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70여년 만에 고향으로"…제주4·3 유해 발굴 '지속'
[제주4·3 행불인 유해는 어디에] 1. 프롤로그
제주4·3 희생자 1만4738명…이 중 25% 3678명 행방불명
도내·외 곳곳 암매장 추정…2006년~현재까지 414구 수습
골령골·광주형무소 등 중점 추진…"채혈 참여 적극 강조"
제주4·3 당시 초토화 작전 등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은 불타 없어졌으며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 도민들은 토벌대의 진압 작전 또는 무장대와의 충돌, 한국전쟁 이후 이뤄진 예비검속 등으로 인해 도내 곳곳에서 총살돼 암매장됐다. 게다가 전국 곳곳 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면서 현재까지도 유족 상당수는 제주4·3 희생자를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제주4·3 행불인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이 지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활성화해 76년의 유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상당수 유족 바람
제주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도민 2만5000~3만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가옥 4만여채가 소실되는가 하면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다. 제주4·3으로 인해 제주는 초토화된 것이다.
현재 4·3위원회가 확정한 제주4·3 희생자 수는 지난해 기준 1만473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만562명, 후유장애 213명, 수형자 312명 등이다.
나머지 제주4·3 희생자 1만4738명 중 25%인 3678명은 행방불명됐다. 제주4·3 희생자 4명 중 1명이 유해조차 찾질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제주4·3평화재단 내에는 제주4·3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개인 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인 '행방불명인 표석'을 마련했다.
이처럼 한국전쟁 직후 총살돼 암매장된 결과 유족과 후손들은 부모와 자식의 사진 한 장 없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가묘를 세우는 상황이 이어졌다.
실제 현재 진행 중인 제주4·3 군사재판·일반재판 수형인 직권 재심 재판에서도 유족들은 이 같은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도내·외 사업 탄력
이런 가운데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이 도내·외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
앞서 2006년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년~2009년에는 제주국제공항, 2021년에는 표선면 가시리 등 7곳에서 해당 사업이 추진됐다.
지난해의 경우 안덕면 동광리 등 도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유해 발굴 결과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414구 수준이다.
또한 대전 골령골과 광주형무소 등 도외 지역에서도 유해 발굴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로 해당 지역에 제주4·3 수형인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서다.
이 가운데 대전 골령골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일간 법적 절차도 없이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최소 1800여명 이상, 최대 7000여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해 암매장된 비극의 역사를 품고 있다.
제주4·3 희생자 300명은 1949년 2차 군법회의를 거친 뒤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지만 불과 1년만인 1950년 7월 3일과 4일, 5일 등 3일에 걸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전원 총살됐다.
당시 8곳의 암매장 구덩이를 모두 이으면 길이만 약 1㎞에 달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족 품으로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으로 7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2월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 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온 제주4·3 희생자들은 군법회의 희생자와 예비검속 희생자 각각 1명이다. 지난해 4·3 희생자 유가족 283명이 참여한 채혈분과 제주국제공항 발굴 유해의 유전자 대조 결과 행방불명 희생자 2명의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당시 유해를 찾은 한 유족은 "아버지와 형이 예비검속으로 같이 구금됐지만 결국 형만 돌아오고 아버지는 소식이 끊겨 행방불명됐다"며 "이제라도 아버지를 찾아 모시게 돼 너무 기쁘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는 행방불명 제주4·3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도외 지역에서 제주4·3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한 최초 사례다.
신원이 확인된 고 김한홍은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으로 제주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숨어 지내다 주정 공장수용소에 수용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이후 수형인명부에는 고 김한홍이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복역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방계 유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가 강조되고 있다"며 "올해도 유해 발굴 및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지속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양경익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