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책 읽어주는 남자]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소박하게 말해서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이 기록된 것을 말한다. 지난 기록을 통해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역사이다.
그렇다면 다시 볼 수도 없고,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 할까. 그것은 과거의 세계를 만날 수 있고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과거의 세계가 우리 앞에 살아있는 듯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옛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왕실에서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국정의 기록을 일일이 남겼다. 그때그때 나라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에 관련된 기록을 실록 편찬의 자료로 모아 두었던 것이다. 사실과 인물에 대해 기록해둔 자료는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이 되어 훗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거가 있어야 과거에 있었던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지난 일들에 대해 주장이 다르고 시비를 다투는 원인도 역사적인 증거가 불확실하거나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지난 세계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과거 세계와 현재의 인간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인 것이다. 이 만남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다시 해석하고 평가하여 재구성할 때 확립되는데, 기록된 시점의 시대와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객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이다. 시대와 역사가에 따라 항상 새로운 평가가 가능하고 과거를 통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요구된다.
과거의 세계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도움을 준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슬기와 노력으로 극복한 조상을 만날 수 있으며 과거에 펼쳐진 역사적인 경험이 우리에게 지혜를 일깨우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즉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의 성장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미래를 향한 바른 안목을 길러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는 다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역사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만,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그것과 관련한 역사가의 ‘해석’이 더해지면서 역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록된 사실은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으며 역사적 기록에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카의 말대로 모든 역사는 현대를 보여주는 창(窓)이라 할만하다.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가의 기능은 단순히 과거를 사랑하거나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기록이다. 아무리 억압과 어둠 속에 묻혀있던 역사도 결국은 세상에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나치에 의한 아우슈비츠의 역사,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조선의 역사, 제주의 슬픈 4·3의 역사도 결국 오늘의 역사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