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란 이름의 완성, '오라'로 오라

오라동, 시간을 모아 자산으로 3. 변천사를 경쟁력으로

2020-10-12     고미·김수환 기자
오라동과 연북로.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살아있는 박물관 주민 기억·경험 아카이브화
기록에는 없는 진짜 삶 연결고리…유대 강화
스토리텔링·공간 구현으로 향토지 이상 효과

'터주'는 그 존재 자체가 역사다. 살아있음과 기억하는 것으로 서사를 만든다. 신과 사람의 경계가 없었던 제주에서 수십 년 한 자리에서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은 신 그 이상이다. 그들의 삶이 문화자산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살아있는 박물관들이 꺼낸 조각들로 다시 맞춘 '마을'은 흥미롭다.


△새마을운동 성공 사례

지난 2010년 ㈔제주올레는 특별한 길을 낸다. 느린 걸음으로 제주의 진짜 모습까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더해 경력단절 등 다양한 이유로 일을 내려놓은 여성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수익사업을 발굴했다. 간세인형이다. 간세인형공방조합을 만들고, 사회적기업 (유)퐁낭이 운영하는 형태다. 간세인형의 수익금은 생산자인 조합원과 제주올레 길의 유지, 보수에 쓰인다. 간세인형을 위한 헌 옷, 자투리 천 모으기 캠페인은 상시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일면서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주변에 전하는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삼삼오오 손을 모아 재단하거나 재봉틀을 돌리거나 아니면 직접 손바느질을 한다.

이 모습이 사평마을의 고춘자 할머니(89)는 낯설지 않다. 1980년대 남편 직장에 사원들의 부인회 모임이 있었다. 부인회는 주변에 버려지는 헌 옷들을 모아 대형 설비를 닦는 걸레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기계 걸레'라고 해서 타 지역에서 사다 쓰던 것을 22명이 모여 수익사업으로 바꿨다.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걸레를 만들고 저울로 뜨고 묶어 정리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아라동·도두동에서도 헌 옷과 빨래비누를 바꾸기 위해 마을을 찾았을 정도였다. 작업은 시대가 변해 기능성 걸레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새마을부녀회 활동 성공사례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면서 고 할머니는 어느 순간 새마을 지도자가 됐다.


△"향회 보러 나옵써"

오재수 할아버지(87)의 기억 속에는 4·3 광풍에 사라진 오라연미국민학교가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도두리에 일본군 대대본부가 사용했던 건물을 청년들이 허물고 그 재목으로 학교를 지었던 일화와 학교 완공 기념으로 독립운동 영화 '자유만세'를 모티브로 한 연극을 했던 적도 떠올렸다.

1930년대 마을에 일이 있을 때 마다 오라동 3037-1·2번지에 있던 초가로 '향회 보러 나옵써'했던 일이며, 4·3으로 마을이 전부 불타고 형까지 잃었지만 다시 마을을 만들며 움막에서 초가로,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했던 일도 생생하다.

구술뿐만이 아니라 옛 사진과 고문서, 영수증, 상장, 증명서, 수첩, 일기, 신문, 생활 및 생업도구, 각종 기록물까지 마치 돌담을 쌓듯 '오라동'이 됐다.

오라동 근·현대사 설계를 위해 기억과 추억을 나눈 주민도 9명이나 된다. 나고 자란 경우도 있지만 결혼을 하면서 마을로 와 이전의 경험과 비교군을 만든다거나 기록으로는 다 확인하기 힘든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어르신들의 기억은 끝이 비슷하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서…".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아쉬움이 크다. 급격한 '압축-근대화'와 농어촌 그리고 원도심 공동화로 인한 충격이 짧은 시간에 크게 전달된 때문이다. 그동안의 작업이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다르거나 제주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지역들에 집중되면서 오라동의 전통문화-아카이브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유산을 놓치면서도 생활환경의 쾌적성이나 물리적 노후를 막지 못하며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 이는 원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과 새로 마을의 구성원이 되려는 사람들간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동했다.

지난해 방선문 축제 모습. (방선문축제위원회 제공)

△서 말 구슬, 그 다음

이번 진행한 오라동 역사문화 특화자원 발굴과 활용사업 연구는 마을 자원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기존 박물·자료관의 개념을 확대하는 시도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 중심이 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마을에 흩어져 있는 문화·인문·역사 자원을 수집, 채록,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변천을 반영해 분류하는 것으로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행정구역이나 자료에 의존한 기존 향토지 작업이 '기념'사업 성격에 이끌렸다면 스토리텔링과 공간 구현으로 마을을 연결하는 작업은 판을 까는 것으로 접근법이나 활용방법에 있어 차이가 있다.

여러 종류와 성격의 구슬과 꿸 실까지라는 말이다. 어떤 디자인으로, 어디에 활용할지는 다시 주민들의 선택에 달렸다. 제주도와 제주대학교, 오라동이 손잡는 다음 기회는 창의산업과 접목한 마을 자산 활용 사업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제주대학교 휴먼인터페이스미디어센터는 오라동 역사문화 특화자원 사업 전반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timejeju.com )를 오는 19일 정식 운영할 예정이다.


[인터뷰]이승아 제주특별자치도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오라동)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지역구 이승아 의원을 만나 오라동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이를 활용한 지역발전방향에 대해 물었다.

이 의원은 "오라동은 400여년 이상 된 오랜 중산간 마을로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는 말로 운을 띄웠다.

이어 "1978년 중산간 마을로서는 처음으로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실시되긴 했으나 옛길이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 있는 마을로 역사·문화적 잠재력이 높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한 문화자산들에 관해서는 "그중에서도 오라동 주민들이 개인소장하고 있던 문서·지도 등 일반동산문화재들을 발굴해 낸 것은 뜻깊은 성과"라며 "이는 근대이전 주민들의 생활사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산으로 면밀하게 분석해 자료적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새로 발굴된 동산문화재에 대한 문화재·향토유산 지정을 추진하면서 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1914년 연미마을 리사제 문서에 관해 "일제강점기 기간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폐지됐던 재래의식을 원형으로 복원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며 의미를 더했다.

이 의원은 동산문화재와 재래의식의 복원 등을 묶어내며 "유형·무형유산들을 적절히 연결해 체험형 콘텐츠를 마련할 경우 도민과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오라동의 핵심 아이콘을 선별해 이를 중심으로 오라동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오라동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관광객들과 문화·자연 유산에 관한 기억을 나눈다면 '사람'이 보이는 마을로 거듭날 것"이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고미·김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