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책 읽어주는 남자] 마크쿨란스키 「소금의 세계사」

2023-06-26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태평양에 방류된 오염수가 1년 안에 동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해산물 먹거리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해산물은 안 먹으면 되지만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안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형 식품업체들이 미리 소금을 확보해서 소금은 없어서 못 판다고 하며 심지어 소금 도둑마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옛날부터 소금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금은 다른 어떤 음식보다도 중요한 음식이었다. 지상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암석인 소금은 과거에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는데, 적진을 점령한 군대가 적군들이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경작지에 소금을 뿌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소금은 많은 문화권에서 신성시되기도 했다. 

한때는 세례받는 아이의 입술에 소금을 얹어 주었으며, 성경에는 소금과 연관된 구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부분으로 예수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만큼 종교에서도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것을 '빛과 소금'으로 비유할 만큼 소금이라는 물질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소금이 생산되는 곳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얻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을 가진 자는 돈과 권력을 차지할 수 있으면서 그만큼 소금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소금의 용도는 무엇보다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를 사고파는 값을 소금으로 치렀다. 만약 노예가 힘이 없거나 가치가 없으면 "소금 값어치가 없다."고 했다. 영어의 '소금(salt)'은 라틴어 'sal'에서 유래하였다. 샐러리(salary)라는 단어는 '소금 지불'이라는 뜻의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의 마크 쿨란스키의 저서 「소금의 세계사」는 소금에 관한 이론과 실제를 제시함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은 베스트셀러이다. 작가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하여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역사 문헌들을 뒤졌다. 그는 인간이 먹는 유일한 바위, 즉 소금을 주제로 다양한 논픽션을 썼다. 이집트왕조, 중국왕조, 로마제국을 비롯한 고대문명에서 현대문명까지 역사적인 사건의 틈새에 소금이 얽힌 뒷이야기를 탐사하고 있다.

소금은 국력의 원천이었다. 인류 문명을 만든 이집트인들은 소금으로 미라를 만들거나 식량을 보존하는 데에서 나아가 소금무역에 일찌감치 눈을 떴고, 이런 전통은 중근동 지역을 상인의 세계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제(濟)의 관중(管仲)이 소금의 전매제도를 만들었다. 그는 국가가 소금을 수입하여 이익을 남기고 팔기 위해 소금값을 구매 금액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민심을 장악하기 위해서 인민들에게 소금의 공급을 선전하기도 했다. 귀중한 소금을 유통하기 위해 '소금길(Via Salaria)'을 만들었다. 제국이 확장됨에 따라 먼 거리를 운반해야 하는 등 경비가 많아지자 로마는 여기저기에 제염소를 만들었고, 또는 켈트인들의 제염소를 빼앗기도 했다. 

신대륙 아메리카의 역사는 소금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서 통치권은 곧 소금 지배권을 의미했다. 스페인과 영국 사람들이 들어오자, 이들 역시 목축과 염장 생선 등 식민지 지배의 산업적 기초를 위해 소금 각축전에 들어갔다.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발전은 소금에 의해 시작되었다. 

'소금이 되어라.' 종종 어른들께서 후손이나 후배들에게 주는 인생의 길잡이를 위한 가르침의 말이다. 이 세상에 몸담고 있는 어느 곳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 기둥이 되라는 큰 뜻을 지닌 충고다. 이처럼 '소금'은 시대를 막론하고 고귀하며 꼭 필요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등장하는 단어다. 소금은 인간의 생명과 사회생활에서도 똑같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디에서나 소금을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취급하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