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정치
[책 읽어주는 남자]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거리 곳곳에서는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널리고 선거운동의 열기가 혼돈스럽다. 총선을 위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여야의 후보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고 하지만 판세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그야말로 투표함을 모두 열기 전까지는 누가 선량인 국회의원이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민이 선택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후보에 오른 인물 중에서 적임자인지를 가려내야 하는 엄중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과연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의 자격을 갖추었을까?
우리나라 사람같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고자 해도 '정치'(政治)란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정치'라는 말에서 '정'(政)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잡는다는 의미이며, '치'(治)는 물이 넘쳐서 피해를 입는 것을 수습하고 잘 다스려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국가 공동체(폴리스)를 구성하는 동물(zoion politikon)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나중에 라틴어로 번역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로 바뀐다.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만들고 거기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폴리스가 보편적 질서였던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공동체 속에서 타인들과 잘 어우러질 때 행복해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善)한 목적을 가지고 성립되는 것처럼 정치의 목적은 최고의 선을 추구하며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이념은 이미 개인·가정 및 촌락 공동체의 생성을 결정하는 데 참여한다. 각 구성원 간에 조화로운 관계를 정리하고, 부를 잘 분배하고, 국가 안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라를 이끌어갈 진정한 선량이라면 사회 곳곳에서 어렵고 힘들게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빈곤층과 힘없는 노약층, 그리고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실업자들의 눈물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온갖 현란한 말과 구호의 잔치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명제를 실행할 정치지도자의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인류의 양심을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적인 정치적 인물이다. 인간을 차별하는 노예제도에 도전했고, 또 이 도전은 평화, 비폭력, 비타협의 원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했다. 그는 폭력을 당하고 거듭 투옥되면서도 결코 자신의 신념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며 나라를 지키다가 숨을 거둔다.
간디는 "비폭력은 인류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고 주창하면서 폭력성을 표출하는 것은 무능력함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온갖 폭력적 말과 행동은 바로 공동체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세상 곳곳에서는 끝없는 폭력과 증오로 인해 전쟁과 내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마지막 남은 사랑, 자기 희생, 관용, 연민 같은 정신이 없다면 인간공동체는 어찌 될 것인가.
영국의 처칠 수상은 언젠가 때가 오면 세상이 자신과 조국의 위대함을 알아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내하며 국민을 이끌었다. 그는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국민이 정치를 만들고 정치는 국민을 만든다. 새는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서 가장 높이 난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정치의 본질은 국민 의견을 두루 듣고 국민들을 대신하여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이 시대에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아픔을 구제할 수 있는 인간적 품성을 갖춘 사람이 등장하게 되기를 국민은 간곡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