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난들의 공원

2000-03-24     제민일보
 서귀포시에서는 최근 제주 한란의 자생실태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발표됐다.조사결과 이 풀은 극히 까다로운 조건에서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하천변의 비탈에서 많이 자라는데 그것은 물빠짐이 좋고 습도와 기온이 적절하기 때문이었다.너무 그늘이 지거나 너무 밝아도 안된다.주위의 나무도 적절히 우거져야 하며 수종도 가리기때문에 사스레피나무나 동백나무의 곁에서만 잘 자란다는 것이다.

 한갖 풀이면서도 여느 식물류보다 기품이 있고 고고한 자태의 비밀이 이토록 유별난 생활습성에 있었던 것일까.제주한란의 품격은 그 향기와 모습에 있어 인근 중국이나 일본의 한란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다시 증명됐다.

 서귀포시는 이같은 연구보고에 따라 돈내코 일원을 한란생태공원,또는 ‘난들의 공원’으로 조성할 방침이다.기르기에 극히 까다로와 가정에서 보기가 힘든 이 난들을 자연속에서 있는 그대로 한껏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몇년전에 일본에서는 ‘물의 공원’을 조성해 우리나라 김창렬화백의 ‘물방울’연작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었다.북제주군은 최근 넓이 1백만평에 이르는 ‘돌의 박물관’을 조성중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성의 상실과 파괴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그러나 또 한켠에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어 인류문명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런데 한란에 관한 이 보고서는 말미에 작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서귀포가 한란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한 철책때문에 주변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흩어지지 않아 한란을 숨막혀 죽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또 나무잎들이 무성해져서 햇볕이 들지 않으면 한란의 어린 싹들이 자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의 보호는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훼손하는 것을 막는 정도로는 안된다.시기에 맞춰 주변나무들을 적절하게 가지치기해야 하고,매해 떨어지는 낙엽도 적당히 긁어내야 한다.집에서 기르는 난 못지않게 신경을 써야 그 생태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넓게 본다면 제주지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보전에 대한 논란이 같은 맥락을 달리고 있다.서귀포시에서는 최근 시와 시의회,주민들간에 해안변의 경관보전문제가 큰 논란꺼리로 등장했다.남제주군에서는 송악산의 개발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간의 화두다.

 무작정 개발해서 생태와 경관을 해치면 환경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무조건 막아서 주민들의 생활을 도외시한다면 보전도 의미가 없다.개발과 보전의 변증법은 이 시대 제주사람들이 헤쳐나가야할 중요한 논제인 것 같다.<고대경·제2사회부장 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