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물질로드] 부산 영도 해녀
한바당해녀 이어도 사나-신물질로드
#제주해녀 #기획 #이어도사나
[新물질로드] 부산 영도 해녀 #제주해녀 #기획 #이어도사나
"가덕도 끝을 넘어가면 등바당을 넘어간다. 다대 끝을 넘어가면 부산 영도이로구나"
부산박물관 특별기획전전 '부산, 관문 그리고 사람'에서 제주해녀는 부산 성장의 한 부분으로 소개된다.'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재건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한 바탕에 힘겹고 고단한 시간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부산에서 새 삶터를 개척하고자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며 제주에서 뭍으로 와 정착한 부산 해녀들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부산 '3대 아지매'라 불리는 자갈치 아지매와 재첩국 아지매, 그리고 깡깡이 아지매를 들었다.
특별기획전에서 '부산 해녀'가 시작점에 있는 이유는 여성의 경제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 해녀가 억척스럽고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연결된다.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 경제는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했다. 이런 분위기를 뒤집은 것이 해녀였다. 일본무역상의 등장으로 해산물 수요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해녀들의 생산물인 해산물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했다. 이 같은 현금 수입원은 제주 경제에 자금의 흐름을 만들었고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마을을 키웠다.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 국.공유지가 많았던 제주의 사정은 도민들을 빈궁과 가난으로 밀어 넣었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열악한 조건에도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해녀의 바깥 물질은 기본적으로 가족 생계 유지라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좀 더 부연한다면 자본주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을 통한 자본 유입이 일상 생활에 변화를 줬고, 탄압과 착취 등 일제 수탈에 대한 반발심도 강했다. 혼자서는 안 될 일이지만 무리를 지어 남해와 동해, 일본 연안까지 물질을 하러 나선다.
하지만 그 해녀의 명맥도 이제는 시나브로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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