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 희생과 헌신, 오늘날 평화와 번영으로

1일 '의병의 날' 6일 현충일 6·10 민주항쟁, 6·25전쟁 등 보훈의식·애국정신 함양의 달

2024-05-30     김수환 기자

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식과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호국(護國)'과 '공(功)을 갚는다'는 뜻의 '보훈(報勳)'이 갖는 사전적 의미를 떠올리면 6월의 의미가 더 와 닿는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유래와 의미를 되새긴다.

△6월 1일 의병의 날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은 의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날이다.

2010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6월 1일로 지정됐다. 이날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의병장이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날(1592년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기도 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후 2011년부터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개최지는 전국에서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지역으로 매년 장소가 달라진다.

제1회 의병의 날 행사는 곽재우 휘하 의병이 일본군과 항전했던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열렸다.

△6월 6일 현충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됐으며, 1975년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현충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과 국민들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매년 6월 6일 오전 10시 전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리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관공서뿐 아니라 각 가정, 민간기업, 단체 등에서 조기를 게양하며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한다.

추모대상 범위는 한국전쟁에 전사한 국군에 한정하지 않으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포함한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다.

4·13 호헌 조치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 등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군사적 독재 정치가 종식을 고하는 계기로, 대한민국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고 사회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6월 10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때 독립운동세력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세운동을 벌인 날이기도 하다.

△6·25 전쟁일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하면서 일어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면서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뻔 했으나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일단락됐다.

휴전 이후로도 북한과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반공 양강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세계의 냉전적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만 군인 13만명과 민간인 5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종자 역시 30만명이 넘는다.

휴전 협정은 발발 약 1년 후인 1951년 6월 23일 시작됐지만 전쟁포로 송환 등 여러 갈등으로 전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피해 규모를 키웠다.

6·25 전쟁일은 6·25 전쟁의 의미와 애국정신을 기리고 안보의식을 점검하기 위한 법정기념일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 종전이 아닌 전쟁을 잠시 멈춘 '휴전' 상태임을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김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