 산책을 통하여 사색과 창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유명하다.
나의 하루는 걷기와 함께 시작한다. 새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지고, 예쁜 들꽃들이 생기있게 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나무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풀 내음의 향기가 가득한 숲길과 들판을 걸을 때 나는 가장 큰 삶의 희열을 느낀다. 특히 여름철은 새벽과 한낮이 아름답다. 숲과 오름길을 부지런히 걷노라면 몸은 조금씩 깨어나고 움추린 마음도 숨쉬기 시작한다. 가슴이 활기차게 숨을 헐떡이고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표시이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걷는다는 것은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방법이다. 걸으면서 나는 기도한다.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이 인생과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값어치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로 꼽히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길고 삭막한 순례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자신이 한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동시에 자신들의 인생관과 세계관도 전과 다르게 더욱 경건하고 진지하게 바뀌어진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중세학자 겸 소설가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유럽의 어느 도시나 마을에 머물 때면 오로지 걷기로만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중세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그네들이 느꼈던 삶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걷기의 미학을 실천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세 권짜리 여행기 「나는 걷는다」를 통하여 마르코 폴로나 혜초 같은 위대한 여행가들의 모험과 구도의 삶을 실천했다. 30년간의 기자생활 끝에 퇴직한 저자는, 여생을 편히 보내기를 거부하고 62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실크로드를 오직 걸어서 여행한다. 4년 동안의 계획을 세워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면서 여행이 한 구간 끝날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올리비에는 이렇게 말한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다. 부지불식 간에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런 바람, 구덩이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대자연과 몸의 소통,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는 눈물겨운 체험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걷기와 여행은 이 세상과 인생을 알기 위한 구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