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역사

[책 읽어 주는 남자]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

2021-02-22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의 역사라고 일컬어진다. 그렇지만 역사상 전쟁보다는 질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면, 인류에게 질병이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이 분명하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질병은 항상 존재해 왔고, 삶의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해 왔다. 역사상 인류를 공포로 몰아세운 질병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인류에게 최초의 위협적인 질병은 기원전 430년경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발생한 역병이다. 당시 아테네 인구의 4분의 1인 6만 명이 사망했고, 이 역병은 6세기 중엽에는 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 다시 시작되어 로마 제국으로 번져 인구의 40%인 30여만 명이 사망했다. 14세기에는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된 페스트가 비단길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페스트는 주로 불결한 환경 속에서 생겨나서 쥐를 통해 전파되었다. 이 때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숨졌는데, 죽은 사람의 몸에서 검은 반점이 생겨 '흑사병'이라고 불리었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19세기까지 산발적으로 발생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인류 최악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에 남미의 잉카제국은 피사로가 이끈 스페인 정복군에 의해 무너졌다. 그런데 실제로 잉카제국을 멸명으로 이끈 가장 큰 원인은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군은 이미 자국에서 유행했던 천연두나 홍역을 앓은 적이 있어 면역력이 있었던 데 반해, 잉카인들은 전염병에 감염되어 대책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한 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600만 명 정도이던 잉카제국 인구의 90%가 사망하게 되었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승승장구하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는 1812년 러시아 정벌에 실패하고 만다. 50만 명의 프랑스 군대는 겨우 3만여 명만 살아남아 귀향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패인은 러시아의 추운 날씨 탓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추위보다 이를 통해 전염되는 발진티푸스와 참호열이라는 전염병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나폴레옹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질병으로 인해 세계 역사는 바뀌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최악의 전염병은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여년 동안 전 세계에서 500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14세기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지금까지도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린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을 거쳐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질병이 잊을만하면 다시 출몰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만큼 질병의 역사도 진화하며 인간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마이클 비디스와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의 「질병의 역사」는 인간의 오랜 적인 질병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창궐했던 수많은 질병과 이에 관련된 개인과 집단, 국가와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총망라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전대미문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은 모두 입을 다물고 앞으로 더욱 겸손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